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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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인문정원] 기억과 망각

삶은 연속된 기억 활동들의 총합
망각은 기억의 유실 아닌 승화

뭔가를 떠올려야 하는데, 기억이 나지 않아 낭패를 당한 적이 있습니까? 어젯밤 자동차를 주차한 장소를 찾지 못해 낭패를 보거나, 중요한 서류를 어디에 보관했는지 몰라 곤란했을지도 모릅니다. 통장이나 현관 잠금장치의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난감할 것입니다. 기억은 우리가 보고 듣고 겪은 경험이나 정보를 부호화해서 뇌에 응고시키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기억은 뇌 속에 응고된 기억을 인출하고 재생하는 전 과정을 포괄합니다. 우리 삶은 기억회로의 활성화를 통한 시간과 경험의 소환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삶이 기억의 연속성 위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의 총합이라고 할 때 기억에 장애가 생긴다면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홀로 결락되어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지고, 맥락이 끊긴 기억 안에서 찰나의 삶만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청소기 돌리는 일을 되풀이하거나 밥을 먹고 또 먹을지도 모릅니다. 회사에 출근하는 것도 집으로 돌아오는 일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기본으로 수행하는 것들, 즉 먹고, 걷고, 말하고, 샤워하고, 이 닦는 법 따위를 날마다 새로 배워야 할지도 모릅니다.

장석주 시인

우리는 생애 첫 번째 키스를 기억하지만 열 번째 키스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왜 어떤 경험은 기억하고 어떤 경험은 기억하지 못하는 이 차이는 어디에서 발생할까요? 인지과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작업기억, 일화기억, 의미기억, 섬광기억, 단기기억, 장기기억 등을 갖고 산다고 합니다. 기억을 위해서는 시각 신호, 소리, 정보, 감정, 의미 등을 신경 신호로 변환시켜 뇌에 입력시켜야 합니다.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경험은 뇌의 해마에서 기억으로 강화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탄생과 죽음, 결혼과 이혼 같은 경험은 ‘섬광기억’으로 우리 뇌에 각인되는데, 이런 강렬한 감정을 동반한 기억은 쉽게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섬광기억이 공포, 분노, 기쁨, 슬픔 같은 강렬한 감정과 함께 각인된 기억이라면 몇 초 만에 휘발되는 지속 시간이 짧은 기억은 작업기억이라고 합니다. 작업기억은 일상생활 중 항상 가동되는 것으로 뇌에 각인되지 않는 기억입니다. 이를테면 누군가 전화 통화로 불러준 전화번호는 아주 짧은 순간만 기억에 머물렀다가 곧 사라집니다.

 

솔로몬 셰레셰프스키라는 사람은 ‘아무것도 잊지 못했던 남자’, 즉 비상한 기억력을 가진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러시아의 심리학자 알렉산드르 루리아는 30여 년 동안 셰레셰프스키의 기억력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실험했는데, 그는 무의미하게 나열된 숫자들, 낯선 외국어 시, 복잡한 과학공식을 외웠고, 몇 해가 지난 뒤에도 그 기억을 고스란히 재현했습니다. 그의 기억력은 뇌과학으로는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경지였습니다. 그는 과잉기억증후군에 빠져 망각하는 법을 잊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기억이 정보 저장과 정보 삭제의 균형점 위에 있을 때 우리는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망각은 기억을 유실하는 게 아니라 기억의 승화입니다. 망각은 기억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망각은 “신경세포의 생물학적 연결 구조가 자연스럽게 변화하거나, 어쩌다 보니 특정 기억을 자주 인출하지 않게 된 경우, 우연히, 수동적으로 일어”납니다.(리사 제노바, ‘기억의 뇌과학’) 우리는 망각 덕분에 ‘무의미하고, 성가신’ 기억들, 노이즈를 일으키는 불필요한 기억의 강박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기억이 삶의 가능성이자 한계이고, 중요한 생애 자산이라면, 망각은 죽은 기억입니다. 망각의 광휘 속에서만 기억은 빛납니다. 망각이 슬픈 것은 노래를 잊고, 열여덟 살의 여름을 잊고, 형제자매를 잊고, 모든 과거와 사유방식을 잊고, 우리가 쌓아올린 생이라는 모래탑이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억이 사라진다면 새벽을 맞을 때마다 가슴에 일던 설렘과 한 줌의 기쁨도 모른 채 망각의 순교자가 되어 상징적 죽음을 맞고, 세계는 거대한 무덤이 되고 말 것입니다. 나이 들수록 기억이 쇠퇴한다는 당신에게 ‘기억의 축복을 누려라, 그러나 망각의 고마움도 잊지 마라!’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장석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