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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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동화 명분 언어통일 시동… 소수민족 ‘한족화’ 드라이브

연변, 중국어 우선표기 왜

155개 자치지역 구성된 민족특성
분리독립 요구 땐 안보불안 직결

시짱·신장위구르 강력 탄압 이어
네이멍구·연변엔 동화정책 확대

이미 학교선 민족언어 사용 통제
한족 우위 민족정책 의도 노골화

연변(延邊)조선족자치주에서도 한글 우선 표기가 급속히 후퇴한 것은 소수민족에 대한 중국 정부의 한화(漢化) 드라이브가 강력히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에는 원래 중국어라는 말이 없다. 한족(漢族)이 쓰는 말이라는 의미에서 한어(漢語)라는 용어가 있다.

한글전용간판 퇴출 14일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 상점가 간판에 중국어는 크게, 한글은 작게 쓰여 있다. 독자 제공

시진핑(習近平) 정권 출범 이래 중국 당국은 소수민족을 한족으로 동화시키기 위한 민족성 말살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소수민족의 정체성을 약화하기 위해 민족언어 사용을 억누르고 한어 사용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동안 선전돼온 소수민족의 자치보장 대신에 중화민족의 통합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급선회한 것이다.

중국에는 현재 성(省)에 해당하는 시짱(西藏·티베트), 신장(新疆)위구르, 광시(廣西), 닝샤(寧夏), 네이멍구(內蒙古) 5개 자치구와 연변조선족자치를 포함한 30개 자치주, 120개 자치현을 포함해 155개 소수민족 자치지역이 있다.

이중 광시의 좡족(壯族)과 닝샤 후이족(回族)은 한족 문화에 대부분 동화된 편이다. 중국에 위협이 되는 소수민족이 아닌 셈이다.

이에 비해 조선족을 포함해 신장의 위구르족, 시짱의 티베트족, 네이멍구의 몽골족은 국경 지역에 거주하고 있어 중국안보에 직결된다는 판단에 따라 고삐를 더욱 세게 잡고 있다. 위구르족의 경우엔 수용시설 설치 등 중국 정부가 인권 탄압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서방에서 나온다.

중국은 네이멍구와 연변조선족자치주 등 민족문화를 강하게 유지하고 있는 지역에 대해 2020년부터 표준어 확대 정책이라며 소수민족에 대한 한어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네이멍구에서는 지난해 가을부터 모든 소수민족 학교에서 일부 학년이 도덕·법치, 어문, 역사 등 3개 과목 수업에서 표준한어인 푸퉁화(普通話)를 쓰도록 지시했다. 수업뿐만 아니라 입시에서도 도덕·법치 등 3개 과목 시험은 몽골어가 아닌 한어로 대체된다. 네이멍구에서는 몽골족 수천명이 ‘몽골어를 배우는 것은 빼앗길 수 없는 권리’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랴오닝(遼寧)성 등 동북지방 일부 조선족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도 지난해 가을 학기부터 어문과목에서 전국공통 교과서를 도입하기로 하는 등 표준한어 수업이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국가인 중국에서 공통의 언어와 문자를 쓰는 것은 소수민족의 문화를 약화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푸퉁화 대중화가 ‘민족 동화’를 위한 움직임이라는 우려가 나오는데 지역 방언 간 장벽을 뚫고 의사소통과 상호이해를 심화시키고 문화적 융합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공산당은 또 지난해 6월 소수민족 문제를 관할하는 국가민족사무위원회 당 서기로 한족인 판웨(潘岳) 통일전선부 부부장을 임명했다. 전임 천샤오장(陳小江)에 이어 두 번째 한족 출신이다. 이 자리는 1978년 이후 조선족·몽골족·후이족·위구르족 등 소수민족이 국가민족사무위를 맡아왔다는 점에서 이번 인사에서도 한족 중심, 한족 우위의 민족정책을 전개하겠다는 당국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베이징=이귀전 특파원 frei592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