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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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지 않은 이들이 당직, 분위기에 자청했다”…성인 37% "고향 방문 계획 없다"

거리두기 해제 후 처음 맞는 추석… "고향에 안 가요", 왜?

방문 않는 이유에 "직장·알바 등 쉴 수 없어" 가장 많아
‘취업 준비’, ‘비대면 명절 익숙’, ‘잔소리 피하고자’ 뒤이어

서울에 사는 취업준비생 임모(27)씨는 이번 추석에 고향인 대구에 내려가지 않는다. 낮에는 대형마트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평소 하던대로 취업준비를 위한 공부를 할 계획이다. 임씨는 “취업 준비가 예상보다 길어져서 부모님을 뵐 면목도 없고, 친척들이 ‘아직 취업 안 하고 뭐하니?’ 등의 충고도 듣기 싫어서 고향에 내려가지 않기로 했다”면서 “부모님께서 평소에 생활비를 보내주시는데, 그것도 받기가 죄송한 마음이다. 추석 땐 일당을 더 쳐주는 아르바이트가 꽤 있어서 지인 소개로 대형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추석엔 혼자 타지에서 외롭게 보내겠지만, 내년 설에는 취업에 성공한 뒤 당당히 본가에 내려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추석은 오랜 기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규제의 일환으로 오랜 기간 유지됐던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이후 처음 맞는 명절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고강도로 시행될 땐 “명절에 고향방문 자제”를 지역자치단체에서도 권하는 등의 진풍경이 빚어졌지만, 이번 추석엔 많은 이들이 가족과 함께 하는 명절을 보낼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이번 추석에도 고향집을 찾지 않고 타향에서 명절을 보낼 이들도 꽤 있어 눈길을 끈다.

9일 서울 서초구 잠원IC 인근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오른쪽)이 정체를 빚고 있다. 뉴시스

최근 구익구직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성인남녀 1580명을 대상으로 ‘추석 귀향 여부’를 조사한 결과 58.4%가 고향을 방문할 것이라 답했다. 명절 고향 방문의 가장 큰 이유(복수 응답 가능)로는 ‘부모님, 직계가족 등을 만나기 위함(42.1%)’으로 나타났고 ‘집에서만 연휴를 보낼 예정이라서(31.0%)’가 뒤를 이었다. 뒤이어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돼서’(27.4%), ‘본인·가족이 백신 접종을 마쳤기 때문에 안심돼서’(26.1%), ‘코로나19 확산 이후 가족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서’(24.9%), ‘본인·가족이 코로나 완치 판정을 받아 안심돼서’(17.0%), ‘더 이상 방문을 미루기 어려워서’(13.5%) 등이 잇따랐다.

 

과거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보단 낮아지긴 했지만, 고향 방문 계획이 없다고 성인남녀도 37%에 달했다. 이들은 방문하지 않는 이유(복수응답 가능)로 ‘직장·아르바이트 등으로 연휴에 쉴 수 없기 때문(30.4%)’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취업 준비·시험공부 등 자기개발에 집중하기 위해’(24.1%), ‘비대면 명절 문화가 익숙해져서’(23.4%), ‘명절 잔소리·스트레스를 피하고자’(22.6%) 등이 뒤를 이었다.

 

회사원 조모(33)씨는 이번 추석에 이틀간의 당직 근무를 자청하면서 고향 방문을 하지 않기로 했다. 조씨는 “이번 추석 연휴가 그리 길지도 않은데다 회사에서 아직 결혼하지 않은 이들이 당직을 서는 것을 은근히 종용하는 분위기이기도 해서 자청했다”면서 “본가가 광주인데, 추석 이후 주말에 방문하는 방식으로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뵐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37)씨도 고향인 부산 방문을 포기했다. 김씨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보니 명절에 고향에 가면 부모님과 친척 어른들의 결혼과 관련된 잔소리를 듣게 된다. 30대 초반만 해도 웃으면서 넘겼지만, 이제는 거슬리더라. 그래서 식당문을 열어야한다는 핑계로 가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덕에 식당은 추석 당일에도 열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코로나19에 대한 경계심이 예전보단 덜해졌지만, 여전히 코로나19에 대한 걱정으로 고향 방문을 주저하게 됐다는 이들도 있었다. 회사원 염모(30)씨는 “부모님도 그렇고 나 역시 아직 코로나19에 걸린 적이 없다보니 이번에 모였다가 괜히 코로나19에 걸리면 어쩌나 해서 이번 추석도 ‘비대면’으로 치르기로 했다. 집에서 밀린 잠도 자고, 평소에 보고싶었던 영화나 책을 보면서 지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