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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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맞닿은 ‘초록 융단’… 오늘은 배추 시집가는 날 [밀착취재]

국내 최대 고랭지 배추밭 ‘안반데기’ 가보니

하늘 아래 첫 동네로 불리는 ‘안반데기’는 국내 최대 여름철 고랭지 배추 재배 단지다. 강원 강릉시 왕산면 해발 1100m에 위치한 안반데기는 1965년부터 화전민(화전(火田)을 일구어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척박한 산비탈을 개간해 정착하며 형성됐다. ‘안반’은 떡메로 반죽을 내리칠 때 쓰는 오목하고 넓은 통나무 받침판을, ‘데기’는 평평한 땅을 말한다. 안반데기에는 18개 농가가 모여 약 60만평(195㏊) 규모의 밭에서 연간 약 11만5000t의 배추를 출하한다. 이는 5t 트럭 1600대에 달하는 양이다.

이른 새벽, 안반데기 배추밭에서 작업자들이 배추 수확 작업을 하고 있다. 드넓게 펼쳐진 배추밭과 파란 하늘, 하얀 풍력발전기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만든다.

안반데기의 배추 수확 현장을 찾아가 봤다. 이른 새벽, 안개가 걷히고 쏟아지는 햇살이 배추밭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이날 전국적으로 폭염주의보가 내려 30도를 웃돌았지만, 이곳의 기온은 17도를 나타내며 서늘한 날씨를 보였다. 서늘한 날씨 덕에 배추, 양배추, 무 등 여름철 채소는 대부분 고랭지에서 생산된다. 고랭지 배추는 4, 5월경 배추 모종을 심고 90일 정도 자라면 출하할 수 있는 크기가 된다. 6월 말부터 10월까지 출하한다. 7~10월 4개월이 수요가 많은 성수기다.

배춧잎에 이슬이 맺혀 있다.
배추밭에서 작업을 하는 모습. 인력 확보의 어려움과 비싼 인건비 탓에 작업자들의 대부분은 외국인 근로자이다.

광활한 배추밭에서는 배추 수확이 한창이었다. 보통 작업은 새벽이나 해 진 다음 이뤄진다. 작업팀은 10명 내외로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로 보였다. 농가에서는 인건비가 비싼 데다 코로나19로 인해 인력 확보가 어렵다 보니,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작업자들은 우선 배추의 밑동을 잘라내고, 겉잎을 제거한 뒤 세 포기씩 망에 담는 망 작업을 나눠 하고 있었다. 망에 담긴 배추는 1t 트럭에 싣고 나와 다시 5t 트럭으로 옮겨 싣는다. 이렇게 배추를 가득 실은 5t 트럭은 서울 가락시장 또는 전국 각 지역의 농산물공판장으로 향한다.

배추망에 ‘특’ 등급이 표시돼 있다. 안반데기에서 재배한 배추는 최고 상품으로 취급받는다.
작업자들이 배추를 1t 트럭에서 다시 5t 트럭으로 옮겨 싣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배추를 실은 5t 트럭은 가락시장으로 향한다.

안반데기에서 생산한 배추는 최고 등급 상품으로 취급받는다. 8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의 영향으로 저지대 소규모 배추 재배 농가들은 작황이 좋지 않다. 하지만 안반데기 배추밭은 물 빠짐이 잘 돼 있어 큰 피해는 입지 않았다. 고랭지채소 산지공판장 관계자 말에 따르면 수확량이 줄어 올해 배추 수급현황이 좋지 않다고 한다. 그 결과는 가격에서 나타난다. 전년 동월 대비 가격이 30%에서 많게는 40% 넘게 치솟았다. 소비자들은 가격이 올라 여름철 배추 사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비료값, 유통비 등 제반 비용 상승으로 실질적인 농가의 수취가격도 높지 않다. 얼마 전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추석을 앞두고 민생과 직결된 배추 수급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안반데기를 찾았다. 추 부총리는 “배추가 최대한 원활히 전달돼 소비자들이 안정된 가격으로 소비할 수 있도록 생산단계부터 유통까지 꼼꼼히 챙기겠다”고 말했다.

작업자들이 배추를 베고, 망에 넣는 작업을 하는 모습을 드론으로 내려다봤다.

꽃처럼 활짝 핀 푸른 배추 물결이 끝없이 펼쳐지는 안반데기는 우리에게 풍요로움을 선사한다. 농가의 땀과 눈물의 결실인 안반데기 배추밭을 잘 가꾸어 국내 최대 고랭지배추단지의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길 바란다.


강릉=글·사진 남정탁 기자 jungtak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