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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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연임 도전 말리는 NYT, 긴즈버그까지 꺼내 들어

"박수칠 때 떠나라"… 세대교체 필요성 강조
백악관은 "2024년 대선에 바이든 출마할 것"

진보 성향의 미국 유력지 뉴욕타임스(NYT)가 고(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전 연방대법관 사례까지 들어가며 조 바이든 대통령의 연임 포기를 종용하고 나섰다. 여당인 민주당 일각에서 제기된 이른바 ‘세대교체론’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진보 언론으로도 확산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이 2024년 대선에 민주당 후보로 재도전할 것’이란 백악관의 입장은 아직까지 확고해 보인다.

1993년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 후보자로서 상원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판사(오른쪽)에게 당시 민주당 상원의원이던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이 귀엣말로 조언을 해주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NYT는 8일(현지시간) 사설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 포기 결단을 내릴 것을 촉구했다. 오는 11월 연방의회 중간선거를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이 ‘내 역할은 4년으로 족하다. 차기 대통령은 젊은 지도자 중에서 나와야 한다’는 취지의 선언을 한다면 중도층 유권자의 표심이 민주당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이다. 1942년 11월생인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당시 78세로 미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이었는데, 선거가 치러지는 시점엔 80세가 된다. 지금까지 미국에 80대인 대통령은 없었다.

 

NYT의 지적은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해 온 개혁 법안들이 잇따라 의회를 통과한 직후 나온 것이어서 의미심장하다. 기후변화 대응 및 건강보험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입법 성사가 대표적이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반도체 지원법’의 통과도 괄목할 만한 성과로 평가된다.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고공으로 치솟던 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선 점 역시 바이든 행정부를 비난하던 유권자 일부가 마음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NYT는 “바이든 대통령이 일련의 승리를 맛보고 있는 동안 되새겨야 할 일이 있다”며 “성과를 내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떠나는 것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야 할 시기”라고 일갈했다. 한마디로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요구인데 바이든 대통령 임기가 아직 2년가량 남았음을 감안하면 2024년 대선에 출마하지 말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 연임 도전 포기 의사를 11월 중간선거 이전에 밝히는 게 여당인 민주당의 득표에 더 도움이 되리란 분석도 담겨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8일(현지시간) 홍수 피해가 심각한 켄터키주(州)를 찾아 이재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 SNS 캡처

눈길을 끄는 건 NYT가 바이든 대통령한테 ‘공인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는 취지의 충고를 하며 내세운 사례가 2020년 타계한 긴즈버그 전 대법관이란 점이다. 1993년 미 역사상 두번째 여성 대법관으로 취임한 그는 27년간 최고 사법기관 구성원의 자리를 지키며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권익 옹호에 앞장서 ‘진보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1999년 대장암에 걸린 것을 시작으로 투병생활이 잦아지면서 그의 건강에 의구심을 표하는 이가 늘었다. 미국에서 대법관은 종신직인데 행여 긴즈버그가 공화당 소속 대통령 임기 도중 사망한다면 그 빈 자리가 보수 대법관한테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대 들어 툭하면 병원 신세를 지는 긴즈버그를 향해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요구하는 진보 진영의 목소리가 차츰 커졌다. 이들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임 중인 지금 긴즈버그가 자진 사퇴한다면 젊고 진보적인 법조인을 그 후임으로 임명할 수 있다”며 “이 경우 긴즈버그의 후임자가 꽤 오랫동안 대법원에서 진보의 목소리를 대변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오바마 대통령 역시 긴즈버그에게 ‘제 임기 중 그만두는 게 좋겠다’는 취지의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긴즈버그는 이를 거부했다. 결국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도중인 2020년 9월 별세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보수의 아이콘’ 에이미 코니 배럿 판사를 그 후임자로 임명했다. 이렇게 해서 보수 6 대 진보 3의 보수 절대우위 구도로 개편된 대법원은 여성의 낙태권을 부정한 최근 판결에서 보듯 강경한 보수 일변도로 치닫는 중이다.

2020년 9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 사망 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왼쪽)에 의해 후임 대법관 후보자로 지명된 보수 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판사가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워싱턴=AFP연합뉴스

사실 NYT에 앞서 여당인 민주당 내부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도전 반대를 외치는 목소리가 나왔다. 딘 필립스 하원의원(미네소타주)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달 “바이든 대통령이 2024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길 바란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우리 민주당 동료 대부분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며 “이제는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이라고도 했다.

 

다만 연임 도전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의지는 현재로선 확고해 보인다.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백악관 출입기자를 상대로 한 정례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2024년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2024년까지는 아직 너무 멀다”고 덧붙였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