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경기 수원시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모녀는 난치병 등 건강 문제와 생활고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병원비 탓에 월세도 제때 못 낼 만큼 고된 생활을 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전입 신고나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관할 지자체가 세상과 단절한 채 살아온 이들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면서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서 일어난 ‘송파 세 모녀 사건’의 판박이가 됐다는 지적이다.
◆ 전입 신고 없이 세상과 단절…수원시 ‘수급 신청’ 없어
22일 경찰과 지자체에 따르면 전날 오후 2시50분쯤 수원시 권선구의 한 연립주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 시신 3구가 발견됐다. “문이 잠긴 세입자 방에서 악취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강제로 문을 열어 60대 여성 A씨와 각각 30대, 20대인 두 딸의 시신을 확인했다. 경찰은 이들의 부패 정도가 심해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 의뢰했으며, 현장에선 외부 침입 정황 등이 발견되지 않았다.
A씨 등은 모두 투병 생활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암 진단을 받아 치료 중이었고, 두 딸 역시 희귀 난치병 등을 앓고 있어 일상생활이 어려웠다. 채무 또한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A씨가 남긴 유서에는 “지병과 빚으로 생활이 어려웠다”는 내용이 적힌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비 문제로 보증금 300만원에 40여만원인 월세도 제때 내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2020년 2월 화성시에서 인근 수원시로 이사한 뒤 전입 신고나 복지 서비스 신청 등을 하지 않아 수원시에선 이들의 상황을 알지 못했다. 도움을 줄 친척이나 이웃 등도 없었다.
A씨 세 모녀는 대부분 바깥출입 없이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이어왔고, A씨 남편 역시 지병 등으로 이미 세상을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이 만약 자신들의 어려움을 알렸다면 상황에 따라 월 120여만원의 긴급생계지원비나 긴급의료비 지원 혜택, 주거 지원 등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수원시 관계자는 “이들이 기초생활수급 등 복지 서비스를 신청한 기록이 없다”며 “만약 전입 신고라도 했다면 통장의 확인 방문으로 어려움을 파악해 상담 등으로 이어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 8년여 만의 ‘세 모녀 사건’…“복지사각지대 여전”
이번 사건은 8년여전 일어난 송파구 세 모녀 사건과 어느 정도 공통점을 지녔다. 당시 송파구 석촌동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세 모녀는 큰딸의 만성 질환과 어머니의 실직으로 인한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갖고 있던 전 재산인 현금 70만원을 집세와 공과금으로 놔두고 유명을 달리했다. 8년의 세월이 지나 다시 일어난 세 모녀 사건 역시 죽음을 맞을 때까지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송파구 세 모녀는 부양의무자 조건 때문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움을 받지 못했는데 수원시 세 모녀의 경우 아직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나지 않았다. 특히 송파구 세 모녀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 3년 전 관공서에 복지 지원을 타진했으나 대상 조건을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재신청을 하지 않았다.
복지사각지대를 여실히 드러낸 당시 사건의 파장으로 이른바 ‘세 모녀법’(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개정안을 적용해도 사건 당사자인 송파구 세 모녀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허점이 드러났다. 이처럼 여야는 물론이고 대통령까지 나서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겠다고 밝혔으나 사회 안전망 확충은 여전히 더딘 걸음을 걷고 있다.
이번 수원 세 모녀 사건 역시 개정 법률안의 허점이 드러났다.
법령에선 국가와 지자체가 수급권자 발굴을 위해 사회복지법인, 국민연금공단, 보건소 또는 경찰서 등의 기관 및 단체와 연계·협력해 정보의 공유 등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했으나 무용지물이었다. 또 누구든지 사회적 위험에 처한 대상자를 발견하였을 때는 보장기관에 신고하도록 했는데,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