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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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폭염 인플레이션’

지구가 펄펄 끓는다. 영국이 그제 사상 처음으로 폭염 ‘적색 경보’를 발령했다. 여름에도 서늘했던 영국 기온이 40도를 돌파할 것이란 예보가 나왔기 때문이다. 불볕더위로 인한 산불이 잡히지 않는 유럽의 경우 남부에서만 1100명 이상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중서부에도 일부 지역 기온이 43도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면서 폭염 경보가 내려졌다. 한 달 이상 폭염이 이어지는 중국에선 전국 71개 국가기상관측소에서 사상 최고 기온이 관측됐다. 44도가 넘는 곳이 수두룩하다. 일본 도쿄에선 50여명이 열사병으로 숨졌다.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는 게 기후 온난화 탓인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폭염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발생 빈도도 더욱 잦아질 것이라고 기상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그제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페터스베르크 기후대화에 보낸 영상메시지에서 폭염 등 기상이변과 관련해 “인류가 집단행동이냐 집단자살이냐 갈림길에 있다”고 경고했다.

폭염은 인플레이션 압력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농작물 작황 부진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번 폭염으로 유럽연합(EU) 최대 밀 수출국인 프랑스의 연질 밀 수확량은 지난해보다 7% 줄어들 전망이다. 이탈리아농민협회는 쌀 등 곡물의 올해 수확량이 지난해보다 30%가량 감소할 것으로 본다. 이렇게 되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치솟는 곡물 가격의 추가 상승이 불가피하고, 인플레이션 가속화로 이어지게 된다. 뉴스위크는 무더위가 곡물 가격을 밀어 올리는 현상을 ‘히트플레이션(열+인플레이션)’이라고 불렀다.

무더운 날씨로 인한 전력 생산 감소도 전기요금 상승 요인으로 작용해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할 수 있다. 최악의 폭염으로 원전 가동을 제한할 가능성이 커진 프랑스 전력 가격은 지난 4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에서도 지난해 전력난이 재현되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공급망 불안 등으로 전 세계가 유례없는 고물가로 고통받는 상황에서 폭염까지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니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우리 정부도 국민 주름살이 더 깊어지지 않도록 대비해야 할 것이다.


원재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