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성큼 다가온 듯하던 지난달 24일, 손바닥만 한 그늘도 찾을 수 없던 서해는 하늘에서 곧장 내리쬐는 햇볕이 닿는 곳마다 달궈져 있었다. 정수리로 내리꽂는 햇볕과 쉼없이 나부끼는 바닷바람을 뚫고 전북 부안 격포항에서 약 30분간 바다로 나가면 새하얀 거대 바람개비 단지가 나타난다. 격포항에서 19㎞, 육지 끝에서는 10㎞ 떨어진 곳에서 바람으로만 최대 60㎿ 전기를 생산하는 서남해 해상풍력 실증단지다.
서남해 해상풍력 실증단지는 2020년부터 운영이 시작됐다. 풍력발전기 20기가 모여 바람이 초속 3m 이상 불면 전기를 만들기 시작해 초속 10m부터는 최대 발전량인 3㎿를 각각 꾸준히 생산한다. 발전기 하나당 연간 전용용량은 대략 7.7GWh(평균 풍속 초속 6.5m로 계산)로, 단지 전체로 보면 연간 155GWh의 전기를 만들 수 있다. 인근 부안과 고창 지역 총 전기 사용량의 14.7%를 충당할 수 있는 양인데 4인가구 기준 약 2500가구 사용량에 맞먹는다.
◆풍력발전 인허가 관련법 처리에만 하세월
태양광에 비해 한번에 대규모 단지 건설이 용이한 풍력발전은 유럽과 중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 중이다. 세계풍력에너지위원회(GWEC)에 따르면 전 세계 풍력발전 시장은 연평균 14%, 해상풍력만 따지면 연평균 20% 이상 성장하고 있다.
2012년 설립된 한국해상풍력은 서남해 해상풍력단지 건설 계획 수립부터 운영까지 맡고 있다. 2020년 1월 종합준공까지 단지 건설에 2017년 5월부터 약 2년반이 걸렸다. 한국해상풍력이 발전사업 자격을 취득한 때는 2013년 7월이다. 그럼 이 사이 대략 4년의 시간 동안 착공을 위해 무슨 과정이 필요했을까.
서남해 해상풍력 실증단지 추진 과정을 지켜본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 사업은 ‘온 가족의 지원을 받는 못사는 집 맏형’ 같았다. 2011년 ‘서남해 2.5GW 해상풍력 종합추진계획’을 발표한 정부는 이곳을 개발 부지로 정해두고 당시 지식경제부(현재 산업통상자원부)의 연구개발(R&D) 지원, 전라남·북도의 공유수면 점사용 허가 및 계통연결 관련 인허가, 국내 여러 기업의 부품 공급 등 해상풍력발전을 위한 역량 총집합체였다. 이 계획을 설명한 보도자료에는 김정관 지식경제부 차관이 “서남해 해상풍력사업의 성공을 위해 민관 모두의 협력이 필요하며 정부도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나와 있다.
그럼에도 투입된 시간이 4년이다. 서남해 해상풍력 실증단지는 첫 국가 주도 해상풍력 개발계획이었다. 입지는 정해져 있었어도 주민 수용성을 확보하고 지자체에서 공유수면 점사용 허가를 받거나 환경모니터링을 진행하는 체계 모두 전무했기 때문이다.
맏형으로 태어나지 못한 보통의 풍력발전사업은 첫 시작이 풍황 계측이다. 풍력자원이 얼마나 풍부한지 계산해보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 해당 지자체에 풍황 계측용 공유수면 점사용 허가를 받아야 한다. 풍력발전을 위한 최초의 인허가 사항이다. 이후 본격적으로 사업허가를 받으면서 전기사업을 추진하는데 이 과정에서 주민 수용성 문제 등 무수한 민원이 발생하게 된다. 개별 발전사업자가 입지를 발굴하는 것부터 해당 지역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고 환경영향평가 통과까지 도맡아야 하는 것이다. 최덕환 한국풍력산업협회 대외협력팀장은 “최근 인허가에 걸리는 기간을 대략적으로 조사해보면 최소 68개월”이라며 “풍력발전 초반 사업은 인허가에 10년 정도 걸렸다”고 전했다.
◆인허가 책임 한 기관에 집중시키는 ‘원스톱샵’
현재 풍력발전은 착공까지 관련부처만 환경부, 산업부, 해양수산부 등 10곳이고 처리해야 하는 인허가 관련 법안은 29개다. 국회에서는 지난해 5월 ‘풍력발전 보급촉진 특별법안’(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 대표발의)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 덴마크에서 시행하고 있는 법명을 따 일명 ‘원스톱샵’으로 불린다. 한 기관에서 모두 처리한다는 의미다. 사업자가 29개 법안을 일일이 거치는 데 평균 6년 정도 걸리는데 기후솔루션 등 기후·환경단체들은 특별법 통과 후 하위법령이 잘 정착되면 이 기간이 반으로 단축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이 특별법의 핵심은 풍력발전시설 설치와 조성에 필요한 행정절차를 한 기관에 통합해 인허가 권한과 책임을 일임한다는 것이다. 현재 법안대로는 입지 고려지구를 지정하고 발전지구를 승인하는 과정을 국무총리 소속 풍력발전위원회에 맡긴다고 돼 있다. 현재 개별 사업자가 맨땅에서 입지를 정하기 위해 풍력자원부터 계측하는 것과 달리, 정부 차원에서 입지정보망을 확보해 입지 요건을 갖추고 주민수용성을 높일 수 있는 곳에 우선 설계를 추진하는 ‘계획입지’를 진행하는 것이다.
사업자 개인이 일일이 처리해야 하는 인허가 관련 업무와 기관 곳곳에 분산된 인허가 권한을 ‘입지를 발굴해 고려지구를 지정하고 민간협의회를 구성해 주민 동의까지 구하는 과정’을 한 기관이 도맡는 구조다.
서남해 해상풍력 실증단지 개발 과정을 잘 아는 강금석 한전 전력연구원 재생에너지연구실장은 “우리가 풍력으로 5년 안, 10년 안에 몇 GW를 발전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위한 구체적 시간계획이 나와야 사업자는 이를 믿고 발전사업을 추진하고 기업들은 터빈, 구조물 등을 기한에 맞춰 생산할 수 있다”며 “실제로 이런 실행력을 가진 기관이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하고 정책 신뢰성을 높여 사업자 입장에서는 예측가능성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허가에만 수 년을 들여야 하는 제도적 불확실성과 비효율은 풍력발전 사업자 입장에서 비용 증가로 직결된다. 최 팀장은 “사업에서 제도적 불확실성은 비용증가로 이어지고 결국 국민에게 전기요금 부담으로 전가된다”고 지적했다. 강 실장은 “원스톱샵이 도입돼 계획입지가 정상적으로 가동된다면 개별 사업자 입장에서는 사업을 분양만 받으면 되니까 사업비용이 크게 떨어지게 된다”며 “에너지 가격 측면에서도 이 법을 적용해야만 떨어뜨릴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