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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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쉰다고 시장 가나요"… ‘의무휴업일 폐지’ 두고 엇갈린 시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민제안 톱10 중 가장 많은 ‘좋아요’ 받아
“온라인 유통 활성화로 의무휴업 의미 없다”
소상공인 “골목상권 보호막 제거” 정부 비판

“(대형마트가) 일요일에 쉰다고 시장으로 오나요.”

 

26일 오전 10시 서울 영등포구의 전통시장. 닭 정육점을 운영하는 한모(60)씨는 한숨을 쉬며 이같이 말했다. 1956년에 개설된 이 시장은 70년 가까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지만 시장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많지 않았다. 한씨는 “이미 이곳은 이마트, 홈플러스, 신세계 등 백화점 대형마트들로 둘러싸여 있다”며 “며칠 쉰다고 거기에 가던 사람들이 시장으로 오겠느냐”고 말했다. 

 

지난 24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가 정기휴무로 닫혀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영업시간 제한·의무휴업 범위에서 온라인 배송을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가운데 대통령실은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까지 국민제안 온라인 투표에 부치면서 대형마트 영업 규제 완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연합뉴스

또 다른 정육점을 운영하는 김모(63)씨는 “그래도 대형마트가 일요일이라도 영업하지 말아야 상생할 수 있지 않나”며 “우리는 가격도 더 싸서 많이 팔아야 겨우 남기는데 손님이 더 없어진다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대형마트 영업 규제 중 하나인 의무휴업일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이에 호응하는 반면 소상공인과 마트 노동자들의 반발도 커지고 있어 진행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대통령실은 국민제안에 접수된 민원·제안·청원 1만2000여건 가운데 정책화가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10개를 선정, 오는 31일까지 10일간 온라인 국민투표를 진행해 상위 3건을 국정에 반영한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4시 현재까지 국민제안에 올라와 있는 ‘국민제안 톱 10’ 가운데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가 7만5135건의 ‘좋아요’를 받으며 가장 많은 표를 받고 있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은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이 제정됨에 따라 생겨났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장은 매월 이틀을 대형마트 의무휴업일로 지정해야 하고 영업시간도 오전 0시부터 10시 사이 범위에서 제한할 수 있다. 서울시의 경우 매월 둘째·넷째 주 일요일을 의무휴업일로 정하고 있다.

 

이는 골목상권과 마트 노동자들의 휴식권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설립된 법안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모두 못 살린 법이라는 비판도 꾸준히 이어져 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14일 발표한 소비자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7.8%는 대형마트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가장 많은 이유는 ‘전통시장·골목상권이 살아나지 않아서’(70.1%)였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 서로 경쟁하는 관계에 있느냐는 물음에는 57.3%가 ‘아니다’라고 답했고, ‘경쟁하는 관계’라는 응답은 20.3%에 그쳤다.

 

최근 온라인 유통 시장이 활성화됨에 따라 대형마트 규제가 이전보다 의미가 없어졌다는 의견도 많았다. 직장인 이모(24)씨는 “마켓컬리를 주로 이용해서 대형마트를 안 간 지 오래”라면서 “마트 휴업을 해봤자 수요가 새벽 배송으로 몰린다면 전통시장에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다. 차라리 네이버 쇼핑 등 채널과 전통시장을 연계해 상생을 모색하는 방안이 합리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많은 소상공인은 의무휴업일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생선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강모(58)씨는 “대형마트 상품들과 같은 품목을 파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의무휴업일마저 없으면 장사가 더 어려워진다”며 “접근성으로 보나 편리성으로 보나 대형마트를 찾지 않겠나”고 말했다. 

 

한국 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도 지난 21일 성명을 내고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은 2018년 대형마트 7곳이 낸 헌법소원에서 합헌 결정된 바 있다”며 “적법성이 인정됐음에도 새 정부는 국민투표를 통해 골목상권의 보호막을 제거하고 대기업의 숙원을 현실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구현모 기자 lil@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