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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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에 트롤리 컨베이어 방식 접목… 신개념 식물공장 [지방기획]

보령시 소재 농업회사 법인 '코리아팜'

자동차 스틸휠 업체 '코리아휠'서 설립
작물 종류에 따라 길이·높이 조절 가능
한 공간서 다양한 작물 동시 재배 장점
토지 이용률 높아… 수확량 최대 18배
인건비 절감… 병해충 피해 거의 없어
특허 출원… 신기술·디자인 등록 마쳐

지난달 26일 스마트 농업기술 전문 전시회(Green & Agritech Asia)가 열린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전시장, 29㎡(9평) 크기의 컨테이너 앞에 관람객들이 줄을 서 있었다. 코리아팜이 운영하는 ‘트롤리 컨베이어를 이용한 무빙 스마트팜’이다. 컨테이너에 들어가 보니 트롤리 컨베이어(trolley conveyor)가 원을 그리며 서서히 돌아가고 있었다. 트롤리 컨베이어의 레일에는 기다랗게 101개의 행거가 매달려 있다. 행거마다 쟁반 모양의 둥근 트레이(606개)가 수직으로 6단까지 연결돼 있다. 트레이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새싹 인삼이 파릇파릇하게 자라고 있다. 컨테이너 가장자리에 설치된 분무기에서는 물과 식물영양제가 자동으로 트레이에 분사됐다. 스마트폰으로 컨테이너 새싹 인삼의 생육상태를 점검하고 온도와 습도, 햇볕 등 환경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시스템도 갖춰져 있다.

트롤리 컨베이어 시스템이 갖춰진 컨테이너에서 자라는 새싹 인삼.

이 좁은 컨테이너에서만 새싹 인삼 5만2000여주가 이런 방식으로 재배되고 있다. 새싹 인삼 수확은 간단했다. 컨테이너 입구의 작업 테이블에서 작업자는 눈앞까지 다가오는 트롤리 컨베이어를 기다렸다가 다 자란 새싹 인삼을 골라내 상자에 담으면 됐다. 작업자가 수확을 하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컨테이너에 설치하는 식물재배시스템 비용은 대략 6500만원이며, 새싹 인삼 재배 기간은 3∼4주다. 한번에 수확하는 수입은 1800만원가량이다. 관람객 이천주씨는 “작업자 중심으로 설계돼 농촌의 노인이나 장애인도 손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획기적인 스마트팜 농법”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휠 공장서 스마트팜 아이디어 착안

농업회사 법인 코리아팜은 충남 보령시 관창산업공단에 있다. 코리아팜은 2019년 국내 1위 자동차 스틸휠 업체로 자리 잡은 코리아휠이 만든 농업회사다. 코리아팜의 스마트팜 시스템 핵심은 트롤리 컨베이어다. 트롤리 컨베이어는 자동차 휠 생산라인에서 휠을 선로에 매달아 연속해서 나르는 장치다. 이 트롤리 컨베이어에 자동차 휠이 아닌 농작물을 심으면 효과적인 스마트팜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에 착안했다. 코리아팜은 2017년부터 3년간 연구 끝에 식물재배용 트롤리 컨베이어 시스템을 완성했다. 공장에서 쓰던 트롤리 컨베이어를 컨테이너와 온실로 들여와 작물을 재배하는 스마트팜이다. 환기설비와 양액설비, 열원설비, 감시설비, 조명설비를 갖춘 신개념 식물공장인 셈이다.

이 트롤리 컨베이어의 특징은 기존 토경이나 수경재배와 달리 작물이 심겨 있는 트레이를 움직이는 것이다. 트롤리 컨베이어는 시설의 형태와 작물 종류에 따라 길이와 높이를 조절할 수 있다. 높이 5m 정도인 330㎡(100평) 비닐하우스에 1, 2단의 트레이를 설치할 경우 그 길이는 최대 420m가 된다. 트롤리 컨베이어에 일정 간격으로 부착한 행거에는 트레이를 대개 1∼3개 매단다. 작물에 따라 트레이 모양은 원형이나 타원형, 사각형 등으로 다양하다. 보령의 코리아팜 실증단지 비닐하우스에는 다양한 종류의 작물이 한 공간에서 동시에 재배되고 있다. 비닐하우스 바닥에는 키가 작은 상추를, 위쪽에는 키가 큰 고추를 각각 트레이에 심어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 이 실증단지에서는 배추와 무, 오이, 토마토 등 다양한 작물을 시험적으로 길러보고 있다. 트레이에는 일반 흙이 아닌 배양토를 넣는다. 코리아팜 김용길 부장은 “국내외에 설치된 시설의 생육 정보를 수집해 빅테이터를 구축하고 작물별 매뉴얼을 제공하는 통합관제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며 “최적의 공간활용과 인건비를 줄인 한국형 K스마트팜으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확량 18배에 인건비는 90% 절감…K스마트팜 구축

트롤리 컨베이어의 가장 큰 장점은 수확량이다. 컨베이어 하나에 트레이를 2∼4단씩 매다는 데다 컨테이너나 온실 위쪽까지 모든 공간 활용이 가능하다. 토지이용률을 보면 시설재배는 노지면적의 1∼3배지만 트롤리 컨베이어는 이보다 최대 18배까지 가능하다. 수확량도 노지와 비교해 최대 18배나 된다. 트롤리 컨베이어 스마트 농법을 하면 작물의 병해충 피해가 거의 없다. 트레이에 심어진 작물은 땅이 아닌 공중에 떠 있다 보니 병해충 침입이 불가능하다. 고추와 상추, 오이 등은 모두 농약을 치지 않는 유기농 작물 재배가 가능하다.

유리온실에서 트롤리 컨베이어 시스템으로 자라는 딸기.

트롤리 컨베이어 시스템은 인건비를 크게 절감한다. 작업자 한두 명이 작업 테이블에 앉아서 파종부터 이식, 관리, 수확, 포장까지 모든 과정의 작업을 할 수 있다. 키가 큰 작물의 경우 작업자 앞에서 땅을 깊게 파내고 컨베이어가 작업자 손 높이에서 작업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 작업자는 한 곳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컨베이어가 자동으로 이동해 작업을 할 수 있는 높이를 맞춰주는 시스템이다. 작업자가 사다리를 타거나 옮겨다닐 필요가 없다. 코리아팜은 트롤리 컨베이어를 이용한 식물재배시스템 등 모두 9건의 특허와 신기술 인증을 등록했다. 6건의 디자인 등록도 마쳤다.

트롤리 컨베이어의 보급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코리아팜은 우선 자자체의 농업기술센터 보급에 주력하고 있다. 일반 농가 보급에 앞서 실증재배를 통해 데이터를 확보하고 경제성을 분석하기 위해서다. 보령시 농업기술센터의 유리온실(165㎡)에 ‘순환식 스마트팜 시범단지’를 운영하고 있다. 무료로 트롤리 컨베이어 시스템을 설치해 농가의 보편적인 작물인 고추와 토마토, 오이, 양상추 등을 시범적으로 기르고 있다. 농협대학교의 비닐하우스 416㎡에는 상추류와 딸기를 재배하고 있다. 고령농업인 대상으로 노동력 절감 효과 검증과 엽채류와 딸기의 품질 향상 방안 연구가 목적이다. 경기 남양주의 딸기 농가와 경남 진주의 한 농업법인은 이 시스템을 선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광주=글·사진 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