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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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90원 후라이드 사러 2시간 줄”…소비자 웃지만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는 울상 [르포]

홈플러스·이마트 ‘초저가 치킨’ 오픈런 참여해 보니

평일 오후에도 30명 대기·2시간 기다리는 손님도
소비자, 프랜차이즈 ‘비싸다’ 인식에 마트 찾아
가맹점주 “원가 개념 다르고 본사 기준 있어” 토로
마트 직원 “업무 강도 높아져 힘들어” 하소연도
지난 23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한 홈플러스 매장에서 대기줄에 서 있던 소비자들이 당당치킨 판매가 시작되자 상품을 고르고 있다.

 

“오후 2시부터 한 시간 동안 판매를 한다고 해서 2시5분쯤 도착했는데 이미 다 팔렸더라고요. 다음 판매 시간이 오후 4시여서 기다리는 중이에요.”

 

지난 23일 오후 3시50분쯤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한 홈플러스 매장. 평일임에도 지하 1층 델리 코너에서 한정 판매 중인 ‘당당치킨’을 구매하기 위한 대기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대기줄 맨 앞에서 만난 김도현(24)씨는 “오늘 첫 도전”이라며 “저렴한데 맛도 좋다길래 기꺼이 2시간 정도 기다리는 중”이라고 전했다.

 

오후 4시가 다가오자 대기 인원은 30명 이상으로 빠르게 늘어났다. 해당 지점에서는 시간대별로 최대 10마리만 판매하고 있었는데, 혹시나 추가 물량이 진열될까 대기를 이어가는 소비자들이 다수였다. 홈플러스 당당치킨은 하루 정해진 시간에 소량 판매만 하다 보니 ‘1인당 1마리’로 구매를 제한한다. 이날 방문한 지점은 매일 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 4시 등 총 세 차례에 걸쳐 한 시간씩 회당 최대 10마리만 판매하고 있었다.

 

오후 4시 정각. 판매 직원이 당당치킨이 담긴 카트를 끌고 오자 30초도 안 돼 10마리가 모두 동났다. 열한 번째 손님은 아쉬운 듯 돌아갔고, 미처 제한 수량 안내를 확인하지 못한 다른 손님들은 판매 직원에게 항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30분 넘게 기다렸는데 왜 차가운 치킨을 주느냐”는 한 소비자의 항의에 직원이 “기다리라는 말씀 안 드렸다”고 응대하며 잠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홈플러스에서 6990원에 판매 중인 당당치킨.

 

당당치킨은 홈플러스가 지난 6월부터 선보인 1마리에 6990원짜리 프라이드치킨이다. 누적 판매량은 출시 두 달 만에 약 46만마리를 기록했다. 전문 치킨점과 달리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양이 제한적이라 품귀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치킨 사러 갔다 장만 몇십만원어치 보고 왔다”는 소비자들의 불만 아닌 불만이 나올 정도다. 실제 이날 치킨 구매에 실패한 대다수 소비자들의 쇼핑 카트에는 다른 식료품들이 가득 들어있는 상태였다. 홈플러스 델리 코너 매출은 당당치킨 판매 이후 전년 동기 대비 20%가량 증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마트 역시 당당치킨보다 더 저렴한 5980원 치킨을 내놓으며 ‘초저가 치킨 경쟁’에 동참했다. 이마트는 지난 18일부터 24일까지 ‘(9호)후라이드 치킨’을 1마리당 5980원에 판매했었다. 이전에 판매하던 ‘5분 치킨’보다 4000원 더 저렴한 가격이다. 현재는 다시 9980원에 치킨을 판매하고 있다.

 

행사 마지막날이었던 지난 24일 방문한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이마트에서는 오전 11시 오픈과 동시에 번호표 배부가 모두 끝났다. 이곳에서 만난 소비자 이모(69)씨는 “물가가 많이 올라 요즘은 치킨 한 마리 배달시켜 먹으면 2만원이 훌쩍 넘는다”며 “옛날 시장통닭 맛 생각도 나고 저렴해 이런 행사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한 이마트 매장에서 5980원에 판매하던 치킨 행사 물량이 모두 소진됐다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소비자들의 바람과 달리 마트 직원들은 힘겹다는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이마트의 한 직원은 “하루에 80마리 물량인데 순식간에 동났다”며 “일주일 동안 행사가에 치킨을 판매하니 손님들이 엄청 몰려왔다”고 손사래 쳤다. 이어 “화장실도 꾹 참고 닭만 계속 튀기느라 입안이 다 헐었다”며 “평소의 3배정도의 물량을 더 튀겼는데 오늘 행사가 끝나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대형마트 사이의 가성비 치킨 경쟁에 일부 프랜차이즈 가맹점 점주들 사이에서도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10여년 전 ‘골목 상권 침해’ 논란에 휩싸이며 시판 일주일 만에 사라진 롯데마트 ‘통큰치킨’ 사태의 악몽이 재현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경기도에서 치킨 전문점을 운영하는 한 가맹점주는 “홀 손님들이 이따금 왜 이렇게 치킨 값이 올랐냐면서 비교하는데, 마트 치킨과는 원가 구조, 인건비, 임대료, 닭 크기 등 모든 게 다르다”며 “특히 본사에서 정한 기준대로 팔다 보면 별로 남는 것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홈플러스 측은 “주요 재료를 대량 매입해 단가를 낮추고, 프랜차이즈 본부나 배달 플랫폼 없이 마트가 직접 판매하는 단순한 유통 구조 때문에 저렴한 치킨을 팔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사진=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