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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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무가내 폭력적 학생에 무력감… “할 수 있는 게 없다” 무너진 교권

담임에 양날톱 휘두른 초등생
‘그날’ 기억에 교사는 트라우마

“처참했죠.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경기 수원의 한 초등학교 교사 A(31)씨는 ‘그날’에 대한 기억을 묻자 ‘처참’이란 단어를 꺼냈다. 지난 6월30일, 그는 학교 연구실에 들어갔다가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6학년 B군이 여성 담임교사에게 목공용 양날톱을 휘두르고 있던 것이다. 이날 학교에 전학 온 지 나흘째였던 B군은 복도에서 동급생과 싸우다 담임교사가 연구실로 데리고 오자 흥분 상태로 서랍에서 톱을 꺼내 들고 “(싸운 아이와 교사) 둘 다 죽이겠다”며 욕설을 쏟아냈다.

B군은 교사들을 향해 “지금 내가 톱 들고 복도에 나가도 선생님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라고 비웃듯 말하며 복도에 나가더니 자신과 싸웠던 아이에게도 톱을 휘둘렀다. A씨는 “아이를 제어할 수단이 없었다. 힘으로 제압하면 아동학대로 신고당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며 “우리를 보호해주는 시스템이 없다는 생각에 슬펐다”고 회상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침착한 태도로 “화가 많이 났구나”라며 공감을 해주는 것뿐이었다. 겨우 아이를 진정시켜 회의실로 데려가자 B군은 책상 유리를 손으로 내리쳐 깨뜨렸다.

 

이후 학교에서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렸고 B군에게 출석정지 30일, 심리치료 20회 처분이 내려졌다. 심리적 충격을 받은 A씨와 담임교사는 몇 주간 병가에 들어갔다가 방학이 끝나고 복직했다. 하지만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B군은 출석정지 기간에 방학이 겹쳐 11월 학교에 돌아오는데, 학급 교체가 이뤄지지 않아 피해 교사들과 마주칠 수 있기 때문이다.

 

4일까지 학교에서 뚜렷한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A씨는 “사건이 보도돼 다른 반 학부모들도 알고 있어 B군이 다른 반에 가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B군을 마주치면 무서울 것 같다. 또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특히 담임교사는 이 사건으로 받은 충격과 상처가 큰 것으로 전해졌다. 3년 차 교사인 그는 아직 상담을 받고 있다. 당시 상황을 이야기할 때면 여전히 울며 힘들어한다는 그는 사건을 떠올리는 것조차 고통스럽다며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교사라는 직업에 회의가 들진 않았을까. A씨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좋다. 학교에 한명 있을까 말까 한 아이 때문에 교사를 그만두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느꼈던 무력감을 또 느끼고 싶진 않다. 그는 “아이가 문제행동을 했을 때 현장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하다못해 벌점도 못 준다”며 “아이의 문제행동을 제어할 수단이 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교사들이 무너지고 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학교에서 웃음거리가 되는 현실이다. 교사에게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아이들은 교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교사들은 교권을 침해당해도 묵묵히 견딜 수밖에 없다. 2022년 대한민국 교실의 현주소다. 

 

◆“학생 제재 수단 없어” 무기력한 현장

 

최근 충남 홍성의 한 중학교에서 한 남학생이 수업시간에 휴대전화를 들고 교단에 누워 있는 동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져 논란이 됐다. 교사가 수업을 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학생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웃고 떠드는 상황에 많은 이가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개탄했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선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이미 수년 전부터 피부로 느끼고 있던 문제라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교사들은 무기력해 보였다. 한 중학교 교사는 “교사는 더 이상 존경받는 존재가 아니다”라며 “새 학기가 시작될 때 문제 학생이 교실에 있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교원단체들은 ‘교사의 위기는 곧 교육의 위기’라며 대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지난 8월26일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 올라온 영상. 충남 홍성의 한 중학교에서 남학생이 수업 중인 여성 교사 뒤에 누워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해당 계정에는 또 다른 남학생이 수업시간에 상의를 벗은 채 여성 교사에게 말을 거는 영상도 올라왔다. 틱톡 영상 갈무리

4일 교육부에 따르면 교육활동 침해행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대면수업이 줄었던 2020년을 제외하고 최근 5년간 매년 2000건대를 기록하고 있다.

 

실제 현장에서 느끼는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교육부 통계는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가 열린 사건만 집계한 것이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는 “학생을 교보위에 넘기는 것을 원치 않는 교사가 많고, 학교에서 그냥 넘어가라고 하기도 해 대부분 참는다”며 “실제 교권침해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각 시·도 교육청의 교권침해 피해교사 상담 건수는 1만3000건이 넘었다.

 

교보위가 열려도 뚜렷한 대책이 없는 경우도 많다. 교보위는 행위의 심각성·지속성 등을 심의해 봉사·출석정지·학급교체·전학·퇴학 등의 조처를 할 수 있다. 의무교육인 초·중학교는 전학이 제일 센 징계다. 그러나 성범죄 등을 제외하면 전학은 거의 없고, 학급교체도 학교 내 반대가 커서 ‘수원 초등학교 톱 사건’처럼 심각한 사안에도 출석정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선 학생이 교사에게 수차례 손가락 욕과 욕설을 해 이를 말리는 다른 학생과 싸움까지 벌어졌지만, 교보위 처분은 교내봉사에 그쳤다. 결국 피해교사는 휴직계를 냈다. 

경기교사노조 관계자는 “교사 충격이 커도 학급교체는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고, 아이를 분리 교육하는 것도 학습권 침해란 지적이 있어 현장에선 해결에 어려움이 있다”며 “분노조절장애 등이 있는 아이는 심리치료 처분이 내려지지만, 실제 치료로 아이가 회복이 잘 됐는지까지는 정책이 챙기지 못한다. 치료가 안 돼 악순환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학생 사이의 학교폭력은 생활기록부에 기록되는 반면 교권침해 행위는 기록이 남지 않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지난 5월 울산에서 고1 학생이 종례시간에 50대 교사를 폭행했지만, 이 경우도 학생의 잘못은 기재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별다른 제재가 없는 것이다. 

 

교사들은 현장에서 무기력함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선배(교사)들로부터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가 있어도 소송을 당할 수 있으니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교사가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안다. 모멸감을 느끼고 그만두는 교사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교사들은 아이를 꾸짖었다가 아동학대로 고소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교실을 돌아다니는 초등학생의 손목을 잡았다가 소송에 휘말리거나, 교사 말이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정서학대로 고소하는 식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지난해 지원한 소송만 90건에 달한다. 한 중학교 교사는 “문제 학생이 있는 반에 들어갈 때면 ‘제발 돌발행동을 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한다. 수업하기 무서울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경기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교직생활 한 지 30년 됐는데 예전보다 학교가 황폐해졌다. 아이를 열심히 가르치려는 교사들이 힘들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교원단체 “생활지도법 통과돼야”

 

교원단체는 법 개정을 요구한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에는 ‘교사는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고만 돼 있어 학생에 대한 ‘생활지도’가 교육활동에 포함되는지 명확하지 않다. 이 때문에 정당한 생활지도 행위를 하더라도 학대로 고소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국민의힘 이태규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교원은 교육활동을 위해 필요한 경우 법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지도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겼다.

 

교육계 관계자는 “개정안이 당연한 문구 같지만 현재 현장에선 그 당연한 일도 불가능한 상태”라며 “교육현장은 거의 붕괴 직전”이라고 말했다. 개정안에는 교보위 처분의 학생부 기록, 교권침해 학생과 피해교원 분리 조치 등도 담겼다. 현재는 교권침해 행위를 저질러도 학생을 교실 밖으로 내보낼 근거도 없다. 

경기교사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문제행동이 발생하면 즉각 분리해 수업을 받게 하거나 심할 경우 학부모를 ‘방임’으로 고발까지 할 수 있는 미국 공립학교처럼 교사들이 강력하게 문제행동을 지도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총 역시 “현재 수업 방해, 욕설을 즉시 제지할 수 없어 다른 학생의 학습권이 침해되고 교사 인권이 무너지고 있다”며 “교사의 생활지도권 회복과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소송을 방지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