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물가·환율 폭주에 반도체도 주춤… 한국경제 '비상등'

상품수지도 10년3개월 만에 적자
제조업 중심 경기 하방 압력 확대
원·달러 환율 1384원까지 치솟아
한국 경제 4분기 더 큰 위기 우려

초유의 킹달러에 유로·위안화 약세
달러인덱스 20년 만에 110선 넘어서
亞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가치 변동률
日엔화 이어 韓원화 두번째로 하락
추경호 “필요할 경우 시장 안정조치”

대외 수요 둔화… 수출가 2021년比 19% ↓
7월 가동률은 하락, 재고율은 대폭 상승
전문가 97% “2023년에도 위기 지속될 것”

대중 수출 줄고 원자재 수입 증가 영향
7월 흑자폭 66억弗↓… 8월 적자 가능성

원·달러 환율이 1384원까지 치솟으며 원화가치가 속절없이 하락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13년여 만에 맞닥뜨린 이례적인 고환율은 글로벌 에너지 수급 불안과 겹쳐 물가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원화 가치 하락이 수출에 도움이 된다는 공식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다른 나라 통화도 약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중간재 수입 비중이 높은 우리 경제 특성상 원가 부담을 키워 기업 경영 상태만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12.5원 급등한 1384.2원에 마감됐다. 이는 2009년 3월30일(1391.5원) 이후 13년5개월 만의 최고치다. 환율은 이날 개장과 함께 지속 상승하며 장중 한때 1388.4원까지 치솟아 연고점을 다시 경신했다. 장중 기준 6거래일 연속 연고점 경신이다. 코스피는 1% 넘게 하락하며 2376.46에 마감했다.

 

물가 전망도 심상치 않다. 한국은행은 이날 ‘고인플레이션 지속가능성 점검’ 보고서를 통해 “주요 물가 리스크를 점검해 본 결과, 원자재 가격 반등 가능성과 수요 측 물가 압력 지속 등으로 높은 물가 오름세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향후 5∼6%대의 높은 물가 오름세가 6개월 이상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7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 종가보다 12.5원 오른 달러당 1384.2원에 거래를 마쳤다. 연합뉴스

“하반기 수출이 양호할 것”이란 정부 전망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수출을 견인했던 반도체 산업마저 글로벌 경기 침체로 하강 국면에 접어들면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수출 증가세 둔화는 경상수지 흑자 기조마저 위협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7월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10억9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지만, 전년 동월 대비 흑자폭이 66억2000만달러 축소됐다. 이는 2011년 5월(-79억달러) 이후 11년2개월 만에 최대 감소폭이다. 경상수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7월 상품수지는 전년 동월 대비 67억3000만달러 감소하며 11억8000만달러 적자로 전환했다. 상품수지가 적자를 보인 것은 2012년 4월(-3억3000만달러) 이후 10년3개월 만이다. 8월부터 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와 경상수지가 동시에 적자를 나타내는 ‘쌍둥이 적자’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셈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가장 큰 문제는 우리나라 통화 가치 하락에도 수출이 크게 증진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면서 “통화 가치 하락에 대한 안정책이 필요하고, 정부는 해외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들의 비용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율 일주일 만에 46.6원 폭등… ‘1弗=1400원’ 초읽기

 

원·달러 환율이 일주일 만에 50원 가까이 폭등하며 1400원에 바짝 다가섰다. ‘1차 저지선’이었던 1300원이 깨진 지 두 달 만이다. 1997년 자율변동환율제 도입 이후 단 2차례(IMF 외환위기·글로벌 금융위기)밖에 없었던 ‘1달러=1400원’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이 시장에 팽배하다. ‘킹달러’와 유로화·위안화 약세가 겹친 데다 한국은 중국과 달리 변동환율제를 택하고 있어 원화가치 급락세가 더 가파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7일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외환시장 쏠림을 당국이 예의주시하며 필요한 경우 적절한 시장 안정조치를 하겠다”고 했고, 한국은행도 이날 이승헌 부총재 주재로 긴급 시장 상황 점검 회의를 열고 시장 안정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구두개입에 나섰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오후 서울 양천구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개장 직후 계속 상승하며 1380원대에서 움직였다. 마감 환율 1384.2원은 일주일 전인 8월31일 종가(1337.6원)에 비하면 46.6원 올랐다.

 

상승속도는 점차 가팔라지고 있다. 환율은 최근 6거래일 연속 장중 연고점을 경신했는데 이날에는 장중기준 1388.4원을 기록하며 1390원대 진입을 목전에 뒀다.

 

당초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시장은 1400원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었다. 하지만 연일 가파른 상승속도가 시장의 예상을 깨뜨렸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이날 통화에서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환율 상단을 1400원까지 열어놔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1400원을 넘어 1450원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한다.

유례없는 달러 초강세가 원화 가치 하락의 주요 원인이다. 주요 6개국 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20년 만에 110선을 넘어섰다. 추 부총리는 “최근 환율 수준은 나 홀로 달러 강세인 상황”이라며 “주요국 통화가 동반으로 약세를 보이고 있고 원화도 같은 패턴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중국 인민은행은 이날 위안화·달러 환율을 0.09% 절하, 달러당 6.9096위안에 고시했다.

 

그렇더라도 원화 가치 하락은 두드러진다. 올해 8월 말까지 아시아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가치 변동률에서 한국 원화(-13.7%)는 일본 엔화(-20.6%)에 이어 두번째로 통화가치가 하락했다. 일본 중앙은행이 금리인하 정책을 고수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사실상 원화가치가 더 하락한 셈이다. 김 연구원은 “위안화는 고시환율 제도인 데다 개방도가 한국에 비해 덜해 위안화 약세 압력이 한국 원화까지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며 “원화가 위안화의 프록시 통화(대체 통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추가적 약세 압력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8월 말 기준 위안화의 달러가치 대비 변동률은 -3.9%다. 오창섭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통화에서 “금융시장 상관관계를 보면 한국은 신흥국과 같이 움직이는데 지금은 신흥국과 비교해도 한국의 하락폭이 크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는 “최근 유가와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인한 수입액이 급증하는 영향으로 무역수지와 상품수지가 좋지 않다”며 “그것이 경상수지 흑자 폭을 키우는 데 제약을 가하고 있기에 경상수지 흐름, 국내외 자금 흐름, 외환 흐름에 관해 면밀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라인. 삼성전자 제공

◆‘믿는 도끼’ 반도체 산업도…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인 반도체 산업마저 경기하강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7일 발간한 ‘9월 경제동향’에서 최근 반도체 산업의 경기하강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지표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KDI에 따르면, 지난 7월 반도체 생산(계절조정 기준)은 전월 대비 3.4% 감소했다. 7월 반도체 산업 가동률은 지난 4월 고점(139.4) 대비 14.3% 하락한 119.5에 그쳤으며, 재고율(출하 대비 재고 비율)은 전월의 63.0%에서 95.7%로 대폭 상승했다.

 

KDI는 “반도체 수출 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18.5% 하락하면서 반도체 수요가 빠르게 둔화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며 “반도체 산업의 경기하강은 향후 우리 경제의 성장세에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KDI는 “반도체는 2021년 29% 수출액이 증가하며 수출을 주도했다. 당시 총수출금액의 19.9%를 반도체가 차지했다”며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침체가 극심했던 2020년에는 총수출이 5.5% 감소하는 중에도 반도체 수출이 5.6% 증가하면서 경기 위축을 완화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이 내놓은 향후 국내 반도체 산업 전망도 우울하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반도체 전문가 30인을 대상으로 국내 반도체 산업 경기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전문가 대부분(96.7%)이 현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응답자의 76.7%(위기상황 초입 56.7%, 위기 한복판 20%)는 반도체 산업이 처한 상황을 ‘위기’ 단계로 진단했다. ‘위기상황 직전’이라는 응답도 20%였다.

 

전문가의 96.6%는 내년에도 위기가 지속될 것이라 봤다. ‘위기가 아니다’(3.3%)라는 응답을 제외하고, 현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는지 물은 결과다. 특히 위기가 ‘내후년 이후에도 지속될 것’(58.6%)이라고 우려하는 전문가가 많았다.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 가장 시급한 정책과제로는 ‘칩4 대응 등 정부의 원활한 외교적 노력’(43.3%)을 꼽았다.

 

이 같은 위기는 코로나19 특수 이후 찾아온 동시다발적 악재로 불확실성이 가중된 점이 영향을 미쳤다. 대규모 투자를 하던 반도체 기업들은 경기침체와 함께 수요 절벽에 부딪힌 상태다. 중국의 기술 추격, 미·중 기술패권 경쟁 심화 등도 업황을 악화시킨 요인이다.

지난 2일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에서 컨테이너 선적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뉴스1

◆경상수지마저… 2022년 흑자 전망치 달성 ‘빨간불’

 

7월 경상수지가 10억9000만달러로 간신히 흑자를 기록했지만, 8월 적자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달 무역수지가 사상 최대 적자를 낸 데다 7월 상품수지도 10년3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올해 경상수지 흑자 전망치 달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은행이 7일 발표한 ‘2022년 7월 국제수지(잠정)’에 따르면 올해 1∼7월 누적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258억7000만달러다. 한은은 앞서 올해 경상수지 전망치를 500억달러에서 370억달러로 대폭 줄였는데, 이를 달성하려면 8∼12월 누적 경상수지 흑자가 적어도 111억3000만달러를 넘어야 한다.

 

문제는 경상수지 흑자 폭이 갈수록 줄고 있는 가운데 경상수지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품수지마저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8월 적자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8월 무역수지 적자는 94억7000만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기 때문에 8월 상품수지도 두 달 연속 적자 가능성이 크다. 상품수지와 무역수지는 모두 상품의 수출입 거래를 나타내지만, 집계 방식이 달라 액수는 차이가 난다. 통상 상품수지가 무역수지보다 흑자 규모가 더 크다.

김영환 한은 경제통계국 금융통계부장은 8월 경상수지 전망에 대해 “8월 무역수지가 이례적으로 큰 폭의 적자를 보이면서 상품수지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본원소득수지나 서비스수지도 봐야겠지만 상품수지가 적자를 이어갈 경우 경상수지도 적자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상품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것은 원자재 가격 상승과 중국 경기 부진으로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7월 수출(590억5000만달러)은 석유제품 등을 중심으로 6.9%(37억9000만달러) 늘었지만, 수입(602억3000만달러) 증가폭이 21.2%(105억2000만달러)로 수출의 약 세 배에 달했다. 또 중국 수출은 2개월 연속 감소했다.

 

7월 서비스수지는 운송수지 호조 등으로 지난해 7월 2억8000만달러 적자에서 3억4000만달러 흑자로 전환했다. 본원소득수지는 22억7000만달러 흑자였지만, 1년 전보다 흑자 폭이 5억8000만달러 줄었다.


세종=이희경 기자, 김준영·이도형·이강진·곽은산·유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