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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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선거비용 이중지급

전국 단위 선거가 있으면 우리나라 주요 정당은 ‘재산 증식’ 기회를 맞는다. 국고보조금을 이중으로 받기 때문이다. 선거 전 각 정당은 후보자 등록 마감일 이후 이틀 이내에 중앙선관위로부터 보조금을 받는다. 또 선거가 끝난 뒤 득표율이 15% 이상이면 법정 선거비용 전액을 보전받는다. 올해 20대 대선을 앞두고도 더불어민주당은 279억여원, 국민의힘은 224억여원을 각각 받았다. 20대 대선이 끝난 후 다시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각각 431억여원과 394억여원의 선거비용을 보전받았다.

명백한 이중지급이다. 주요 선진국에서 이런 후한 선거 지원 제도를 찾기는 힘들다. 1991년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선거보조금이 지급된 이후 30년 넘게 쏟아부은 국고보조금은 1조원이 훨씬 넘는다. 그러나 사후 관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18대 대선 때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선거 전에 사퇴하고도 27억원이 넘는 선거보조금을 반납하지 않아 ‘먹튀’ 논란을 불렀다. 행정부나 지자체에 지원되는 국고보조금이 엄격한 관리·감독을 받는 것과 비교하면 정치 적폐가 아닐 수 없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선거비용 이중지급을 활용해 ‘당사 재테크’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건물 가격의 80%까지 대출해 서울 여의도에 수백억원대 당사를 매입한 뒤 선거보조금을 받아 대출금 상환에 이용한 것이다. 민주당은 당사 매입 이듬해인 2017년 6월 143억7500만원의 대출금이 있었는데 5년 만에 122억원을 갚았다. 국민의힘도 2020년 8월 410억원이었던 대출금 중 160억원을 2년도 안돼 상환했다. 선거보조금이 대출금 상환에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불문가지. 이렇게 사들인 당사는 매입가와 비교해 현재 시세로 각각 민주당은 124억원, 국민의힘은 35억이 올랐다.

선관위는 2013년 “선거비용 보전액을 지급할 때 선거 전에 이미 지급한 선거보조금은 제하고 잔액만 줘야 한다”는 내용의 법 개정 의견을 냈다. 그러나 정치권은 지금까지 한 차례도 제대로 된 논의를 하지 않고 있다. 우리 정치권이 얼마나 뻔뻔하고 무책임한지 다시 확인하게 된다. 여야가 나라 살림을 걱정한다면 당장 선거비용 이중지급 방지 입법에 나서야 하겠다.


박창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