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세계와우리] 러시아산 석유 가격 상한제와 한반도

러 옥죄기 일환 한국 동참 표명
참여국마다 부담 달라 균열 위험
韓 지정학적 긴장 고조도 악영향
후폭풍 고려 긴밀하게 대응해야

지난 19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서울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와 회담을 가졌다. 양 장관은 이날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에 맞게 한·미 경제협력 관계를 확대·진화시킨다는 큰 방향의 합의와 함께 러시아산 원유의 가격 상한선 설정에 한국이 동참 의사를 표명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를 옥죄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고안된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 계획은 현재 제도의 설계 방식을 놓고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다양한 의견들이 논의되고 있다. 이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문제는 설계 방식을 넘어서는 함의를 한국이 제대로 읽고 그 후폭풍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느냐다. 참여하는 나라마다 지경학적, 지정학적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직면할 후폭풍도 다를 수밖에 없다.

김석환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국제정치학

이 제안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예상되는 후폭풍을 살펴보자.

첫째, 러시아에게만 정밀 타격을 주고 세계 경제에는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러시아의 대응 보복 조치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와 중동 산유국들의 증산 여부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자국 원유의 수출을 중단할 수도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은 수입국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이런 제도의 성공을 원하지 않는다.

둘째, 감당해야 할 부담이 참여국마다 달라 제재 균열 위험이 크다. 미국과 캐나다는 주요 에너지 수출국이며 이미 러시아에서 원유를 수입하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6월에 결정한 러시아산 원유의 수입금지 조치에 따라 연말까지 수입액을 90% 정도 감축할 계획이다. 영국 등 주요 유럽국들은 자주 개발률이 높다. 단순 자원 수입국들과 경제적 득실이 다르다. 이 제도가 성공하려면 원유 수입 대국들의 동참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중국과 인도가 여기에 동참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셋째, 현재 논의되는 가격 상한은 1배럴(약 160ℓ)당 40∼60달러다. 현재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가격의 절반 정도다. 하지만 향후 원유 가격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는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 자칫 잘못 대응할 경우 에너지 수급 및 안보에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다. 가뜩이나 한국은 치솟는 에너지 수입 가격으로 무역수지가 4개월 연속 적자를 보이고 있다.

넷째, 중국과 인도의 협력을 형식적으로 얻어낸다 하더라도 이들이 이를 집행하지 않거나 실제적으로는 무기 등 다른 물품의 수입 가격에 석유 가격을 보충하는 방식으로 계상할 경우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 미국과 G7(주요 7개국)이 선박보험 제공 거부 등을 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국가(제3국)에 대한 사실상의 세컨더리 보이콧이 되며 그 파장이 어디까지 확산할지 예측을 불허한다.

다섯째, 한반도의 경우 지정학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악영향이 올 수 있다. 한국은 점점 러시아와 경제적, 비경제적 긴장도를 높이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반면 북한은 친러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런 상황에서 공식 혹은 비공식적으로 북한에 대한 제재를 무력화하는 지정학적 대응을 할 수 있다. 중유 및 원유의 제공을 늘리고 북한 노동자에 대한 비자 정책의 유연성 등을 더욱 높일 수도 있다.

여섯째, 러시아가 한국 등에 경제적, 비경제적 방식의 보복을 취할 수 있다. 이때 반도체 공급망 동맹인 ‘칩(Chip)4’에 대한 중국의 대응 전략과 연계할 수도 있다. 러시아는 이미 사할린2 사업에 참여한 외국 기업의 보유 자산을 러시아 법인에 무상으로 인도하도록 명령해 일본의 에너지 안보에 일격을 가했다.

동맹과 국제사회의 기본 원칙에 대한 지지와 동조는 당연하다. 하지만 추진하려는 정책이 가진 목표를 명확히 하고 그 적실성을 따져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러시아 석유 가격 상한제에 대한 논의와 설계 과정에 한국이 더 진지하고 정밀하게 대응해야 할 이유다.


김석환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