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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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덕분에 헬기 조종사 됐지만 이젠 탈레반 편… 왜?

'블랙호크' 모는 아프간 장교, BBC와 인터뷰
"정권은 중요치 않아… 조국 위해 봉사할 것"

31일(현지시간)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완전 철수 1주년이 되었다.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을 수반으로 한 아프간의 친미 정권은 탈레반과의 내전에서 굴욕적 참패를 당한 끝에 수도 카불을 내줬다. 1년이 지난 지금 탈레반은 아프간 전역을 장악한 채 여성차별 등 과거 악습을 되풀이하는 중이며 그런 아프간은 국제사회에서 ‘왕따’나 다름없는 처지가 되었다.

 

영국 BBC는 탈레반의 아프간 정권 탈취 1주년을 맞아 미군 전투헬기 블랙호크 조종사 무하마드 이드리스 모만드와 인터뷰를 했다. 모만드는 미군이 아프간에 주둔하던 2009년 아프간 군대에 입대했고, 미군의 눈에 띄어 미국 유학의 기회를 잡았다. 웨스트포인트 육사를 수료한 그는 헬기 조종사가 돼 아프간에 배치됐다. 하지만 지난해 8월 탈레반이 아프간 수도 카불을 점령하기 직전 그는 미군이 아프간 정부군에 제공한 블랙호크 헬기를 몰고 탈레반에 투항했다.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블랙호크 헬기 조종사 무하마드 이드리스 모만드. BBC 홈페이지

어찌 보면 미국의 철저한 조력자였던 모만드가 탈레반 정권 하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막판의 이 선택 때문이다. 미국으로부터 상당한 혜택을 받은 모만드는 왜 마지막 순간에 미국을 버렸을까.

 

“가족에게 조언을 구했어요. 아버지는 ‘네가 이 나라를 떠나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죠. 제가 조종하는 그 헬기는 미국이 아니고 바로 아프간 것이라면서요.”(모만드)

 

당시 모만드의 동료들은 탈레반을 피해 우즈베키스탄으로 피신했다. 모만드 역시 동료들한테, 그리고 상부엔 ‘나도 헬기를 몰고 우즈베키스탄으로 간다’고 알렸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었다. 모만드가 조종하는 블랙호크 핼기는 그의 고향 마을 근처에 착륙했고, 이미 그곳을 장악하고 있던 탈레반은 모만드의 안전을 보장함과 동시에 헬기를 인수했다.

 

“저의 행동에 후회는 없어요. 미군 협력자인 저는 아내, 아이들을 데리고 아프간을 떠나 미국으로 갈 수 있었지만 아버지 말씀대로 그냥 남아 있기로 결정한 거죠. 그때까지도 아프간에 남아 있던 미군 고문단이 ‘가족과 함께 대피하라’고 3차례나 메시지를 보냈지만 거절했습니다.”(모만드)

 

이제는 탈레반을 위해 일하는 모만드는 BBC에 “현재 아프간에는 사용할 수 있는 블랙호크 헬기가 7대 있다”고 소개했다. 미군은 철수 직전 탈레반이 고가의 군사장비를 손에 넣지 못하도록 이들 장비를 대거 파괴하거나 훼손했다. 하지만 모만드는 “일부는 우리 기술자들이 충분히 수리할 수 있는 정도”라며 “조만간 더 많은 블랙호크 헬기들이 정비를 거쳐 작전 수행에 투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해군 항공모함에서 이륙하는 전투헬기 블랙호크의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탈레반과 싸우기 위해 미국 유학을 다녀오고 헬기 조종술까지 익힌 사람이 미국을 버리고 탈레반을 택한 건 모순 아니냐’는 지적에도 모만드는 당당했다. 자신은 아프간 국민이자 군인이고 누가 정권을 잡든 나라에 충성하는 게 군인의 의무라고 반박했다.

 

“정권은 항상 변합니다. 우리는 (특정 정권이 아닌) 국가에 속하고 국가에 봉사합니다. 군인이 정치에 관해 왈가왈부해선 안 됩니다. 저는 제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제 맡은 분야에서 나라를 위해 봉사할 겁니다.”(모만드)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