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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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칼럼] “DJ 닮고 싶다”며 반대로 하나

대선 패배 이재명, 성급한 당권 도전
자숙 시간 가진 김대중과 너무 달라
대장동 의혹 등 수사 방탄용 의심
기소 땐 민주당의 최대 리스크 우려

‘심리적 분당 상태.’ 이재명 의원이 지난 17일 당 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한 뒤 두 쪽으로 갈라진 더불어민주당의 현실이다. ‘친명계’와 ‘비명계’의 난타전은 지난해 대선 후보 경선 시절을 방불케 할 정도로 거칠다. 선거 이후가 더 걱정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논란의 중심에 선 이 의원의 출마의 변에는 3대 키워드가 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 본받기’와 ‘국민 우선·민생 제일’ 그리고 ‘통합의 정치’다. 허나 이 의원과 잘 매치가 되지 않아 공허하게 들린다.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고나 할까.

김환기 논설실장

이 의원은 당 대표 출마 선언 후 첫 일정으로 김 전 대통령 묘소가 있는 서울 국립현충원을 찾아 “개인적으로 닮고 싶은 근현대사의 위대한 지도자라 오늘 첫 일정으로 찾아뵙게 됐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은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그런 김 전 대통령을 이 의원이 닮고 싶다고 한 건 비슷한 정치경로를 따라가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의 표출로 볼 수 있겠다.

문제는 이 의원이 3·9 대선 패배 이후 약 4개월 만에,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았던 6·1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지 1개월 반 만에 당 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한 데 있다. ‘차기 대선 로드맵’ 추진에 유리한 정치환경을 만들기 위해 지금 당권을 잡아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낙선한 대선 후보가 자숙과 성찰은 건너뛰고 우려의 목소리에도 귀를 닫은 채 이렇게 초고속으로 당 대표 접수에 나선 것은 전례가 없다. 염치를 아는 정치인의 모습도, 국민에 대한 도리도 아니다.

1992년 14대 대선에서 패배한 김 전 대통령은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등 자숙과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뒤 1995년에야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며 정치에 복귀했다. 1987년 12월 13대 대선에서 패배해 2선으로 물러났다가 이듬해 4월 평화민주당 총재로 복귀한 적이 있지만 그건 직전 총선에서 후보자들 지원 유세에 나서 평화민주당을 원내 제1야당으로 도약시키는 성과를 낸 뒤의 일이다. 대선과 지선의 연패에 대한 책임이 큰데도 당권 도전에 나선 이 의원 사례와 비교할 일이 아니다. 김 전 대통령을 닮고 싶다면서 반대로 하는 것은 이율배반 아닌가.

이 의원은 또 ‘국민 우선·민생 제일’을 정치좌표로 제시했다. 민심을 살피고 민생의 개선에 매진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당 대표 출마 결정과정을 보면 진정성이 의심스럽다. 지난달 실시된 3개 여론조사에서 ‘부적절하다’고 답한 비율이 각각 56.1%, 53.9%, 50.8%로 반대 여론이 과반인데도 출마를 강행하지 않았나. ‘말 따로 행동 따로’ 정치로는 민심을 잡기 어렵다. “제일 좋은 정치는 국민의 마음을 따르는 것”이라는 중국 역사가 사마천의 말을 유념하기 바란다.

이 의원이 강조한 ‘통합의 정치’도 공감을 얻기 힘들다. ‘처럼회’로 대표되는 친명계 의원들의 강경한 목소리와 이 의원의 강성 지지층인 ‘개딸(개혁의 딸)’ 등의 팬덤 정치가 민주당 계파갈등을 초래한 주요인 아닌가. 개혁의 대상자가 혁신 드라이브를 걸겠다고 나선 격이다. 강성 지지층과 결별하거나 자제시킬 각오가 돼 있지 않다면 ‘통합의 정치’는 구두선에 그칠 것이다.

이 의원의 출마가 비판받는 또 다른 이유는 수사 방탄용 의혹 때문이다. 변호사비 대납 의혹, 대장동·백현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부인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이 이 의원의 소명을 기다리고 있다. 검·경의 수사 칼끝은 결국 이 의원에게 향할 것이다. 수사 방탄복을 더 두껍게 입기 위해 국회의원에 이어 당 대표가 되려 한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8월 28일 전당대회에서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 현실화할 공산이 크다. 민주당 당헌 제80조는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될 경우 당직을 정지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자칫 사법 리스크가 당의 최대 리스크로 비화할 수 있다. 그러면 당의 혁신 작업은 지체될 게 뻔하다. 이 의원은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을 해도 당 대표 출마는 선사후당으로 비친다는 지적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김환기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