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3%를 찍으며 23년8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지만, 전월보다 상승폭은 다소 둔화했다. 물가 고공행진이 조만간 잦아들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오지만,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6%대의 고물가가 당분간 지속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물가 흐름이 예상 범위에 있는 만큼 이달 말 한국은행의 대응은 빅스텝(한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대신 베이비스텝(〃 0.25%포인트 〃)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2일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3%(전년 동기 대비)로 1998년 11월(6.8%) 이후 23년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1980년대 석유파동 이후 40년 만에 최악으로 꼽히는 이번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은 그 수준이 높다는 점도 문제지만, 상승세가 매우 가파르다는 점에서 당국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올해 2월까지 3%대이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월 4%대에 이어 5월 5%대, 6월 6%대로 급격히 상승했다. 상승폭은 4월 0.7%포인트, 5·6월 0.6%포인트였다. 5월까지는 0.2%포인트이던 기대인플레이션율 상승폭 또한 6월에는 0.6%포인트, 7월에는 0.8%포인트로 커졌다.
하지만, 7월 들어 소비자물가 상승률 증가폭은 0.3%포인트로 다소 완화됐다. 전월 대비 상승률 또한 올해 1∼2월 0.6%, 3∼5월 0.7%로 확대됐지만, 6월 0.6%, 7월 0.5%로 둔화세가 엿보인다.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주춤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번 인플레이션의 주된 동력이던 국제유가와 국제 식량 가격이 다소 안정적인 흐름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배럴당 120달러 수준까지 치솟았던 두바이유 가격은 최근 100달러 근방으로 내려앉았다. 국제 원자재 및 곡물 가격 또한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 안팎에서는 3분기 말(9월)이나 4분기 초(10월)쯤 물가가 정점을 찍을 것이라는 전망이 흘러나왔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말 “추석 즈음 일정 부분 상승 압력이 있을 수 있지만, 3분기 말이나 4분기 초에는 물가가 정점을 나타내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앞서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달 13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비슷한 전망을 하면서 “물가가 정점을 찍은 뒤 급속히 떨어지지 않고 완만히 떨어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지만, 상승세가 둔화하는 등 인플레이션 상황이 예측 범위를 벗어나지 않음에 따라 이러한 전망은 유효하다. 이환석 한은 부총재보는 이날 주재한 ‘물가상황 점검회의’에서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아진 가운데 고유가 지속, 수요 측 물가 압력 증대 등으로 앞으로도 소비자물가는 당분간 6%를 상회하는 오름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우크라이나 사태의 전개 양상과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추이 등이 불확실성 요인으로 남아 있다. 한은은 구체적으로 국제유가와 곡물 가격의 경우 여전히 공급 측면의 상방 압력이 있고, 수요 측면에서 외식, 여행·숙박 등 관련 개인서비스 물가 오름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고물가에 대한 대응 필요성이 여전한 만큼, 오는 25일 한은 금통위에서 추가 금리 인상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불확실성이 예상외로 확대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두 달 연속 빅스텝에 대한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짙다.
한은이 지난달 사상 첫 빅스텝을 단행한 데에는 물가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가 강해져 추가적인 물가 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이창용 총재가 전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물가 오름세를 잡지 못하면 국민의 실질소득이 더 떨어지고, 뒤에 (물가 상승세를) 잡으려면 더 큰 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에 금리를 통해서라도 물가 오름세 심리를 꺾는 것이 거시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물가가 예상했던 기조에서 벗어나면, 금리 인상의 폭과 크기를 그때 가서 데이터를 보고 결정하겠다”는 단서 조항 또한 여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