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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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의 변신… 카페·창업공간으로 재탄생 [서울 반지하 지우기 ‘허와 실’]

입지 조건 좋으면서 임대료 1·2층의 절반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기회 50% 더 갖는 셈
홍대·연남동 등 반지하 상가 이미 일반화

반지하는 곰팡이·벌레·하수 역류 등 악조건이 많지만 때로는 ‘천덕꾸러기’ 신세를 벗기도 한다. 대도시 번화가의 반지하는 이미 대거 카페·와인바 등으로 변신했다. 반지하를 보수해 청년 창업공간이나 커뮤니티 시설로 바꾼 사례들도 나오고 있다.

사회적 기업 오롯컴퍼니의 이종건 대표는 2019년부터 반지하를 창업공간으로 바꾸는 ‘옥반지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창업 잠재력이 큰 청년에게 반지하를 저렴하게 제공하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미국 청년들이 허름한 창고에서 창업해 ‘개라지 정신’으로 성공 기업을 일궜듯이, 한국 청년들이 반지하에서 꿈을 키울 수 있으리라 봤다.

SH공사가 2020년 마을 아카이빙 공간으로 바꾼 서울 정릉동 반지하의 전과 후 모습. SH공사 제공

옥반지 프로젝트에서는 청년들이 반지하를 창업공간으로 손수 고칠 수 있도록 시공기술을 교육한다. 막 태동한 스타트업 사무실은 밤새 회의하다 쓰러져 자고 밥도 해먹기에 반지하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선행작업이 필수다.

이 대표는 30일 통화에서 “반지하는 입지 조건이 좋으면서 1, 2층의 반 가격”이라며 “반지하에서 창업하면 1000만원이 있을 경우 500만원만 매몰비용으로 쓰고 500만원은 기술개발에 투자해 더 성장할 수 있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기회를 50%는 더 갖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에서 반지하를 다 없애기보다 한번쯤 누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돌아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는 2020년 공사가 소유한 다가구·다세대 반지하 6곳을 커뮤니티 시설로 바꿨다. 서울 구로구 개봉동 반지하는 ‘작은숲 아지트’라는 이름의 주민 소통방으로 탈바꿈했고, 성북구 종암동의 반지하는 공유주방 ‘소소한담’으로 바뀌었다. 이외에도 주민건축학교, 실내 가드닝 공간, 전시·아카이빙 공간 등이 들어섰다. 낡은 반지하를 변신시킨 작업에는 청년 건축가들이 참여했다. 서울 홍대·연남동·가로수길 등 번화가에서는 반지하 상가가 이미 일반화됐다. 입지가 뛰어나고 임대료는 저렴해서다. 서울 연남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같은 조건이라면 반지하는 지상보다 월세가 30∼40% 저렴하다”며 “권리금도 지상이 1억원이라면 반지하는 3000만원까지도 차이 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상가는 냉난방을 많이 틀기에 반지하여도 환기가 되고 잘 마른다”며 “지하가 뽀송뽀송해지면 전체 건물 자체도 좋아진다”고 전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