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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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사법 불신 해소” [차 한잔 나누며]

이종엽 대한변호사협회장

“70돌 맞은 변협, 법치 확립 자부심
모든 법률안 사명감 갖고 검토 봉사
美선 민사소송 개시 전 증거 공개
진실 발견 가능… 원고 책임 줄여
입법과정 전문가 의견 반영 필요”

회원 수 3만2305명의 국내 최대 변호사 단체 대한변호사협회가 오는 28일 창립 70주년을 맞는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역사와 궤를 같이하며 그간 ‘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변호사 사명을 다하기 위해 힘써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종엽(59·사법연수원 18기) 변협 협회장은 70년 역사 중 30년을 함께했다. 1992년 검사로 임관한 그는 지난해 2월 2년 임기의 제51대 협회장이 됐다.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변협회관에서 만난 이 협회장은 “감회가 새롭다”며 “정부 수립 이후 법률가, 선배들이 법치 확립과 선진사회 구축에 이바지했다는 점에서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종엽 대한변호사협회장은 “대구 법률사무소 방화 테러로 창립 70주년을 자축할 분위기는 아니다”며 “다음 달 29일 기념행사를 숙연히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허정호 선임기자

최근 변리사법 개정안, 법률 플랫폼 로톡 등 법조 직역 관련 이슈들 때문에 변호사 이익을 위해서만 활동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에 대해 이 협회장은 “참 억울하다”고 했다. 법률안 검토와 인권 수호 사업 등 드러나지 않지만 변협의 역할이 꼭 필요한 일들을 묵묵히 해오고 있다.

특히 변협은 모든 법률 제정안과 개정안을 검토한다고 이 협회장은 강조했다. 법적으로 규정된 의무가 아니라 봉사다. 대개 국회에서 의견 요청을 해 온다. 대부분 변협 의견이 반영되는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처럼 정치적 사안은 국회가 밀어붙이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이 협회장은 “변협 법제위원회에 공법·민사법·형사법 등 분야별 소위원회가 있다”며 “위원들이 단순히 찬반 의견만 보내는 게 아니라 사명감을 갖고 그 논거를 다 정리한다”고 설명했다.

변협은 여성의 지위 향상이나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활동도 하고 있다. 변협 산하에 여성변호사특별위원회와 난민이주외국인특별위원회, 북한이탈주민법률지원위원회,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회 등 다양한 위원회가 있다. 또 대한변협법률구조재단을 통해 법률 구조 사업도 한다.

이 협회장은 지난 1년5개월간 ‘변협 개혁’ 측면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다. 이 협회장 취임 이후 변협은 검수완박 반대 선봉에 서고 대장동 특검 도입을 주장하는 등 현안에 목소리를 냈다.

그는 “법조 관련 문제점들에 대해선 변협이 원칙을 고수하고, 분명하고 일관된 입장을 취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변협에서 발행하는 신문인 법조신문이 집행부 홍보지에서 탈피하는 한편, 회비를 인하하고 외유성 해외 교류를 줄인 것도 개혁 사례로 꼽힌다.

변협은 사법 주권의 시민화, 법원 개혁의 일환으로 미국식 ‘증거 개시(디스커버리·discovery) 제도’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 제도는 민사소송 개시 전 양측의 증거 공개로 실체적 진실 발견을 가능케 한다. 원고의 입증책임을 줄인다.

그는 “미국식 디스커버리 제도는 사법 불신을 해소하고 소송 당사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재판을 위한 방안”이라며 “민사소송법 체계를 바꿔야 해 초안을 마련하는 걸 목표로 작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에 비해 디지털 증거들이 많아졌지만 개인이 기업이나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피고가 증거 제출을 거부하면 방법이 없는데, 양측이 자기한테 불리한 증거도 내놓게 할 수 있는 제도라고 덧붙였다. 이 협회장은 “법원도 (도입 필요성에) 상당 부분 공감하고 있다”면서 “법관의 재판 지휘권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디스커버리 제도가 소송비용이 많이 든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재판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 사안의 실체가 드러나 당사자들 간 합의로 소송이 조기에 종결되는 효과가 있다”고 일축했다. 상고율을 낮추기 위한 근본적 해결책이란 것이다.

이 협회장은 “한국의 법치 수준은 100점 만점에 70점 정도로 좀 많이 미흡하다”면서 국회를 향한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그는 “실질적 법치를 구현하려면 입법에 법률 전문가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며 “검수완박법은 검찰 보완수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협회장은 변협의 또 다른 70년을 위해 앞으로도 변호사 사명을 지켜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조 직역과 관련된 사안은 물론 사회적 논란이 되는 이슈들에 대해 가급적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시각에서 쓴소리를 하겠다”며 “법률 플랫폼 서비스로 인한 법률 시장 상업화를 막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