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울산에서 발생한 8세 아이 개물림 사고와 관련해 견주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처벌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피해 아동에게 치명상을 입혔음에도 불구하고 사고를 낸 반려견이 동물보호법상 입마개를 의무 착용해야 하는 견종이 아닌 데다, 사고 당시 견주와 함께 외출한 게 아니어서 ‘외출 시 목줄 의무 착용’ 조항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선 반려견을 키우는 가구가 계속 늘고 매년 2000건가량의 개물림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견주에게 더 강한 책임 의무를 부과하도록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31일 경찰에 따르면, 울산 울주경찰서는 개물림 사고의 견주 70대 A씨를 과실치상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A씨는 지난 11일 자신이 키우던 반려견이 울산 울주군의 한 아파트에서 8세 아이를 공격해 상해를 입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고를 당한 아이는 목 등을 물려 봉합수술을 받았지만 상처가 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A씨에게 과실치상 혐의만 적용한 것은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선, A씨 반려견은 진도 잡종견으로 입마개 의무 착용 대상 견종이 아니다. 현행법은 맹견 5종(도사견,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 스태퍼드셔 불테리어, 로트와일러 및 그 잡종)만 입마개를 의무적으로 착용하도록 하고 있다. 맹견 5종에 해당되지 않으면 공격성이 있거나 몸집이 크더라도 입마개를 착용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현행법은 견주가 반려견을 동반하고 외출할 때 목줄을 하도록 하고 있지만, 해당 사고엔 이 조항도 적용할 수 없다. 견주가 반려견을 데리고 외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견주는 사고 당일 새벽에 개가 스스로 목줄을 끊고 도주했다가 이 같은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사례처럼 개물림 사고에서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못해 과실치상 혐의로만 견주를 처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해 5월 경기 의정부에선 가게 앞에 머물던 진돗개 2마리가 산책하는 50대 시민에게 달려들어 손을 무는 사고가 있었다. 이 시민은 진돗개에게 물려 넘어지면서 3주의 치료를 요하는 코뼈 골절 진단을 받았다. 당시 견주는 진돗개 2마리를 제대로 묶지 않고 입마개도 하지 않았지만,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를 적용받지 않았다. 법원은 견주에게 과실치상 혐의로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법조계에선 잇따르는 개물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선 동물보호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소방청에 따르면 개물림 사고는 매년 2000건가량 발생하고 있다. 최근 몇년간 개물림 사고의 심각성과 견주의 주의를 촉구하는 언론 보도 등이 잇따랐지만 개물림 사고는 2017년 2405건, 2018년 2368건, 2019년 2154건, 2020년 2114건으로 크게 줄지 않고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형법상 과실치상은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인데 이는 울산 개물림 사고 피해 아이의 트라우마를 고려하면 너무 낮은 형벌”이라며 “지금처럼 동물보호법의 범위가 협소해 맹견 관리 소홀 때만 처벌한다면 개물림 사고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승 연구위원은 “개인적으로는 반려견의 크기에 따라 입마개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반려동물 관련 소송 전문가인 문강석 변호사(법무법인 청음) 역시 “요즘 들어 마당에서 기르는 강아지가 밖으로 나가 사람을 무는 사고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며 “이 경우 동물보호법으로 처벌이 안 되는데 이 부분에 대한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처벌을 강화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견주의 책임을 강화하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