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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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주택 ‘묶음 개발’… 대단지 아파트 버금가는 마을 완성”

서울시 모아주택·타운 설명회 가보니

개발 가능성 낮은 저층주거지 대상
인접 다가구·세대 주택 소유자 모여
1500㎡ 이상 블록 단위로 공동개발
난개발 막고 공동주차장 조성 가능
市, 5일까지 후보지 20곳 접수 나서

“5개의 가로주택정비사업을 한 단지처럼 계획해서 시행할 수 있는 게 모아타운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지난달 18일 서울 광진구 나루아트센터에서 열린 ‘모아주택·모아타운 주민설명회’. 김지호 서울시 모아주택계획팀장의 설명에 100여명의 주민이 숨소리를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30대 젊은 층부터 70대 어르신까지 참석 주민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지난달 18일 서울 광진구 나루아트센터에서 열린 ‘모아주택·모아타운 주민설명회’에서 주민들이 서울시 측의 설명을 유심히 듣고 있다.

자율주택형, 가로주택형, 과소필지 등 생소한 용어가 잇따르자 이들은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화면의 발표 내용을 주시했다. ‘낡고 불편하지만 재개발은 엄두가 안 나는 서울 빌라촌도 바뀔 수 있을까.’ 참석 주민들이 가진 이런 의문에 김 팀장은 모아타운이 왜 해법인지 하나하나 짚었다.

◆모여서 개발하니 대단지 아파트 안 부러워

이날 설명회는 서울시가 모아타운 대상지 두 번째 공모를 앞두고 연 행사였다. 시는 모아타운 약 20곳을 선정하기 위해 오는 5일까지 후보지를 접수한다. 면적 10만㎡ 미만에 노후·불량 건축물이 절반 이상인 일반주거지역이 대상이다. 앞서 서울시는 자치구 공모를 통해 지난 6월 21곳의 모아타운 대상지를 처음 선정했다.

1일 서울시에 따르면 모아타운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핵심 주택정책 중 하나다. 살기 불편한데 개발 희망은 안 보이고 대단지 아파트와 격차는 점점 커지는 낡은 저층주거지가 대상이다. 10만㎡ 이내 저층주거지를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 대단지 아파트와 유사하게 개발하는 방식이다. 모아타운 내에서는 이웃한 다가구·다세대 주택 필지 소유자들이 모여 1500㎡ 이상 블록 단위로 아파트를 공동 개발하는 ‘모아주택’(소규모주택정비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모아주택의 핵심은 ‘모인다’이다. 개발사업의 덩치가 커지면 나홀로 아파트의 난립을 막을 수 있다. 모아주택 여러 곳이 합심하면 공동 지하주차장·녹지를 만들 수 있어 대단지 아파트 같은 편의시설이 가능해진다. 건물·도로 배치 역시 체계적으로 해 소규모 주택 정비의 한계를 넘을 수 있다.

서울시도 인센티브를 준다. 개별 사업 노후도는 67%에서 57%로 완화된다. 제2종 7층 이하 일반주거지역에서 모아주택을 추진하면 공공기여 없이도 평균 13층, 최고 15층까지 높일 수 있다. 제2종 일반주거지역의 경우 올해 내에 조례 개정을 통해 최고 15층인 층수 제한이 폐지된다.

모아주택 관리계획 수립 과정에서 용도지역 상향도 노려볼 수 있다. 이때 증가되는 용적률의 50%는 임대주택으로 기부채납해야 한다. 예를 들어 2종 일반주거지역이 3종으로 상향되면 기준 용적률이 200%에서 250%로 늘어나고, 증가한 50%의 절반인 25%를 임대주택으로 짓게 된다.

주차장·공원 조성에 공공 예산도 최대 375억원까지 지원될 수 있다.

재개발·재건축과 달리 신속 개발이 가능한 것도 장점이다. 재개발·재건축은 정비계획 수립부터 최종 이주·착공까지 평균 8∼10년이 걸린다. 반면 모아주택·모아타운은 4∼5년이면 가능하다고 서울시는 설명한다. 정비계획 수립·조합추진위원회 승인, 관리처분계획 인가가 생략된 덕분이다.

서울시 모아타운 시범사업 지역인 강북구 번동의 정비 전 모습. 서울시 제공
서울시 모아타운 시범사업 지역인 강북구 번동의 정비 후 예상도. 서울시 제공

◆서울 빌라촌 재개발 힘들어 모아타운 필요

모아타운이 필요한 이유는 서울 저층주거지의 87%가 재개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 팀장은 “서울 저층주거지 131㎢ 중 115㎢는 향후 10년 이내 재개발이 힘들다”며 “10년 이내 재개발 법적 요건에 부합하는 지역은 16.7㎢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반면 빌라촌으로 불리는 저층주거지 상당수는 좁은 도로에 낡은 집이 다닥다닥 붙은 데다 불법 주차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시에 따르면 서울 한 지역의 경우 24㏊에 차량 634대가 불법 주차돼 있었고, 40㏊인 다른 지역엔 264대가 불법으로 주차된 상태였다.

이런 저층주거지를 방치하면 나홀로 아파트가 듬성듬성 들어서 주거 환경과 도시 미관이 열악해지고 재개발 조건에서 더 멀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 서울시는 모아주택 방식의 ‘묶음 개발’을 통해 저층주거지 난개발을 막고 주거 환경을 개선하려 한다.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주민들은 ‘잘 이해가 안 된다’는 말부터 전문적인 질의까지 다양한 반응을 쏟아냈다. 한 주민은 “오랫동안 건축업을 했는데도 (모아타운이) 이해가 안 된다”며 “책자로 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모아주택 요건이 1500㎡ 이상인데 서울에 협소필지가 많아 이에 못 미치지 않느냐, 가로주택정비사업과 모아타운의 노후도 요건이 다른데 모아타운 공모 전에 조합 설립을 먼저 추진할 필요가 있는지 등의 질문도 나왔다.

◆“모아타운으로 주차난 해결할 수 있을 것”

설명회가 끝난 후 만난 주민 정철수(가명·45)씨는 모아타운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정씨는 2016년부터 광진구 자양동에 살다 자녀 교육 문제로 다른 지역 전세로 옮겼다. 그는 “자양동은 주차 문제가 어마어마하다”며 “모아타운을 하면 공동주차장을 만들 수 있다니 주차난을 해소할 수 있을 듯 하다”고 말했다.

상당수 시민에게 모아타운이 생소하지만 정씨는 일찍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의 처가가 서울 성동구 성수전략정비구역에 있기 때문이다. 정씨는 “성수전략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지 10년이 넘었는데, 조합 설립만 10년 걸렸다”며 “모아타운은 재개발보다 기간이 훨씬 줄어든다니 좋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어 “게다가 가로주택정비사업과 달리 3∼4구역을 합쳐서 모아타운으로 가면 난개발되지 않고 공동주차장을 쓰는 데다 녹지 확보도 되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며 “자양동은 가로주택보다 모아타운이 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씨는 “자양동 개발을 바라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집 앞에 들어선 대단지 신축 아파트”라면서 “아마 다들 그 아파트를 보면서 ‘우리도 저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코로나19로 3년을 보내니 집의 소중함을 느끼게 됐다”며 “전에는 집이 자고 출근하는 곳이었지만 이제 생활 공간으로 바뀌어 ‘더 크고 넓었으면 좋겠다’는 욕망이 커졌다”고 말했다.


글·사진=송은아 기자 se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