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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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마다 ‘수어통역 그림자 배우’가 붙는다… 국립극장 무장애 음악극 ‘합★체’ 선보여

국립극장이 박지리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음악극 ‘합★체’(극본 정준, 연출 김지원)를 9월 15∼1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초연한다. 저신장 장애인 아버지를 둔 쌍둥이 형제의 성장담을 그린 작품으로, 한글 자막과 음성 해설, 수어 통역이 함께하는 무장애(배리어 프리, Barrier-free) 공연으로 선보인다.

 

음악극 ‘합★체’에 출연하는 김혜정(엄마 역, 왼쪽부터)·이성민(오합 역), 박정혁(오체 역), 김범진(아빠 역). 국립극장 제공

24일 국립극장에 따르면, 극단 다빈나오의 상임 연출가이자 20여년간 장애예술인과 다수 작품을 만든 김지원이 연출을 맡은 ‘합★체‘는 저신장 장애인 아버지와 비장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작은 키가 고민인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다. 정반대 성격의 일란성 쌍둥이 ‘오합’과 ‘오체’가 키 커지기 위한 특별 수련을 떠나며 펼쳐지는 일화를 그린다. 작품은 키가 아닌 마음이 성장한 형제의 모습을 통해 그 어떤 시련에도 공처럼 튀어오를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길러야 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각자 고민으로 움츠러든 현대인들에게 다정한 위로를 건넨다.

 

특히, 무장애 공연으로 기획된 만큼 음성‧수어‧자막이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창작 단계부터 치열한 고민과 연구 과정을 거쳤다. 수어 통역은 ‘그림자 통역’으로 진행된다. 하나의 배역에 뮤지컬 배우와 수어 통역 배우 2명을 캐스팅한 것. 수어 통역 전문 자격증을 겸비한 배우 3명과 무대 경험이 있는 전문 수어 통역사 2명이 수어 통역 배우로 무대에 오른다. 이들은 수어 통역을 기본으로 하되 배우의 그림자처럼 함께 움직이며 각 인물의 안무와 연기를 소화한다. 음성 해설은 극 중 배역으로 풀어낸다. 원작에서 잠깐 나오는 라디오DJ ‘지니’가 전지적 작가 시점의 해설자로 등장해 음성 해설을 한다. ‘지니’의 대사는 원작의 묘사를 살리는 동시에 무대 변화와 등장인물의 내·외적 변화를 섬세하게 전하게 된다.

 

아울러 오랜 기간 장애예술과 특수교육 등을 연구해온 권지현이 접근성 매니저로 참여해 장애인 관객과 배우의 접근성, 제작 방법 등을 함께 논의했다. 또 ㈜한국콘텐츠접근성연구센터에 접근성 관련 자문을 받아 시각장애인 관객을 위한 터치투어와 공연 전 제공하는 음성 소개(Audio Introduction)를 제작했다.

 

작품은 장애인 당사자성을 반영하기 위한 고민도 담아냈다. 청각장애인 관객도 작품을 수월하게 즐길 수 있도록 사단법인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과 손잡고 청각장애인이 직접 수어 대본을 번역했다. 전문 수어 통역사라 할지라도 비장애인이 수어를 번역할 경우, 외국인이 번역한 것처럼 어색한 부분이 생길 수 있어서다. 예컨대 ‘예쁜 꽃’은 수어로 ‘꽃 예뻐’라고 표현하듯 수어 어순이 한국어 문장과 다르다. 

 

작품에 나오는 장애인 역할은 장애인 배우가 연기한다. 키 작은 예능인 아버지 역을 저신장 배우 김범진이 맡았다. 연극·무용·영화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약하는 배우 김범진은 “작품 속에서 아버지가 쌍둥이 형제에게 강조하는 이야기가 평소 생각과 맞닿아 있어 캐릭터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며 “누구나 ‘자신만의 좋은 공’이 무엇인지 떠올려보며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국립극장은 장애인 관객의 관람 접근성에도 신경썼다. 이번 공연에서는 9월 17일 시각장애인 관객을 위한 터치투어를 진행한다. 오후 1시 30분부터 30분간 무대에서 음성 해설자의 설명을 들으며 의상‧소품 등을 직접 만지고 느껴볼 수 있다. 15일까지 홈페이지에 기재된 접근성 매니저 연락처를 통해 전화‧문자로 신청할 수 있다. 공연 예매 단계에서는 사전 정보 제공을 위해 국립극장 홈페이지와 유튜브에서 수어 통역과 음성 해설, 자막이 들어간 공연소개 영상과 예매방법 안내 영상도 제공한다. 앞서 국립극장은 지난 6월과 8월 공연장 안내원을 대상으로 ‘장애인과 수화 언어의 이해’ ‘관객응대 기본 수어’ 등의 교육을 진행했다. 관람 당일에는 휠체어 이용객을 위한 보조 휠체어 서비스 등도 기존과 동일하게 마련되며, 사전 예약을 통해 휠체어가 탑승할 수 있는 셔틀버스를 동대입구역에서 국립극장까지 운행한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