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다리, 짜릿한 절경···더위도 시름도 두고 가세요/절벽따라 아슬아슬 걸친 잔도따라 한발한발/자연이 빚은 수직절벽 협곡과 위대한 주상절리·수평절리 즐기며 수십만년전으로 떠나는 지질여행
수직 절벽에 아슬아슬 위태롭게 걸친 잔도(棧道)를 따라 걷는다. 낭떠러지 아래는 금세라도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 사납게 울부짖으며 협곡의 절벽을 사정없이 때리고 지나가는 한탄강. 아주 잠깐 내려다보는데도 다리는 맥없이 풀려 후들거리고 머리카락은 쭈뼛쭈뼛 솟구쳐 오른다. 수십만 년 전 자연이 빚은 절경을 아찔하게 즐기는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에 섰다.
◆자연이 조각한 천혜의 비경 한탄강 주상절리
54만∼12만년 전 일이다. 북한 평강 오리산 등에서 10여차례 화산 폭발이 일어나면서 평강과 철원 일대 650㎢의 광활한 면적이 용암으로 뒤덮였다. 두껍게 쌓인 뜨거운 용암은 낮은 곳을 따라 흐르기 시작했는데 철원~포천~연천을 거쳐 파주에서 멈췄다. 현무암은 표면부터 급격하게 냉각돼 수축하면서 안쪽으로 틈이 생겼고 사각∼칠각으로 갈라진 기둥 모양의 주상절리나 수평으로 갈라진 판상절리가 됐다. 여기에 빙하기가 끝나고 녹은 물들이 유속이 빠르고 거센 강으로 변하면서 현무암 지대를 파고, 깎으며 흘러내렸다. 이때 거대한 바위들이 덩어리째 떨어져 나가면서 수십m 높이 수직 절벽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기이한 협곡을 만들었는데 바로 한탄강과 임진강에서 만나는 주상절리 수직 절벽이다. 이런 빼어난 풍경을 유네스코가 그냥 둘 리 없다. 2020년 7월 주상절리와 베개용암 등 화산지형이 잘 보전된 이 일대 1165.61㎢가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돼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나라의 자연경관으로 우뚝 섰다.
이처럼 유네스코도 인정한 절경이지만 그동안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웠다. 절벽이니 당연히 길이 없기 때문이다. 몇곳에 설치된 전망대나 래프팅을 통해 좀 더 가까이서 즐길 수 있지만 이런 방법도 특정 지점이나 구간에 한정됐을 뿐이다. 이런 아쉬움이 지난해 11월 드디어 해소됐다. 절벽 단면을 따라 걸어가면서 비경을 즐기는 잔도 3.6km가 완공된 덕분이다. 잔도는 험한 벼랑에 선반을 매달아 놓듯, 위태롭게 만든 길이다. 전 세계적으로 외진 산악 지대를 통과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잔도를 활용한다.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을 즐기는 방법은 두 가지. 강원 철원군 갈말읍 군탄리 순담매표소 또는 드르니매표소를 이용하면 되는데 주로 순담매표소를 많이 찾는다. 한번 들어서면 중간에 나오는 길은 없다. 걷다가 온 길을 다시 돌아가거나 끝까지 걸어야 한다. 주중에 완주한다면 양쪽 매표소에 대기하는 택시를 이용해 주차장으로 돌아가야 하고 주말에는 매표소를 오가는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어른 입장료는 1만원인데 5000원을 철원의 식당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지역 상품권으로 내준다. 택시비용으로도 쓸 수 있으니 아주 요긴하다.
◆폭염에도 소름 돋는 스릴 만점 잔도
순담매표소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게이트를 통과하면 가장 먼저 순담계곡 절경이 여행자를 반긴다. 넓은 전망쉼터에선 여행자들이 나무그늘에 앉아 한가로이 자연이 빚은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 중이다. 천연으로 형성된 하얀 모래밭과 깎아내린 듯한 벼랑, 가파른 물살이 조각한 기묘한 화강암 바위들이 어우러지는 풍경은 보면 볼수록 경이롭다. 기암괴석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한 무리의 래프팅 보트가 이어져 내려간다. 한탄강에서 가장 인기 있는 래프팅 명소로 주변에 순담레저, 한탄강래프팅 등 업체들이 몰려 있다. 드르니 매표소까지 3.4km 구간에는 이런 전망쉼터 10개가 마련돼 있으니 쉬엄쉬엄 걷기 좋다.
순담전망대를 뒤로하고 왼쪽 길로 접어들면 본격적인 잔도가 펼쳐진다. “와∼” 첫 번째 잔도로 들어서자 여행자들이 탄성을 쏟아낸다. 30∼40m 절벽 중간쯤에 위태롭게 매달린 하늘색 잔도가 협곡 절벽을 따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모습이 매우 경이롭다. 보는 것만으로 아찔한데 발밑은 구멍이 숭숭 뚫린 그물 구조. 발밑으로 흐르는 시퍼런 강물 때문에 간담이 서늘하다.
100m쯤 걷다 보면 더 아찔한 모험이 시작되는데 바로 ‘순담 스카이 전망대’. 잔도 옆에 강물 위로 툭 튀어나온 반원형 잔도를 덧대 붙였는데 허공에 매달려 걷는 기분이다. 이어 등장하는 단층교는 화강암 절벽에 만들어진 쌓이고 갈라진 독특한 단층 구조를 아주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다. 단층은 단단한 암석이나 지층이 갑자기 충격을 받을 때 암석 또는 지층이 어긋나면 생긴다. 이처럼 철원 주상절리길은 절벽에 붙어있는 잔도와 절벽과 절벽을 이어주는 다리 13개가 반복된다. 놀랍게도 모든 다리는 출렁다리로 만들어 아찔함이 배가되니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한다.
◆다리에서 만나는 다양한 지질 여행
선돌교 아래로는 강에서 나 홀로 10여m 높이로 우뚝 솟아오른 바위가 선명하다. 유난히 경사가 급하고 물의 흐름이 빠른 한탄강이 단단한 화강암 바위를 깎으면서 단층이 드러난 대표적인 작품. 마치 여러 개의 돌을 잘라 붙여서 만든 것 같다. 자세히 보니 달팽이가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있는 모습도 닮았다. 돌개구멍교 아래 하천의 암반 바닥에는 원통 모양의 깊은 구멍이 뚫려 있다. 자갈이 물과 회전하며 바위를 갈아내면서 만든 독특한 모습이다.
흰여울교를 지나는 구간에서는 절경이 증폭된다. 휘어지는 절벽과 무너져 내린 기암괴석들이 사이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물살이 더 빨리지는 모습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다. 하천 바닥이 급경사로 바뀌면서 물의 흐름이 빨라지는 곳이 바로 여울. ‘강의 허파’로 불릴 정도로 산소를 발생시켜 물을 정화시키는 자연 정수기라니 자연의 이치는 놀라울 따름이다. 래프팅을 즐기는 이들도 흰여울을 만나자 겁이 나는지 잠시 보트 속도를 늦췄다가 길게 심호흡을 한뒤 너도나도 “까악!” 소리를 지르며 급경사를 가르고 달려간다.
흰여울교를 지나면 화강암교와 수평절리교가 이어진다. 마그마가 서서히 식어서 생긴 색이 밝고 검은 반점을 지닌 반석들이 시루떡을 겹겹이 쌓아놓은 듯, 진기한 수평절리 풍경을 선사한다. 바위그늘교는 유일하게 녹음이 우거진 구간으로 잠시 뜨거운 태양을 피하며 쉬어갈 수 있다. 쪽빛소전망쉼터를 지나면 터널처럼 보호망으로 둘러싼 2번홀교. 바로 위쪽 한탄강CC 골프장 2번 홀에서 이쪽으로 공이 자주 날아와 보호망을 설치했단다. 아래 반석에서는 래프팅하는 이들이 올라 건너편 수직 절벽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를 배경으로 인생샷을 남긴다. 여기서부터 거대한 수직 절벽이 끝까지 이어진다.
이제 주상절리길의 하이라이트인 철원한탄강 스카이전망대. 역시 반원형으로 튀어나온 잔도 바닥은 모두 투명한 유리로 강심장들도 다리가 얼어붙는다. 60대 아주머니가 남편 손에 억지로 끌려가다 “나 죽는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다시 돌아갈 정도니 노약자는 도전하기 쉽지 않다. 밝은 진흙빛 주상절리를 감상하는 동주황벽쉼터와 현무암교 현화교를 지나면 돌단풍 전망쉼터. 늦가을엔 주상절리가 붉게 물드는 단풍을 만난다니 선선한 바람 불 때 다시 와야겠다.
돌단풍교에 서면 저 멀리 높은 암벽 사이에 걸친 쌍자라바위교와 주상절리교 사이 마지막 전망대인 드르니 스카이전망대 모습을 드러낸다. 쌍자라바위는 자라를 닮은 두 개의 바위로 마치 곧 한탄강으로 뛰어들 것처럼 생생하다. 밝은색 화강암 위에 어두운색 현무암 주상절리가 급경사를 이루고 있고 마그마가 화강암 틈을 비집고 들어온 흔적인 줄기 모양 ‘암맥’도 관찰된다. 쌍자라바위 건너 바위가 더 독특하다. 다리에서 보니 마치 튀어나온 눈과 입이 거대한 메기 같다.
민출랑∼맷돌랑∼드르니쉼터를 모두 통과하면 주상절리길 여행이 완성된다.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걸었는데도 땡볕 때문에 막판 가파른 오르막 계단에선 거의 실신할 정도로 체력이 방전되고 말았다. 드르니 매표소 옆 카페로 다이빙하듯 뛰어들어가 얼음물 벌컥벌컥 들이켜니 그제야 정신이 제자리다. 그늘이 거의 없어 너무 뜨거운 한낮에는 위험할 수 있으니 조심하도록. 해를 등지고 걸을 수 있으니 여름에는 남쪽 드르니매표소에서 북쪽 순담매표소 방향으로 걷는 것이 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