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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명 총재와 1990년 단독회담… 한·소 수교, 남북관계 전기 마련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 별세]

머리 맞댄 양극단의 지도자

‘평화세계 실현’ 초국가적 목표 합의
동북아시아 평화 증진의 신호탄 돼

30일 별세한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고르비)에게 부여된 최고의 영예는 ‘동서냉전의 종식자’. 그 상대역으로는 역사적 군축회담을 통해 냉전을 종식시킨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민간 지도자로서 현대사 거목과 무릎을 맞대고 세계 평화 구축 방안을 논의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문선명 총재를 빼놓을 수 없다.

크레믈궁서 첫 만남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1990년 4월 11일 소련 모스크바 크레믈궁에서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현대사 두 거목이 모스크바 크레믈궁에서 단독회담을 가진 건 1990년 4월 11일, 양국 수교 5개월 전이다. 당시 세계일보 회장으로서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언론인대회에 참석한 문 총재는 고르비 집무실에서 단독회담을 가졌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화해를 시도하는 이 자리에서 고르비는 문 총재에게 “이곳이 내 집무실입니다. 다시 한 번 문 총재를 환영하며 소련에서 처음 열린 세계언론인대회의 성과를 축하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이어 고르비는 한반도 통일에 대해 “우리 모두 한반도 통일 문제에 긍정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라며 “한반도 주변 국가들은 남북한 통일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남북한의 화해 분위기 조성을 위해 소련이 할 수 있는 일을 구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고르비는 자신이 추진하고 있던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 관련해 “우리 소련만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온 세계의 것이라고 인식해야 할 것”이라며 가정연합에 소련 부흥의 직간접적인 힘이 돼줄 것도 요청했다. 문 총재는 회담장에 배석한 공산당 정치국 요인들을 가리키며 “능력 있고 훌륭한 지도자들이 측근에 포진돼 있어 개혁정책 추진이 실효를 거두고 있는 것 같다”고 화답했다.

 

이 회담은 냉전 종식과 탈냉전의 전환기를 여는 회담으로서 역사적 의미가 부여된다. 이후 한·소 수교와 소련붕괴, 냉전 종식과 다극체제 전환 등 탈냉전시대로의 변화를 예고하는 자리가 됐다. 문 총재와 고르비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양 극단에 서 있던 세계적인 지도자로서 평화 세계 실현이라는 초국가적 목표에 뜻을 같이했다. 한반도 역사에서도 문 총재와 고르비 회담은 진전이 없었던 한·소 관계와 남북관계에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 동북아시아 평화 증진의 신호탄이 됐다. 이후 고르비는 1994년 방한해서 가정연합 서울대회에 참석한 후 문선명·한학자 총재의 한남동 관저까지 방문하는 등 우의를 이어갔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