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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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60주년 신구 “‘방탄노년단’이라니 고마워…연극은 생명 그 자체”

“(데뷔한 지) 60년이라고 하는데, 지나고 보니까 어제 같고 새로 시작하는 것 같아요. ‘방탄소년단’ 반열에 끼여 고맙긴 합니다만, (원로 배우들이 방탄소년단처럼) 의도적으로 모여 작업한 게 아니라 각자 자기 생활하면서 성실하게 살아온 결과가 그렇게 나타난 것이죠. 그리(‘방탄노년단’이라) 불러주면 고맙죠. 하하하.”

지난달 30일 개막한 연극 ‘두 교황’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 역을 맡은 신구가 교황 프란치스코 역을 맡은 정동환과 지난 8일 기자간담회를 하면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에이콤 제공

1962년 연극 ‘소’로 데뷔한 신구(86)는 올해 연기 인생 60주년을 맞은 소감과 여전히 연극무대에 서며 많은 관객을 끌어 모으는 원로 배우들을 세계적 K팝 그룹 ‘방탄소년단’(BTS)에 빗대 ‘방탄노년단’이라고 하는 데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하며 웃었다. 지난 8일 연극 ‘두 교황’ 공연장인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다. 방탄노년단은 신구를 비롯해 이순재(87), 박정자(80), 오영수(78) 등 데뷔한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여전히 무대에 올라 활약하는 원로 배우들을 지칭한다. 

 

신구는 올 초 연극 ‘라스트 세션’에 이어 지난달 30일 개막한 연극 ‘두 교황’에 출연하고 있다. 영국의 세계적 극작가 앤서니 매카튼이 쓴 연극 ‘두 교황’은 2013년 바티칸 역사상 598년 만에 자진 퇴위로 세계를 뒤흔든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그 뒤를 이은 교황 프란치스코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2019년 영국에서 연극이 초연됐고, 이후 영화로 제작돼 넷플릭스에 공개되며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호평을 받았다.

 

지난 3월 ‘라스트 세션’ 공연 중 건강 문제로 입원하기도 했던 신구는 “건강을 잘 유지해왔다고 생각하고 병원을 찾지 않고 살아왔는데, 80(살) 넘어 그런 일이 생기니 놀랐다”며 “지난번에 생각지도 않았던 심부전 증상으로 입원했고, 의사가 처방한 대로 약을 잘 먹고 있지만 (건강이) 아무래도 예전 같진 않다”고 말했다. 그는 “나이도 있으니 (몸이) 삐걱거린다”고 하면서도 “어떡하겠나. (연극 ‘두 교황’은) 내가 좋아하고 해야겠다고 생각하니까 끝까지 책임지고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신구는 이번 공연에서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방향을 고수하지만 수준급 피아노 실력에 따뜻한 성품을 가진 교황 베네딕토 16세 역을 맡았다. 2인극에 가까운 방대한 대사량을 소화하며 열연을 펼치고 있다.

 

신구는 베네딕토 16세 역 제안을 받았을 때 부담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왜 부담이 없었겠나. 새 작품을 맡을 때마다 쉬운 적이 없었고 이 작품도 마찬가지”라며 “‘라스트 세션’이나 ‘두 교황’ 모두 욕심이 나서 선뜻 동의했는데 막상 대본을 보니까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고민을 많이 했다. 반갑지만 두려운 마음으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연극을 이끌어가는 특별한 재주가 있는 건 아니다. 극본과 연습에 충실하면 자연히 발현되리라 생각한다”며 “연습으로 하나하나 해결해나가야 한다. 아직 부족하고 틈도 많은데 공연이 끝날 때까지 열심히 채워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신구는 지난달 30일 개막 전까지 폭염이 이어지는 날씨에도 거의 매일 연습장에 나와 집중력과 에너지를 보여줬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신구의 대본엔 빼곡한 메모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베네딕토 16세와 정반대 성격과 가치관을 가진 프란치스코 교황 역을 맡아 신구와 호흡을 맞춘 정동환(73)도 옆에서 “신구 선생님이 처음에 한 말이 어록으로 남았다. ‘연극은 연습이야’라는 말이었다”며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알기 때문에 생각할 때마다 울컥한다. 바로 그런 게 선생님의 인생을 여기까지 오게 만든 힘이 아닌가 싶다. 하루하루 남다른 존경을 느낀다”고 거들었다. 

 

정동환은 “(이 연극은 주인공들이) 자기 나이에 맞는 배역을 하기 때문에 너무나 자연스러운 게 큰 이점”이라며 “저는 작품이 구구절절 마음에 들었다. 신구(新舊)의 화합이라고 할까. 이 작품은 종교극이 아니다. 우리 인간의 보편적인 이야기를 진솔하게 한다. 두 교황은 성격 등 차이가 크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갈등을 해소하고 다름을 인정한다. 이 연극을 봐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신구는 건강이 예전 같지 않지만 이 작품을 마지막 무대로 말하고 싶진 않다고 했다. 그는 “사실 연극을 하며 자연스럽게 한계도 느낀다. 이런 대작을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고 새삼 느꼈다”며 “하지만 꼭 마지막 작품이라고 내세우고 싶진 않다. 기회가 있고 건강이 따른다면 계속 참여할 생각이 있다”고 연극에 대한 애정을 내비쳤다. 

 

그에게 연극이란 어떤 의미일까. “연극을 하는 사람 모두가 그럴 거예요. 연극은 일종의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죠. 음식처럼 좋아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 생명과도 같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