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금리 인상기에도 금융사들이 대출 이자 산정 시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있다. 바로 연 20%로 고정돼 있는 법정 최고금리다. 대부업체는 물론 사인 간 거래에도 이 상한선은 적용된다. 금융소비자보다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금융회사 및 대부업체가 이자를 지나치게 높게 산정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하지만 금리 인상이 본격화하면서 이 법정 최고금리가 외려 제2금융권 등의 저신용자 대출 회피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시장 금리 상황에 맞춰 최고금리 변동이 가능하도록 하는 ‘연동형 법정 최고금리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리 인상기 저신용자 대출 회피 가능성↑
대출 상품에 한해 법으로 정한 가장 높은 금리를 말하는 법정 최고금리는 현재 이자제한법과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대부업법)에서 각각 정하고 있다. 이자제한법은 사인 간 거래에, 대부업법은 법에 따라 인가·허가·등록을 마친 금융기관 및 대부업자 등에 적용된다.
현행 이자제한법은 최고금리를 25%, 대부업법은 27.9% 이내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규정하는데, 문재인정부는 고금리 대출자의 부담을 낮추겠다며 시행령 개정을 통해 지난해 7월 최고금리를 연 24%에서 20%로 내렸다. 이는 역대 최저치다. 문제는 최근 본격적인 금리 인상기에 접어들면서 연 20%에 근접한 중·고금리로 대출받을 수밖에 없던 저신용자들이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릴 가능성도 커졌다는 점이다. 금융권에서 연체 위험이 큰 저신용자 대출을 받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대출자들은 시중은행과 같은 제1금융권에서 대출을 시도한 후 거절당하면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을 찾고, 이마저 막히면 합법적인 대부업체로 발길을 돌린다. 저신용·취약계층일수록 최고금리에 근접한 수준에서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로부터 신용대출을 받는 경우가 많다.
대부업체는 자금 조달비용, 관리비 및 마케팅 비용, 부실 발생에 따른 대손비용 등을 바탕으로 대출 금리를 산정한다. 통상 저축은행이나 캐피털 회사 등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해오는데, 업체별로 차이는 있지만 업계에선 조달금리를 5∼8% 수준으로 보고 있다. 조달금리가 갈수록 높아질 경우 최고금리는 고정된 탓에 대손비용 등을 줄이게 되고, 결국 저신용자 대출을 거절하거나 담보가 있어야만 대출을 내주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서기 쉽다. 저축은행 등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대출금을) 떼일 확률 등을 낮추기 위해 좀 더 우량한 고객을 찾거나, 담보대출 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현시점에선 연동형이 대안”… 벤치마크 금리는 논의 필요
학계와 업계에선 이 같은 금리 인상기 저신용자의 금융소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연동형 법정 최고금리제 도입 등이 거론된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지난 7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시장금리 연동형 법정 최고금리 제도를 도입하면 조달금리 상승에 따른 취약차주 배제 현상을 대폭 완화할 수 있다”며 “조달금리의 상승 폭만큼 법정 최고금리가 인상되면, 고정형 법정 최고금리하에서 조달금리 상승으로 대출시장에서 배제되는 취약차주의 대부분에게 대출 공급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김 연구위원이 제2금융권 조달금리 상승에 따른 취약차주 배제 현상에 대해 분석한 결과, 지난해 말 기준 조달금리 2.37%(카드채 3년물, AA+)에서 3%포인트 상승하면 제2금융권에서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차주 중 96만9000명이 대부업이나 비제도권 금융시장으로 밀려나는 것으로 추산됐다.
안용섭 서민금융연구원 부원장은 “현시점에선 연동형 최고금리가 대안”이라며 “신규 (저신용자 대출) 수요에 대해서도 꾸준히 재정으로 지원하는 건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금융 내에서 가능한 한 흡수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정부 재정을 최소화하고 자유시장주의 원리에도 맞다”고 말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고금리 상황에서 유연하게 시장 상황을 반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서도 “(연동형 최고금리의) 벤치마크 금리로 어떤 금리를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고, 금융기관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금리로 해석을 해서 이익을 추구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관련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최고금리 수준, 정확한 데이터 바탕으로 결정해야”
연동형 최고금리제 도입과는 별도로, 법정 최고금리 수준이 어느 정도가 적절한지도 더 논의가 필요한 지점으로 꼽힌다. 저신용·취약계층의 상환능력 등을 고려했을 때 현 20%도 높다는 목소리와 서민 대출을 위한 제2금융권·대부업계가 유지되기 위해선 최고금리 수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상존한다.
서 교수는 “저신용 차주들에 대해서도 비금융 데이터를 통해 적정 금리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분석하려는 신용평가 모형들이 고도화되고 있기 때문에 막연히 정치권 논의에 의해 최고금리를 정하기보단 신용평가기관 등에서 나온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정하는 게 더욱 합리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10조대 서민금융공급… 취약차주 보호 나서
정부는 최근 고물가 및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저신용·저소득 서민이 겪는 금융 애로를 해소하기 위해 올해 중 10조원 규모의 정책서민금융을 공급하기로 했다. 고금리 시대 취약계층을 파고드는 불법사금융 척결을 위해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는 한편, 피해 예방 등을 위한 홍보에도 나선다.
2일 정부에 따르면,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한 ‘불법사금융 척결 범정부 태스크포스(TF)’는 이 같은 내용의 불법사금융 대응 및 저신용자 지원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및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이 불법사금융으로 넘어갈 위험을 줄인다는 취지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대통령실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고금리·채권 추심으로부터 서민·취약계층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관계 부처들은 먼저 오는 10월까지 ‘불법사금융 특별단속’을 실시하기로 했다. 불법사금융 척결에 경찰의 수사역량을 집중하는 것은 물론 법무부·경찰청·금융감독원·지방자치단체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이 협력해 불법사금융 단속 현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중요 사건이 나왔을 때 합동 수사할 계획이다.
정부는 저신용·저소득 서민을 위한 금융 지원은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정책서민금융을 대폭 확대하는 한편, 금리 인상에 보다 취약한 최저신용자가 불법사금융으로 인한 피해를 받지 않도록 신규 특례보증상품도 이달 말쯤 출시할 예정이다.아울러 현재 운영 중인 법률구조공단의 ‘채무자 대리인 제도’를 피해자들이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예산을 확보해 과도한 추심으로부터 채무자를 보호하고, 소송대리 등 법률지원 서비스도 제공할 방침이다. 이외에도 금융위원회는 금융기관 대출 사칭 광고에 대해 징역형을 신설하는 방안 등을 추진한다. 현재 50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물게 돼 있는 대부업법 처벌 규정을 3년 이하 징역, 5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강화하는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법무부는 서민 대상 불법사금융 범죄에 대한 검찰의 구속·구형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