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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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농촌유학’… “거기 가면 뭐 하나요?” [S 스토리]

조희연 서울교육감 ‘농촌유학 준의무화’ 발언 논란
반대 여론 있지만 체험자들의 만족도 상당히 높아

아이들 “나 여기서 졸업할래”…지원자 계속 늘어나
다슬기 잡고 별보고… 승마·골프 등 방과후 수업도

부모들 “학업 걱정 기우… 도시의 편리함은 잊어야”
주거가 가장 큰 난관… 주민·학교와 다투는 사례도

“서울 초등학생의 농산어촌 유학을 자율과정에 포함해 준의무화할 생각이다.”

 

지난 8일 언론 인터뷰로 공개된 조희연 서울교육감의 ‘농촌유학 준의무화’ 발언으로 교육계가 술렁였다. 일부 학부모들은 “원하지 않는 농촌유학을 강제로 가야하냐”며 비판을 쏟아냈다.

 

조 교육감은 나흘 뒤 입장을 내고 “자율과정에 포함시켜 희망하는 학생과 학부모에 대해 책임감 있게 지원한다는 뜻”이라며 “교육감이 ‘강력추천’한다는 것이지 희망하지 않는 학생에게 농산어촌 유학을 의무화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의 ‘농촌유학’은 이미 시행 2년이 되어가는 사업이다. ‘코로나시대 대안 교육’으로 이슈가 되면서 지난해 한 차례 언론의 관심을 받았고 영국 BBC에서도 조명한 바 있다.

 

농촌유학을 경험한 학생과 학부모들은 90% 이상의 높은 만족도를 보인다. 하지만 학부모들 사이에선 “돌아와서 다시 적응하기 어려울 것 같다”, “부모가 따라갈 수 없는 아이들의 안전 문제는 누가 책임지나”, “탁상공론”이다 등 미덥지 않은 시선도 존재한다.

 

흙을 밟고 뛰노는 아이들, 도시인이 한 번쯤은 꿈꾸는 전원생활을 실현할 수 있다는 농촌유학은 실제 어떤 모습일까. 

 

◆“엄마 나 더 있을래”…연장률 70% 육박

 

서울교육청의 ‘농촌유학’은 서울 학생이 농촌 학교로 전학해 6개월 이상 생활하는 유학 프로그램이다. 서울 공립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한다. 서울교육청과 전남교육청이 지난 2019년 업무협약을 맺고 지난해 1학기부터 학생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농촌유학의 목적은 자연을 접할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도시 아이들이 생태적 감수성을 키우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있다. 서울 학생들은 농촌의 자연과 마을, 학교 안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제철 먹거리를 키우며 새로운 사람·환경과 관계를 맺는다.

 

농촌은 소멸 위기의 마을과 학교를 지키면서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 전남교육청에 따르면 전남 학교의 44.5%는 전교생이 60명 이하인 ‘작은학교’다. 유학생들은 모두 작은학교로 간다.

 

장석웅 전 전남교육감은 “농촌유학은 전남의 작은 학교는 물론 마을과 지역을 살리는 소중한 정책“이라고 밝힌 바 있다.

 

농촌유학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농가를 빌려 생활하는 가족체류형, 아이들만 유학해 농촌부모 집에서 생활하는 홈스테이형, 아이들만 유학해 농촌유학센터에서 생활하는 센터형으로 나뉜다. 이중 가족체류형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엄마, 아빠와 오거나, 한 명만 오거나 번갈아 오기도 한다.

 

가족체류형의 경우 지역교육청에서 임대할 농가를 연결해준다. 지원비도 있다. 전남교육청에서 월 30만원(3년까지), 서울교육청에서 학생 수에 따라 월 30∼50만원(1년까지)을 지급한다. 

 

단기 체험이 아닌 6개월 이상 장기 체류이기 때문에 서울교육청은 초기 참여자가 20∼30명으로 적을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코로나19 영향으로 “집에 갇혀 온라인 수업만 듣느니 농촌에서 학교 다니며 뛰노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학부모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1차에 81명이 참여했다. 이후 참가자가 147명, 223명으로 늘었다. 오는 9월부터는 232명의 서울 학생이 전남 농촌에서 생활한다. 

 

이번 2학기 참여자의 67%는 연장을 신청한 학생들이다. 신규 티오가 적어 새로운 학생을 많이 뽑지 못했다. 함평의 한 초등학교에는 2명 신규 모집에 21명이 몰리기도 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수요가 많아진 데다 농산어촌 유학의 다양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어 유학 지역을 전국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면서 “전북교육청과는 이달 말 협약을 맺고 10월부터 유학생을 보낼 예정이며, 강원, 경남·북과도 의견을 나누고 있다”고 밝혔다.

 

◆생태감수성은 기본…학업 만족도 높아

 

서울시교육청이 발간한 농촌유학 수기에서 부모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아이들이 전학간 지 며칠 되지도 않아 ‘6개월 더 다니겠다’고 했다”, “돌아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여기서 졸업하고 싶다고 한다” 등 대부분 아이들의 호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도시 아이들은 농촌에서 무얼하며 지낼까.

 

생활권이 농촌인 만큼 농사와 생태체험은 일상이다. 선생님과 농사를 짓고, 하교 후엔 친구들과 다슬기, 개구리, 잠자리를 잡으러 다닌다. 마을의 논·밭·과수원을 체험하고 주말엔 지리산에 반달곰을 보러 가는 등 가족들과 남도 여행을 하기도 한다.

 

전남 장성의 서상초등학교에 1년간 아이를 보낸 김미애 씨는 “아이들이 선생님과 봄에 상추씨를 뿌리고 여름에 따서 삽겹살 파티를 했다. 벼가 자라고 수확되는 과정을 함께 했다”면서 “학교와 농촌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아이가 됐다”고 밝혔다.

 

두꺼비가 신기한 서울 아이들 전남 화순에 유학 간 서울 어린이들이 비오는 날 논두렁에서 두꺼비를 잡아 관찰 중이다. 서울시교육청 제공

지난해 9월 5학년, 2학년 두 딸을 전남 구례 중동초등학교로 전학시킨 이지은씨는 “서울에선 맑은 날 한 두개씩 볼 수 있었던 별을 매일 밤 옥상에서 원없이 봤다”면서 “계절마다 달라지는 별자리를 관찰하고 이야기 나눈 경험은 아이들에게 평생 남을 기억일 것”이라고 말했다.

 

농촌유학을 결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연이지만, 학업에 대한 만족도가 의외로 높다. 학생 수가 적은 것이 최대 장점이다. 아이들의 수업 집중력이 높아지고, 선생님도 학생 수준별 학업성취도에 신경쓸 수 있다. 과학실험과 체험학습도 서울과 비교해 월등히 많다.

 

서울학교와 다른 점에 대해 유학생들은 공통적으로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한명 한명 관심가져줘서 좋다”고 얘기한다. 

 

유학생 유입은 농촌 학교와 학생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전남교육청 관계자는 “한 반 인원이 5명 이하에서 10명정도로 늘어나면 분위기가 활기차지고, 모둠을 나눌 수 있어 다양한 방식으로 수업할 수 있다”면서 “체육대회 등 행사를 더 풍성하게 치를 수 있어 학교로서도 이득”이라고 밝혔다.

 

농촌유학을 경험한 부모들은 ‘방과후 학습’에 대한 만족도가 특히 높았다. 전남교육청은 학원이 마땅치 않고 부모님이 농사일로 바빠 아이들을 돌보기 어려운 농촌 특성을 고려해 방과후 교육에 공을 들여왔다. 모든 학생이 방과후 수업을 2개씩 듣고 4∼5시에 하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컴퓨터, 외국어, 오케스트라, 각종 체육활동은 물론 승마나 골프 등 서울에서도 아이들이 접하기 어려운 활동을 무료로 할 수 있다.

 

지난해 중학 2학년, 초등 6학년 아이와 순천에서 생활한 이야기를 ‘우리가 지낸 초록 분홍 마을’이라는 책으로 펴낸 최설희씨는 “아이들이 농촌학교 방과후 학습을 통해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는데 이 역시 학생수가 적다 보니 집중적으로 잘 배웠더라”면서 “그 때 처음 접하고 흥미를 느낀 중국어와 배구는 서울에 와서도 꾸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시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각종 학원을 다니며 선행학습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농촌유학 후 학업에 뒤처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농촌유학 부모들은 주변에서 우려했던 ‘학습공백’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학원을 가기 어렵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온라인 강의로 보충하면 된다”면서 “아이들이 자연에서 뛰어 논다고 학업을 놓는 것은 아니다. 각자 하기 나름”이라고 말했다.

 

부모들이 가장 우려하는 영어과목에선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본 경우도 있었다.

 

해남 삼산초등학교에 4학년 딸 아이를 유학시킨 나미예씨는 “영어를 온몸으로 싫어하던 아이가 농촌유학에서 영어와 사랑에 빠졌다”면서 “원어민 선생님과 게임이나 퀴즈로 하는 수업을 기다리고 그날 배운 영어 문장을 엄마에게 스스럼없이 말하기도 한다”고 수기에서 밝혔다.

 

학원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는 데 효과적이란 의견도 있다.

 

이씨는 “서울에선 학원에서 다들 하는 선행학습을 했지만 농촌에서는 하교 후 집에서 그날 배운 교과서를 복습하며 기초학력을 단단히 쌓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서 “주말엔 시립도서관을 찾아 스스로 관심 있는 책을 찾아 읽었다. 아이들의 자기주도학습 능력을 기르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됐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생활 만족도는 복불복…“시스템으로 해결해야”

 

한 농촌유학 학부모는 “아이들 만족도는 100%, 학부모 만족도는 80∼90%인 것 같다”고 밝혔다.

 

부족한 부분은 역시 도시생활과 농촌생활의 격차에서 온다. 필요한 모든 것이 주변에 있는 도시와 달리 농촌은 모든 것이 멀고 느리다. 교통이 불편해 장을 보려면 읍내에 나가야 하고 인터넷 쇼핑 배송도 한참 걸린다. 병원도 멀다. 크게 아프거나 다치면 가까운 시까지 차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한다.

 

김씨는 “도시생활을 놓지 못해 내내 불만을 가지는 경우도 있더라”면서 “아이들이 아무리 좋아해도 부모가 편리함을 어느정도 포기하지 못한다면 농촌 생활이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방식과 문화의 차이 때문에 유학생 가족이 농촌에 융화되지 못하고 마을 주민이나 학교와 다툼이 발생한 경우도 있다.

 

농촌유학 시스템 자체도 미흡해 지역과 학교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응하느냐에 따라 유학생 가족의 생활이 크게 달라진다. 만족도가 높았다는 학부모들도 “우리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특히 주거문제는 가장 시급히 보완해야할 점으로 꼽힌다. 전남교육청은 “농촌에는 빈집이 많다. 빈집을 수리해서 빌려주면 되기 때문에 유학생을 위한 집을 마련하는 것이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한 부모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빈집 수리는 집주인이 사비를 들여야 하는데, 농촌유학 가족을 위해 리모델링까지 해 집을 내놓는 집주인이 없을 뿐더러, 집 컨디션과 상관 없이 월세가 비싸다는 것이다.

 

마을에서 대형 펜션을 통째로 빌리거나 농막을 지어 제공한 경우도 있었지만 지역에서 나서주지 않아 학교 선생님들이 집을 알아봐야 했던 사례도 있었다. 서울과 전남 교육청에서 제공된 지원비 60만∼80만원이 고스란히 월세로 빠져나간 건 대부분 지역에서 동일했다. 

 

이씨는 “지원금을 (다른데) 쓸 수 있어야 지역 경제에 보탬에 되는 것 아니겠냐”며 “지자체에서 농촌유학 가족을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주거를 확충하고 월세 기준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도시생활에 익숙한 유학생 가족의 농촌 적응을 돕는 종합지원기관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왔다.

 

최씨는 “마을 주민과 오해가 생겼을 때나 가전제품이 고장났을 때 등 각종 문제가 생기면 알아서, 눈치껏 해결해야 하는 구조라 운이 나쁘면 적응하기 쉽지 않다”면서 “농촌유학이 성공하려면 컨트롤타워 기관과 지역별 종합지원센터를 마련해 시스템으로 대응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논두렁에서 무당벌레를 관찰하는 유학생. 서울시교육청 제공

◆부모 없이 농촌유학 가능할까?

 

서울시교육청의 ‘농촌유학’은 90% 이상 가족체류형이지만 10%는 부모 없이 아이 혼자 유학하는 경우다. ‘혼자 유학’의 경우 농촌 가정과 함께 지내는 ‘홈스테이형’과 많은 학생들이 농촌유학센터에서 단체 생활을 하는 ‘센터형’이 있다.

 

홈스테이 가정은 농가에서 신청하면 교육청이 심사를 통해 선정한다. 유학을 원하는 학생은 부모와 함께 미리 홈스테이 가정을 방문해 면담한 뒤 결정할 수 있다. 서울교육청이 발간한 농촌유학 수기집 ‘흙을 밟는 도시 아이들 이야기’에는 아이 홀로 농촌유학을 보낸 부모들의 경험담도 담겨 있다.

 

해남 삼산초등학교에 5학년 아이를 홀로 유학보낸 김윤희씨는 “농가 부모님 면담을 해보니 학교 방과후 수업 및 마을학교 수업도 맡아 하시는 선생님이셔서 신뢰가 갔다”면서 “농가 부모님이 아이를 위해 새 침대를 들여주시고 따뜻하게 보살펴주셨다. 아이가 봄에 심은 모와 텃밭 채소를 수확하기 위해 다음학기까지 있겠다고 해서 6개월 더 지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윤정은씨는 지난해 1년간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4학년 남매를 화순으로 보냈다. 남매는 요리연구가 할머니의 집에서 다른 서울 아이 3명과 함께 지냈다. 학교도 즐거웠지만 농가부모님과 함께하는 농가 생활도 배움으로 가득했다. 농가부모님은 생활규칙을 세워 아이 들이 자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인성이 바른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힘썼다. 정원에서 바비큐 파티를 했고 여름엔 마당 수영장에서 매일 물놀이를 했으며, 텃밭에선 채소를 길렀다.

 

윤 씨는 “성격도 각양각색인 다섯 아이를 돌봐주신 농가부모님에 정말 존경스러운 마음이 든다”면서 “코로나19로 집에서 무기력하게 지내던 아이들이 농촌유학을 통해 적극적이고 예의바른 아이가 되어 돌아왔다”고 말했다.

 

‘농촌유학센터’는 전남을 비롯해 전국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센터에서 유학하는 아이들은 농촌 학교를 다니면서 자체 프로그램에도 참여한다.

 

영암 ‘월인당’은 한옥으로 지어진 숙소에서 교육자 출신 부부가 학생들의 숙식과 생활, 놀이, 학습을 돌봐주는 곳이다. 초등 5학년 아이를 이곳에 보낸 유호상씨는 “아이가 6개월 뒤 돌아올 줄 알았는데 연장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졸업까지 그곳에서 하고 싶다고 한다”면서 “집에서 빈둥대며 게임할 궁리만 하던 아이가 휴일 아침에도 새벽같이 산에 올라가는 규칙적인 생활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점이 놀랍고 대견하다”고 말했다.

 

센터의 경우 일정 규모와 프로그램을 갖춘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센터마다 프로그램과 분위기가 다르므로 사전에 충분히 알아보고 아이가 적응할 수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

 

전남교육청 관계자는 “농촌유학을 아이만 보낼 경우엔 잘 적응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농가나 센터를 사전 답사하고 장단점을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