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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옥탑방·고시원으로… ‘풍선효과’ 우려 [서울 반지하 지우기 ‘허와 실’]

(하) 반지하 폐지가 능사일까

서울시, 10∼20년간 없애는 ‘일몰제’ 추진
공공임대주택 23만가구 이상 공급 계획
지상 이주 시 월 20만원씩 최장 2년 지원
정부도 “보증금 5000만원 무이자 대출”

반지하 가구 공공임대주택 입주 ‘별따기’
전문가 “공공임대 확대 정책 실현 불가능”
집값 생각하면 바우처 지원도 효과 의문
“임대 확충 등 세부 계획 차근차근 세워야”

서울에서 반지하 주택을 모두 없애겠다는 서울시의 의지는 강하다. 서울시는 집중호우로 동작구와 관악구 반지하 주택에 살던 4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자 지난 10일 ‘반지하 주택 제로’를 선언했다. 10∼20년 유예기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주거용 반지하 건축물을 없애 나가는 ‘반지하 주택 일몰제’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15일엔 구체적인 추가 대책을 내놓았다. 20만 반지하 가구 전수조사, 공공임대주택 물량 23만호 이상 공급, 반지하 가구의 지상 이주 시 월 20만원씩 최장 2년간 지원하는 특별 바우처 제공 등이 핵심이다. 기존 반지하 주택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매입해 주민공동창고나 커뮤니티 시설 등으로 바꾸고, 민간이 반지하 주택을 비주거용으로 전환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도 반지하 없애기에 나섰다. 정부는 30일 내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반지하·쪽방 등에 사는 취약층이 지상으로 이주하면 보증금 5000만원을 무이자로 빌려주겠다고 발표했다. 공공임대주택으로 옮기면 보증금 50만원까지 무이자로 대출한다. 이사비·생필품 구매비 40만원도 지원한다.

서울시 소재 반지하 주택 창문 사이로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최근 침수와 수해 피해로 불거진 반지하 주택의 주거 불안정성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분출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 문제만큼은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다는 게 평소 문제의식”이라면서 “지옥고 중 제일 먼저 줄여나갈 게 있다면 반지하다. 이를 반영해 침수지역을 중심으로 반지하 주거 형태를 위로 올리는 방안을 내놓았다”고 의지를 내비쳤다.

 

◆반지하 주택 사라지면?… 거주민은 어디로 가나

 

서울시에서 반지하 주택이 정말 사라질 수 있을까. 가장 큰 쟁점은 반지하 주택을 모두 없애면 그곳에 살던 사람은 어디로 가느냐다.

 

대체로 현실적인 여건에 맞춰 반지하 주택을 거처로 삼은 이들의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다. 또 다른 반지하 주택이나 옥탑방, 쪽방, 고시원 등 주거취약지가 될 확률이 높다. 이들이 가장 원하는 보금자리는 공공임대주택이다. 국토교통부의 2020 주거실태조사 결과, 서울 반지하 주택 가구의 76%는 공공임대주택 입주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이들이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2010∼2020년 서울 시내 공공임대주택은 연평균 약 2만가구씩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서울시가 ‘주거 취약계층 주거상향 지원사업’을 통해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한 가구는 1669가구에 불과하고, 이 중 반지하 가구는 14.8%인 247가구에 그쳤다.

 

정부의 내년 보증금 지원 예산도 공공임대 이주 1만명, 민간임대 이주 5000명을 전제로 편성해 수요에 턱없이 못 미친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정부와 서울시가 민간 개발과 분양 주택 위주의 정책에 집중하고 있고, 공공임대주택 정책은 후퇴하는 상황”이라며 “반지하 가구를 위한 공공임대주택을 늘리겠다는 정책은 실현될 수 없는 이야기”라고 단언했다. 이강훈 주거권네트워크 변호사(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도 “서울시가 공공임대주택 확대를 언급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보면 충분한 공급이 이뤄지리라는 예상을 하기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서울시도 복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42년까지 재건축 연한 30년이 도래하는 노후 공공임대주택 258개 단지, 약 11만8000호를 재건축하면서 용적률을 상향하면 기존 가구의 2배 수준인 23만호 이상을 공급할 수 있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공공재개발, 모아타운 대상지를 선정할 때 반지하 밀집지역을 우선시하고 신속통합기획 재개발은 상습침수구역에 가점을 주겠다는 방침도 더했다. 재개발 등 정비사업을 통해 매년 8000호 이상의 반지하 주택이 사라질 것으로 시는 보고 있다.

 

재건축 연한이 지난 노후 공공임대주택 중 SH가 소유한 물량은 3만9802호일 뿐, 2만3628호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갖고 있다. 5만5092호는 분양·공공임대주택 혼합단지 내 공공임대주택 물량이다. 재건축이 추진되려면 이들과 추가적인 협의가 필요하다. 서울시 의도대로 공공임대주택 물량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서울시 계획대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려면 송파 헬리오시티만 한 단지를 해마다 1개씩 더 만드는 것과 같다”며 “서울시가 의지를 갖고 목표를 잡았지만 실현성은 높지 않다”고 평가했다.

 

◆특별 바우처 공급의 실효성은… 옥탑방·고시원 풍선효과 우려도

 

시가 내세운 월 20만원씩 최장 2년간 반지하 가구에 제공하는 특정 바우처 지원도 실효성에 의문부호가 달린다. 서울의 높은 집값을 고려하면 소모적인 미봉책에 그칠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 변호사는 “반지하 거주자가 지상으로 주거 상향을 한다고 해도 젊은 층을 제외하고는 이들의 소득이 2년 후 많이 증가하기 어렵다”며 “주거비 부담이 증가하는데 반지하 가구들이 주거 상향을 위해 자발적으로 이주할 것이라고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택가에 위치한 반지하 가구들. 연합뉴스

김 교수는 “그 정도 도움을 주면 지상으로 이주할 여력을 갖춘 젊은 1인가구 등에게 지급해야 효과를 볼 수 있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촘촘한 지원책 없이 반지하 주택을 모두 없애면 그 수요가 고시원, 쪽방 등 또 다른 주거취약지로 몰리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반지하 가구만 지원이 이뤄질 경우 또 다른 주거취약계층 간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이 변호사는 “반지하 거주자가 부담 가능한 지상 주택을 찾기 어려울 경우 고시원이나 옥탑방으로 이사를 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며 “반지하 거주자 일부가 지상의 단독·다가구 주택 거주자를 밀어내면 이들은 고시원이나 옥탑방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반지하 주택을 대체할 주택이 부족해지면 연쇄적으로 단독·다가구 주택 가격과 고시원, 옥탑방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 소장은 “고시원에서 불나면 고시원 대책 나오고, 반지하 가구가 침수되면 반지하 대책 나오는 식의 대책으로는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주거취약계층 전체를 보고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 현장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오른쪽은 오세훈 서울시장. 연합뉴스

◆안전 대책이 우선… 단계적·현실적인 정책 세워야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반지하 주택이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에는 동의했다. 이들도 현재까지 나온 서울시 ‘반지하 제로’ 정책은 아직 목표일 뿐, 정책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우선 또 다른 자연재해에 맞서 이들을 보호할 안전 대책을 먼저 수립한 후, 공공임대주택 확충 방안 등 세부 계획을 차근차근 세워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김 교수는 “당장 이번 가을에도 집중호우로 위험할 수 있다. 침수 가능성, 건축연령을 나눠 단기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단기적으로 위험지대에 차수판(물막이판)을 설치해서 피해를 막고, 중기적으로는 그런 반지하 가구들부터 없애고 전세 공공임대 등 활용할 수 있는 주택을 통해 이들을 흡수해야 한다. 이후 장기적으로 전체 퇴출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도 “우선순위를 정해 지옥고 거주 가구를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주거비 부담을 경감하는 주거 정책이 필요하다”며 “수해 등 재해 위험지역의 주거지, 생명과 건강에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높은 주거지부터 단계적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최 소장은 “당장 안전을 위협받는 분들을 위한 즉각적인 지원 대책이 나와야 한다”며 “기존 주거급여에 서울시 특별 바우처를 함께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윤모·안승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