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추석 전 새 비상대책위원장 임명을 서두르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 관계자) 사이의 거리 두기도 가시화되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선 수습 후 거취 결정’으로, 장제원 의원은 스스로 2선 후퇴를 선언하며 물러난 배경에는 6·1 지방선거 이후 자중지란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당과 대통령실에 대한 윤 대통령의 실망이 깔려 있다. 윤 대통령 측에서는 장 의원의 영향력을 받은 정부 부처의 인선까지도 살펴보는 등 ‘장제원 라인’ 솎아내기가 가속화하고 있다.
1일 대통령실과 여권 관계자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달 휴가 중 대통령실의 각종 인사 잡음에 대해 보고를 받으며 장 의원과 권 원내대표 등 윤핵관 의원들의 인사 추천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윤핵관 의원들이 대통령실 곳곳에 자신과 연이 닿는 사람들을 추천, 이들을 통해 대통령실 내부 상황을 수시로 전달받은 정황이 드러난 점이 인적 쇄신의 주요 원인이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는 “‘최고의 인재들로 내각과 대통령실을 꾸려달라’고 주문했는데, 대통령실과 내각을 민원 창구로 만들어 버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통령실은 각 부처와 대통령실의 ‘늘공’(직업 공무원) 인사 중 윤핵관의 추천을 받은 사례들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대통령실은 윤핵관에 대한 대통령의 불만과 당무에 대한 메시지 전달 여부 등엔 선을 그었다. 대통령실은 우선 윤 대통령이 윤핵관에게 ‘자기 정치만 하는 것 같다’고 불만을 표했다는 여당 의원 전언을 실은 보도에 대해 “사실관계가 분명하지 않다”며 갈등설을 부인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용산 청사 브리핑룸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이 여당 의원들에 SOS(도움 요청)를, 윤핵관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대통령은 당 의원들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며 “윤 대통령은 그동안 일관되게 의원들이 중지를 모은 결론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피력해왔다”고 반박했다.
윤핵관이 아니고서는 당장 가깝게 소통할 수 있는 당내 구심점이 없다는 점, 권 원내대표 이후 새롭게 선출될 원내대표가 윤핵관 중에서 나오기 어려운 상황 등이 윤 대통령과 윤핵관의 결별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권 원내대표와 장 의원이 과거처럼 인사 추천과 주요 정무 판단에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힘의 혼란상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준석 전 대표는 이날 법원에 당헌 개정을 위한 국민의힘 전국위원회 개최를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추가로 냈다. 그가 ‘친정’을 상대로 낸 세 번째 가처분 신청이다. 추석 전 새 비대위 출범을 목표로 관련 절차를 밟던 국민의힘이 또 다시 암초에 부딪힌 모양새다. 이 전 대표 측은 전날에는 오는 14일로 예정된 비대위 효력정지 2차 가처분 신청의 심문기일을 앞당겨달라고 요청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다.
새 비대위를 둘러싼 차기 당권 주자들 간 의견 충돌도 이어졌다. 김기현 의원은 이날 BBS라디오에서 새 비대위 출범을 의결한 지난달 30일 의원총회 결과에 대해 “절대다수가 지금 우리가 의총에서 결정한 것이 옳다고 판단했는데 그게 다지, 다른 목소리를 내는 몇 분이 있다고 해서 어떻게 많다고 말하는가”라고 역설했다. 반면 안철수 의원은 TV조선에 출연해 의총 당시 새 비대위 도입에 반대하는 다수 의견이 가려졌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일방적으로 한쪽으로만 의견이 나오지는 않았다”며 “반대하는 의견들도 꽤 있었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가 당 의총에서 이 전 대표의 ‘개고기’·‘양두구육’·‘신군부’ 발언 등에 대한 추가 징계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온 것과 관련해 “의총 의견을 존중한다”는 말로 추가 징계를 시사하면서 전선이 확대됐다. 윤리위는 이날 낸 입장문에서 이렇게 밝힌 뒤 “윤리위 결정(이 전 대표 징계)을 ‘정치적 사주’를 받은 결과로 치부하는 것은 근거없는 정치적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이 전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윤리위가 양두구육같은 사자성어를 문제 삼는다면 대법원 보다 위에 있는 기관이 된다”고 비꼬았다. 한편, 이 전 대표의 ‘성 접대’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은 이날 이 전 대표 측에 소환 조사를 통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