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집은 하나의 생명체예요. 집은 곧 나라고 생각하고 제작합니다. 구겨진 한지 표면에서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죠. 제가 느끼는 나의 비루함이고 노화됨이었어요. 쭈글쭈글한 표면은 나이는 먹어가고 힘들기만 했던 시기의 느낌을 표현하려고 한 거예요.”
비루한 판잣집은 곧 화가 자신이었다. 10여년 전, 화려한 도시 빌딩 숲 사이에서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처지의 판잣집은 자신을 초라하게 느끼던 화가 자화상과 다름없었다. ‘판잣집 작가’, ‘달동네 작가’로 유명한 정영주(사진) 이야기다.
그렇게 시작된 작가의 분신 같은 판잣집 작품들이 아트페어와 화랑가에서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서 점차 변해갔다. 미술시장에서 확고한 인기작품 지위에 올라 있는 지금은 따뜻하고 평화로운 느낌이 가득하다는 감상을 듣는다. 이젠 더 이상 비참한 현실 속 정체불명의 건축물, 위태로운 임시거처가 아니라 대지에 뿌리내린 단단한 공동체 풍경으로 인식된다. 마치 상처와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것이 사랑과 애정임을, 작품이 걸어온 나름의 역사가 보여주는 셈이다. 정영주 작가 스스로도 “경제적으로 어렵던 시절의 트라우마가 이 작업을 지속하면서, 또한 이 작업이 점차 큰 사랑을 받으면서 치유되고 있고, 치유되고 있는 나 자신이 다시 작품에 반영되고 있다”고 말한다.
요즘 서울 종로구 삼청로에 위치한 갤러리 학고재에는 이렇게 따뜻하고 정겨운 판잣집 풍경을 보려는 관람객들로 연일 발 디딜 틈이 없다. 정 작가 개인전 ‘Another World(어나더 월드)’ 현장이다.
홍익대학교를 나온 뒤 프랑스 유학 중 IMF를 맞아 귀국했고, 그 뒤 오랫동안 작가는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 2007, 2008년쯤 부터 빌딩숲과 판잣집이 혼재된 도시풍경에서 초라한 판잣집에 자신을 투영하며 작품을 제작했고, 점차 빌딩을 없애고 판잣집만 화면에 남기게 됐다. 2010년쯤 지금의 달동네 풍경으로 작품 스타일이 안착했다고 한다.
작가는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서울 상계동, 중계동 쪽에서 태어나고 자라다 신림동, 봉천동에 오래 살았다고 한다. 부산에 내려간 뒤에는 구포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유년 시절의 기억, 고향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배경들이 지금의 작품에 반영됐다. 그렇다고 지금 작품들이 특정 지역을 묘사한 것은 아니다. 모두 가상의 동네, 상상의 장소들이다. 판잣집의 다양한 구성과 형태를 리서치한 뒤에 재구성해서 캔버스에 스케치를 하고, 스케치한 모양대로 흰 한지를 오린다. 오려낸 한지를 구겨서 화면에 접착제로 붙인다. 아크릴 물감으로 집들에 색을 입히고 가장 마지막에 가로등 불빛, 또는 판잣집 창을 통해 골목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을 그린다.
관람객들은 작가 특유의 빛 표현에서 유난한 따뜻함을 느끼곤 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예전엔 빛이 숨어들고 있는 것처럼 조명을 미세하게 그렸는데, 지금은 훨씬 환하게 그리게 됐고 작품이 밝아졌단 소릴 듣는다. 내 내면이 긍정적으로 바뀌어가고 있어서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예전 작품들을 보면 현실의 낙후된 동네를 직시하게 하는 그림, 사라져가는 동네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록하듯 그린 일종의 기록화처럼 보였다. 지금은 현실성이 증발한 환상 속 풍경처럼 보인다. 균일하고 차이 없는 집들이 차별 없이 평등하게, 옹기종기 어우러져 있는 가상의 풍경을 향해 간다. 작가도 “판자촌 파라다이스”라며,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를 조합한다.
그는 작가노트에서 “자고 일어나면 없어지고 어느새 또 생기곤 하는 빌딩들이 과연 나에게 어떤 추억을 만들어줄 수 있을지. 그곳엔 사람이 없다. 나도 없다. 허름한 판잣집과 숨겨진 추억이 내일을 여는 등불이 되게 하고 싶다. 나는 나의 작업을 통해 소외된 것들과 잊혀진 것들에게 그들이 즐길 수 있는 파라다이스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한다.
시장에서의 인기, 인기를 반영하는 가격 상승세의 반대편에는 정 작가의 소재를 ‘빈곤 포르노’로 여기며 불편함을 말하는 이도 있다. 오랫동안 변화 없이 규격화된 상품으로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는 평도 있다. 그런 그가 예술성과 역사성을 중시해온 국내 메이저 갤러리 기획하에 전시를 펼친다는 소식은 관심이 쏠릴 만했다.
이번 전시는 그런 의구심들에 대한 작가의 대답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작가는 판잣집 풍경이 곧 자신이 직접 살아온 인생이었고 오랜 거처였음을 이야기하면서, ‘당사자성’을 강조한다. 타자화된 풍경이 아니란 것이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아트페어나 경매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된 전형적 작품 외에 다양하게 변주된 작업을 보여준다. 작가의 강점인 빛 표현을 과감하게 제거하고 설경 자체가 가진 빛으로 화면을 채우는 눈 쌓인 판잣집 풍경들(‘설경 0125’)이나, 벚꽃 빛으로 아름다운 봄의 판잣집, 시원한 초록빛의 여름 판잣집, 밤색 가을 풍경, 차갑고 서늘하면서도 유독 깨끗한 공기처럼 다가오는 겨울 풍경으로 ‘사계’ 연작을 선보인다. 점점 작아지는 판잣집들이 점을 이루면서 저 멀리 지평선까지 아득하게 보이는 스타일의 작품, 정반대로 똑같은 크기 집들이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운 올오버 스타일 화면 등도 제각각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이런 그의 시도에 응답하듯 갤러리에는 관람객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가 대중의 마음에 오래도록 소구력을 유지하는 이유가 뭘까. 미술평론가 이진명은 이번 전시를 계기로 쓴 글에서 이렇게 평했다.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유대를 영원히 그리워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숙명일 것이다. 진정으로 인간은 심리적, 정신적 상태와 조건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이것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철학과 예술의 영원한 과제일 것이다. 정영주 작가는 영원히 끝날 수 없는 중대한 과제를 수행하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정서의 회복과 회화의 복권을 위해서 오늘도 종이를 오리고 선과 면의 세계에 침잠하다 그 세계에 빛을 밝히고 있다.” 21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