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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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한국인 추기경 유흥식 누구… 프란치스코 교황과 각별

27일(현지시간) 공식 서임된 유흥식 라자로(70) 추기경은 한국 가톨릭교회 240년 역사에서 네 번째 추기경이다.

 

그전까지 한국 가톨릭은 선종한 김수환 스테파노(1922∼2009)·정진석 니콜라오(1931∼2021) 추기경과 염수정 안드레아(78) 추기경을 배출했다. 그동안 서임된 추기경들이 모두 서울대교구장 출신이었던 것과는 달리 유 추기경은 대전교구장 출신이다.

 

유흥식 추기경.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제공

1951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유 추기경은 이탈리아 로마 라테라노대에서 교의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로마 현지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 때문에 교황청에서 주로 사용하는 이탈리아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한다.

 

로마에서 공부하고 활동한 덕분에 교황청 내 인적 네트워크도 탄탄하다는 평가다.

 

1983년 귀국 후 대전 대흥동성당 주임 서리, 솔뫼 피정의 집 관장, 대전가톨릭교육회관 관장, 대전교구 사목국장을 지냈다. 대전가톨릭대 교수·총장 등을 거쳐 2003년 대전교구 부교구장 주교로 서품됐다. 2005년부터 대전교구장으로 직무를 수행해오다 지난해 6월 대주교 승품과 동시에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발령이 났다. 성직자부는 전 세계 사제·부제의 직무와 생활, 신학교 사제 양성 관련 업무를 관장하는 교황청의 중요 행정기구 중 하나다. 교황청 역사상 한국인 성직자가 교황청 장관에 임명된 첫 사례였다.

 

교황청 장관은 관례상 추기경이 맡아왔기에 유 대주교의 장관 발탁 당시부터 추기경 임명이 점쳐졌다. 그는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발탁된 지 11개월 만인 지난 5월 29일 종신직 추기경에 임명됐다. 그는 교황청 장관으로 임명되기 전에도 프란치스코 교황과 가깝게 소통하며 특별한 친교를 쌓아왔다.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에도 당시 대전교구장이었던 유 추기경의 역할이 컸다. 성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지인 충남 당진 솔뫼성지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참석을 청하는 그의 서한을 계기로 교황의 방한이 이뤄졌다.

 

유 추기경은 이후에도 바티칸에서 수시로 교황을 개별 알현해 한국 가톨릭교회의 주요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탈권위적 면모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꾸준한 관심, 강력한 추진력을 눈여겨본 교황은 그를 교황청 장관으로 임명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서구 출신 성직자들이 도맡다시피 한 교황청 장관에 가톨릭계 변방인 한국의 지역 교구장을 임명하자 현지에서는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뒤따랐다. 유 추기경은 그동안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주여성 등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남다른 관심을 두고 사회복지 활동에 힘써왔다. 특히 북한을 포함한 저개발국 지원에 남다른 열정과 관심을 두고 봉사를 실천했다. 대전교구장으로 봉직하던 2020년 말 세계 교구 중 처음으로 저개발국을 위한 ‘코로나19 백신 나눔 운동’을 시작한 게 대표적이다. 백신 나눔 운동에 깊은 인상을 받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러 차례 통화와 서신을 통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성향은 이날 새 추기경 서임식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신임 추기경 20명 중 유흥식 추기경을 비롯해 인도·싱가포르·동티모르·몽골 등 아시아 지역 성직자가 다수 포함됐다. 유럽과 북미 교회의 대교구장급 고위 성직자를 중심으로 인선했던 추기경 임명 관행을 과감하게 탈피한 것이다. 가톨릭교회의 저변을 넓히고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 교계로부터 다양한 목소리를 듣겠다는 교황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제266대 현 교황인 프란치스코 이전에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썼던 교황은 한 명도 없었다. 교황은 ‘가난한 이들의 성자’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길을 따르겠다며 누구도 갖지 않았던 그 이름을 선택했다. 실제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 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세상과 교회의 중심으로 이끌기 위해 애썼다. 서구 출신 성직자들이 맡아왔던 성직자부 장관을 지난해 6월 가톨릭교회 변방인 한국의 주교(유흥식 당시 대전교구장)에게 맡겨 전 세계 가톨릭계를 발칵 뒤집어놓기도 했다. 

 

앞서 교황은 2019년 교황청 복음화부 장관에 필리핀 출신의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을 임명했다. 교황청에서 전통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행정기구 중 두 곳에 아시아인을 임명한 것으로, 교황의 아시아 대륙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새 추기경 20명이 탄생하면서 전 세계 추기경은 226명으로, 이중 교황 선출권을지닌 80세 미만의 추기경은 132명으로 늘어났다. 대륙별로는 유럽이 53명으로 가장 많고, 아시아(21명), 아프리카(17명), 북아메리카(16명), 남아메리카(15명), 중앙아메리카(7명), 오세아니아(3명) 순이다. 이들 132명 중 83명(63%)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했다. 

 

새 교황으로 선출되려면 교황 선출회의(콘클라베)에서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만큼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정책을 이어갈 수 있는 성직자가 다음 교황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커졌다. 

 

최근 건강이 악화해 사임설이 불거진 교황이 개혁 작업을 계승할 후계 구도까지 마련해뒀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우호 세력을 두텁게 다진 교황은 29∼30일 추기경 회의를 주재하고 바티칸의 새로운 헌장을 논의한다.

 

추기경은 가톨릭교회 품계상 교황 다음으로 높은 성직자로, 추기경단을 통해서나 개별적으로 교황을 자문·보필한다. 특히 유 추기경은 아시아 대륙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왔고, 2014년 아시아 대륙 방문지로 대한민국을 택할 정도로 한반도 평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온 교황의방북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유 추기경은 “교황님께선 한반도 평화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북한을 방문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며 자신도 교황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최근 KBS 인터뷰에서 “북한이 나를 초대하면 거절하지 않겠다”며 방북 의지를 드러냈다.

 

교황은 이미 방북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지만 북한이 이에 응하지 않아 실제 성사 단계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이강은 기자, 바티칸=연합뉴스 ke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