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거주하는 최모(37)씨는 태풍 ‘힌남노’(HINNAMNOR) 상륙 소식을 듣고 일찍부터 집안의 모든 유리창에 테이프를 붙였다. 2003년 태풍 매미 상륙 당시 아파트 유리창이 깨지며 다쳤던 기억이 있어서다. 그는 “태풍 매미 때 남동생과 둘이 집 안에 있었는데 유리창이 와장창 부서지면서 둘다 다리를 베였다”면서 “이번 태풍은 그 때보다도 강하다고 하니 벌써부터 불안하다”고 말했다.
미니 태풍을 흡수해 몸집을 불린 제 6호 태풍 힌남노가 무서운 기세로 접근하고 있다. 이날 오전 10시 기준 힌남노는 서귀포 남남서쪽 약 390㎞ 해상에서 시속 23㎞로 북진 중이다. 태풍이 6일 이른 새벽 제주도, 아침 경남권해안을 지날 것으로 예보된 가운데 제주와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전국이 비상 상황에 돌입했다.
◆사람·바위 날아가고 건물 무너질 수도
힌남노의 영향으로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바람이 최대 순간 풍속 초속 20∼40m로 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제주도와 전남 남해안, 경남권 해안에는 초속 40∼60m의 강풍이 불어닥칠 전망이다.
기상청은 태풍의 강도를 약, 중, 강, 매우강, 초강력 다섯단계로 구분한다. 바람의 세기가 초속 33m 이상∼44m 미만이면 ‘강’인데 이정도만 되어도 기차가 탈선하며 허술한 집은 붕괴될 수 있다. 초속 44m 이상 54m 미만인 ‘매우강’은 사람과 바위를 날려버릴 수 있으며, 초속 54m 이상 초강력은 콘크리트 건물을 무너뜨릴 수 있는 위력을 가진다.
지난 2003년 9월 태풍 매미는 이틀 가까이 ‘초강력’ 단계를 유지하며 제주, 부산, 경남지역을 할퀴고 지나갔다. 당시 대형 크레인이 무너지고 7000t이 넘는 해상관광호텔이 전복됐으며 130여명의 인명 피해, 4조원 이상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현재 북상 중인 힌남노는 매미의 위력을 능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어느 때보다 철저한 대비가 요구된다.
한국보다 먼저 힌남노의 영향권에 든 일본 오키나와에서는 강풍에 60∼80대 노인들이 넘어져 부상을 입고 가로수가 쓰러졌다. 비닐하우스가 무너졌으며, 간판이 뜯겨 나가고, 건물 외벽 자재가 날아가면서 주차된 차가 파손된 일도 발생했다.
◆태풍 시 ‘실내’ 안전수칙도 확인해야
태풍 특보가 발효되면 강풍에 날아가거나 날아온 물건에 충돌할 위험이 있으므로 외출을 자제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실내라고 무조건 안전한 것은 아니다.
특히 위험한 것은 유리창 파손이다. 강력한 태풍이 지날 때는 창호시공이 비교적 잘된 아파트에서도 유리창이 깨질 수 있으며, 오래되어 창틀 사이가 벌어지거나 유리와 창틀간 틈이 있는 경우에는 더욱 위험이 높다. 창틀 사이에 우유갑이나 수건을 끼워 흔들리는 것을 방치하면 유리 파손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창문 틈에 바람이 들어와도 돌풍에 깨지기 쉬우므로 창문 가장자리에 테이프를 붙여 유리창과 창틀을 고정해야 한다. X자로 테이프를 붙이는 것은 유리창 파손을 막는 효과는 없지만 유리창이 깨졌을 때 파편이 튀는 것은 줄일 수 있다.
이미 태풍 특보가 발효된 상황이라면 건물 출입문과 창문을 닫고, 창문이나 유리문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가급적 욕실과 같이 창문이 없는 방이나 집안의 제일 안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좋다.
주택에서는 가스 누출로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차단하고, 감전 위험이 있는 집 안팎의 전기시설을 만지지 말아야 한다. 정전이 발생하면 양초 대신 손전등이나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자전거, 화분 등 강풍에 날아갈 수 있는 물건은 집 안으로 들여놓고, 지붕, 간판, 천막 등은 미리 단단히 고정해야 한다. 폭우에 하수구가 역류하지 않도록 가정 하수구나 집 주변 배수구를 미리 점검하고 막힌 곳은 뚫어 놓는 것도 중요하다.
폭우에 대비해 저지대에 주차된 차량은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며, 침수가 예상되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이나 건물은 모래주머니, 물막이 판 등을 이용해 예방해야 한다.
기상청은 “태풍 특보 발효시에는 미디어를 통해 본인이 있는 지역의 기상상황을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가족, 지인과 연락해 안전을 확인해야 한다”며 “건물, 집안 등 실내 안전수칙을 미리 알아두고 대비하라”고 당부했다.
◆제주 피해 속출…부산 6일 오전 태풍 상륙
제주는 이미 힌남노의 직접 영향권에 들면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전날 오전 11시부터 이날까지 소방안전본부에는 주택 침수, 도로 침수와 차량 고립, 하수구 막힘 등 기상 상황 관련 50여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갑자기 쏟아진 비에 목장에 고립된 소가 구조되기도 했으며, 제주시 한경면의 한 주택 담벼락이 쓰러져 안전 조치가 이뤄지기도 했다.
힌남노가 제주에 가장 근접하는 시기는 6일 이른 새벽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제주에는 오는 6일까지 100∼300㎜, 많은 곳은 400㎜ 이상, 산지는 600㎜ 이상의 많은 비가 내릴 전망이다.
또한 최대 순간풍속 초속 40∼60m의 매우 강한 바람이 불고, 바다에는 물결이 3∼12m 높이로 매우 높게 일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은 이날 낮 12시 이후부터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태풍의 간접 영향에 들 것으로 예상된다. 오후 6시부터 자정 사이에는 태풍 강풍 반경에 들어가기 시작해 내일 오후 태풍 반경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태풍은 6일 오전 6시 부산 서남서쪽 90㎞ 해상을 통과해 상륙할 것으로 예보했다. 상륙 시 태풍 강도는 ‘강’으로 예상된다. 5∼6일 사이 부산에는 100∼300㎜ 비가 내리고 400㎜ 이상 쏟아지는 곳도 있을 전망이다. 해안가를 중심으로 순간 최대 초속 40∼60m의 강풍도 예상되며, 파도도 3∼12m로 매우 높게 일 것으로 예상된다. 만조시간이 겹치는 6일 오전 4시 31분 전후로는 저지대를 중심으로 침수 가능성도 있다.
부산항은 태풍에 대비해 이날 0시부터 운영이 중단됐다. 부산 김해공항에서 제주와 서울 김포를 오가는 비행기는 이날 오후부터 미리 86편이 미리 결항 조처됐다. 부산 도착 예정인 국제선 항공기는 인천공항에서 내리게 하는 조치도 검토되고 있다.
주민 대피 조치도 선제적으로 내려졌다. 동구와 남구는 저지대 침수 우려 지역, 경사면·옹벽 등 붕괴 위험지역에 사는 145가구 198명에게 대피 명령을 내렸다. 이들은 인근 모텔이나 마을회관, 학교 등에서 머물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대구 마린시티, 미포, 청사포, 구덕포 상가 99곳과 사하구 33가구 주민 33명에게도 지자체가 대피를 권고했다. 부산시는 이날 오전 9시 기준으로 비상 최고단계인 ‘3단계’를 발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