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막후정치의 실세가 될 것인가, 언론인으로 컴백할 것인가.
리즈 트러스가 신임 영국 총리에 오르면서 1139일 만에 총리직에서 내려온 보리스 존슨은 어떤 길을 걸을까. 현지 언론은 그가 앞으로도 ‘이슈메이커’의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했다.
영국 경제신문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6일(현지시간) 퇴임한 존슨 전 총리에 대해 “무명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며 그가 보수당 평의원으로 영국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언론사로 돌아가 막대한 수익을 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존슨 전 총리에게 유력한 첫 번째 행보는 영국 정치권에서 계속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총리직을 다시 노리는 시나리오다. FT는 영국의 71·72대 총리인 마거릿 대처와 존 메이저 간의 관계를 언급하면서 존슨 전 총리가 트러스 내각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대처 전 총리는 후임자인 메이저 내각의 정책에 대해 끊임없이 개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상왕 정치’에 메이저 당시 총리는 대처 전 총리를 두고 “참을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두 사람이 동석마저도 거부할 정도로 서로를 싫어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트러스 총리의 측근은 FT에 “(존슨 전 총리의) ‘뒷좌석 운전’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모두 보리스 시대에서 떠나야 하며, 적어도 (트러스 총리 측은)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언론사로 들어가 막대한 수입을 벌어들이는 것도 존슨 전 총리에게 유력한 시나리오다. 존슨 총리는 정계 진출에 앞서 데일리텔레그래프 등에서 기자 활동을 했다. 정계 거물이 된 이후에는 데일리텔레그래프에 일주일에 한 번 칼럼을 기고하는 것만으로 한해 27만5000파운드(약 4억3000만원)를 벌어들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BBC에 회고록을 쓰는 조건으로 출판사가 존슨 전 총리에게 100만파운드(약 15억7000만원)가 넘는 금액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FT는 “존슨 전 총리는 측근들에게 ‘데일리텔레그래프와 데일리메일이 자신을 두고 영입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며 “그가 칼럼니스트가 아닌, 언론사 편집장으로 언론계 전면에 나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존슨 전 총리는 20여년 전 우파 성향 정치잡지인 스펙테이터의 편집장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존슨 전 총리가 물러나면서 한 발언으로 미뤄봤을 때, 그가 정치적 야망을 완전히 놓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임사에서 “신시나투스처럼 다시 쟁기를 들고 새 정부를 열렬히 지지하겠다”고 말했다.
신시나투스는 로마가 위기 상황일 때 잠시 권력을 잡았다가 사태가 진정된 뒤 스스로 권좌에서 물러나 다시 자신의 농장으로 돌아간 인물이다. 이후 로마가 이민족의 침략으로 위기에 빠지자 시민들은 신시나투스의 통치를 요구했고, 다시 돌아온 그는 이민족을 격퇴한 뒤 다시 권력을 포기했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 신시나투스를 언급한 것이 고도의 정치적 수사라는 해석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쟁기를 든 신시나투스’는 봉사정신과 겸손함을 지닌 정치인의 상징으로 여겨지진다. 그러나 신시나투스의 행보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존슨 전 총리가 총리직에 재도전할 의사도 내비친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FT는 “일부 역사학자들은 신시나투스가 나중에 다시 권력자로 돌아왔다고 여긴다”며 “고전학을 전공한 존슨 전 총리가 이를 모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