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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박’난 주식·코인… ‘청춘’ 담보 잡히다 [‘빚투’ 일확천금의 그림자]

(상) 대박 꿈꾸다 쓰러진 2030

밤낮도 주말도 없이 일해도 빚의 굴레에서 ‘허덕’
극단적 선택도 여러번… 남은 선택은 ‘죽지 못해 사는 것’

주식·코인 ‘영끌 투자’ 실패한 청년층
눈덩이 된 이자 감당 못해 미래 암담
코로나 후 다중채무 증가폭 2030 최고

투자가 원인된 범죄 2년여 동안 43건
“빚 갚기 위해서”… 15건이 2030 범행
잇단 금리인상에 연말 범죄율 늘 듯

박모씨는 지난해 5월부터 두 달간 여러 차례 자해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새 출발을 해도 늦지 않을 28세 젊은 나이에 그는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했다. 번번이 실패한 후 박씨에게 남은 선택은 ‘죽지 못해 사는 것’이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할 때마다 그는 시간을 1년 반 전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경제적 자유’를 얻겠다며 가상화폐(코인) 투자에 발을 디딘 순간이었다. 2030세대는 물론 대학생까지 코인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모아 놓은 돈이 많지 않았던 박씨는 제1 금융권과 제2 금융권, 심지어는 대부업도 마다하지 않고 4000여만원의 대출을 받았다.

 

그러나 ‘빚투’(빚내서 투자)가 남긴 것은 빚의 굴레였다. 지난해 3월 투자를 시작한 박씨에겐 3600만원의 채무만 남았다.

 

일용직으로 일하는 박씨는 종일 땡볕에서 일해 일당으로 13만원 정도 벌고, 한 달에 150만원가량을 빚 갚는데 쓴다.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못한다. 대출을 갚고 끼니라도 때우려면 매일 오전 5시30분부터 인력사무소에서 대기해야 한다. 육체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했던 선택이 더 가혹한 노동지옥의 문을 열어버린 것 같다고 그는 자책했다. 박씨는 “동거한 지 6년 된 여자친구를 보며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자고 결심하지만, 솔직히 왜 사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떨궜다.

 

대내외 요인으로 주식·가상화폐 시장이 흔들리면서 투자에 뛰어들었던 2030세대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수년간 이어진 저금리 기조에 공격적 투자를 하기 위해 유행처럼 번진 빚투를 한 게 화근이 됐다. 유동성이 풍부했던 시기엔 어디든 올라타면 쉽게 자산을 불릴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거품이 꺼지면서 빚투의 실체가 드러나는 중이다. 빚투 청구서는 만만치 않다. 투자 실패는 개인 채무자와 신용불이행자를 양산해 소비 위축, 경기침체로 이어질 뿐 아니라 횡령, 절도, 사기, 살인, 자살 등 각종 사건·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 빨간불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체험학습을 한다며 학교를 떠났다가 바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조모(10)양 가족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일선 경찰서 수사관계자들은 “투자 실패가 동기인 범죄를 비롯해 캐피털이나 대부업체들의 이자가 연체된 2030을 대상으로 한 고소 고발이 연말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 때문에… 2년4개월간 최소 ‘43건’ 범행

 

7일 세계일보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한 직후인 2020년 3월부터 2022년 7월까지 언론에 보도된 형사사건을 분석한 결과 ‘투자’가 범행동기인 사건이 총 43건으로 파악됐다. 한 달에 1.5번은 투자실패 때문에, 혹은 투자금 마련을 위해 범행이 이뤄진 것이다. 혐의는 살인과 살인미수, 상해, 폭행, 횡령, 배임으로만 한정했다. 극단적 선택(시도 포함) 8건을 포함하면 그 수는 51건으로 늘어난다.

 

눈에 띄는 점은 2030이 범행 주체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43건 중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건(13건)을 제외한 30건 중 15건(50%)이 2030이 저지른 범죄였다. 극단적 선택을 했거나 시도했다 실패한 8명은 모두 2030이었다.

 

근로소득만으로는 내집 마련 등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마지막 탈출구로 투자를 선택했다가 실패하자 무기력감을 느껴 범행 또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언론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 더 많고, 사기 등 다른 범죄들도 포함하면 투자로 말미암아 벌어진 형사사건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43건의 사건 중엔 횡령·배임이 33건으로 가장 많았고, 살인·살인미수가 6건으로 뒤를 이었다. 상해도 4건 있었다.

 

◆“빚 갚고자”… 성범죄 저지르고, 배에 불 지르고

 

언론에 보도되진 않았지만 투자 실패가 원인이 된 끔찍한 범죄는 더 있었다. 세계일보가 판결문 열람을 통해 확인한 결과, 투자 실패는 성범죄와 방화 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20대 정모씨는 지난해 비트코인 투자 등으로 3000만원의 빚을 졌다. 그는 대출금을 마련할 방법을 생각하다가 평소 알고 지내던 A(18)씨의 나체 사진을 찍은 뒤 이를 팔아 번 돈으로 빚을 갚기로 마음먹었다.

 

정씨는 지난 1월 초 “좋은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으니 소개해주겠다”며 A씨를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 집에서 이야기를 하던 중 A씨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찾기 위해 집을 뒤적이다 이불 밑에서 흉기를 발견했다. 그 순간 정씨는 돌변했다. A씨를 눕히고 제압한 뒤 흉기를 들고 “소리 지르지마라. 어차피 옆집에 아무도 없다. 옷을 벗고 사진을 찍어라”라고 협박했다.

 

재판부는 정씨가 빚 갚을 돈을 마련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정씨가 피해자의 나체 사진 등을 찍어 대출금을 변제할 목적으로 피해자를 계획적으로 유인해 범행을 저질렀다”며 “죄질이 불량하고, 피해자가 정씨의 엄벌을 원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정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고, 최근 끝난 항소심에서도 1심 판결이 유지됐다.

 

뱃일을 하던 여모(44)씨는 코인 투자에 실패한 후 자신의 평생 일터인 배에 불을 지르고 말았다. 여씨는 비트코인 투자 실패로 1200만원의 채무가 생겼다. 이미 2900만원의 빚이 있던 여씨는 지난해 8월 29t짜리 배에 올랐다. 2000만원의 선수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원래 여씨는 기관장으로 뱃일을 하곤 했는데, 당시엔 일반 선원 직급인 갑판장을 맡았다. 그러던 중 지난해 10월 “왜 이번엔 일반 선원으로 배에 탔느냐”는 말을 지인들로부터 듣고 격분해 범행을 결심했다. 배에 불을 질러 배가 조선소에 수리를 하러 들어가면 자신은 다른 배에 기관장으로 탑승한 뒤 그때 받는 선수금으로 빚을 갚을 생각이었다.

 

지난해 10월 8일 0시10분, 여씨는 전남 목포 동명항에 정박해있던 배에 몰래 탔다. 30여분이 지나 여씨는 터보라이터로 배에 걸려있던 우의에 불을 질렀고, 불은 정박해 있던 다른 배에도 옮겨 붙었다. 그 결과 여씨는 자신이 선원으로 있는 배에 3억5000만원 상당의 수리비가 필요한 피해를 끼쳤다. 다른 배도 각각 3억9000만원, 1500만원의 손해를 봤다.

 

현주선박방화 혐의로 기소된 여씨는 1심과 항소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여씨는 재판과정에서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남긴 후였다. 

 

◆높아질 범죄율… 암담한 미래

 

연말이 되면 무리한 투자에서 비롯된 사건 사고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는 자산시장이 대폭락한 지 두 달도 채 안 된 상태여서 아직 폭탄이 터지기 전이란 분석이 많다. 유동성 거품이 꺼지고 경제위기가 왔던 과거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6.9%포인트 떨어지는 동안 범죄율은 11.16%포인트나 상승했다.

 

특히, 이번엔 빚을 내 자산시장에 투자한 2030의 범죄율이 높아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20대와 30대의 가계대출 총액은 505조2446억원이다. 코로나19 사태 발생 직전인 2019년 말(410조2261억원)과 비교하면 23.1%(95조원)나 증가했다. 가계대출에는 주택담보대출이나 전세자금대출 평균도 포함돼 있어 증가분이 모두 ‘빚투’로 흘러들어갔다고 할 순 없지만, 아직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2030에게 100조원에 가까운 빚이 늘었다는 것은 분명 위험 신호다. 여기에 대출금리가 10%대에서 형성되는 제2금융권의 2030 가계대출도 2019년 말 130조2117억원에서 올해 1분기 157조4760억원으로 20.9% 늘었다.

 

높은 이자 부담을 지고 있는 청년들에게 최근 연이은 금리 인상과 자산시장 붕괴는 이중 삼중고로 이어진다. 빚 내서 빚 갚는 악순환에 빠지면서 3곳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30대 이하 다중채무자 비중도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금융권 전체의 다중채무자는 451만명, 채무액 규모는 598조8000억원 수준으로, 2017년 말(416만6000명·490조6000억원)보다 각각 34만4000명(8.3%), 108조2000억원(22.0%) 증가했다.

 

연령대별로 보면 30대 이하 청년층의 증가폭이 32.9%로 가장 높았다. 이들의 빚은 39조2000억원 늘어 158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진 의원은 “청년들의 가계대출이 늘어난 상태에서 금리가 인상돼 연체 등 어려움에 내몰릴 이들이 많아질까 우려된다”며 “이들을 위한 선제적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진일 고려대 교수(경제학)도 “지금 현 상태를 방치했을 때 대한민국이 얼마나 무너지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하다”며 “제대로 된 진단과 분석을 하고, 이들을 도와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부 경찰팀=남정훈·권구성·백준무·이희진·장한서·조희연 기자


사회부 경찰팀=남정훈·권구성·백준무·이희진·장한서·조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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