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역사상 최장기 군주인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96세를 일기로 서거하면서 한 시대를 마감했다. 그를 거쳐 간 영국 총리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윈스턴 처칠부터 지난 6일 임명된 리즈 트러스까지 총 15명에 달한다.
◆영국 역사의 산증인… “능숙한 지도자”
지난 2월 즉위 70년을 맞았던 여왕은 영국 역사상 최장수, 최장기간 재위한 인물이다. 1952년 왕위에 올라 70년간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54개 영연방 국가를 통치했다. 2015년 9월9월 즉위한 지 63년 217일로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이 가지고 있던 영국 최장기간 재위 군주 기록을 깼다.
1926년 출생한 여왕은 애초 왕위에 오를 태생은 아니었다. 선대 왕위가 여왕의 아버지인 조지 6세가 아닌 큰아버지인 에드워드 8세의 몫이었다. 할아버지인 조지 5세가 재위할 시기만 해도 여왕은 왕위계승 서열 3위였다. 그런데 에드워드 8세가 재위 직후 미국 평민 출신의 윌리엄 심프슨 부인과 세기의 스캔들을 일으키며 왕위를 버렸고, 1936년 아버지 조지 6세가 이를 승계하게 됐다.
아버지인 조지 6세는 심한 말더듬증을 갖고 있었다. 이를 극복하고 독일 나치와의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이를 주제로 한 ‘킹스 스피치’가 제작되기도 했다. 선왕이었던 아버지는 1952년 여왕이 아프리카 케냐를 방문 중일 당시 세상을 떠났다. 여왕은 예상보다 일찍 왕관의 무게를 짊어져야 했다.
여왕은 오랜 기간 재위하며 영국 내외의 굵직한 사회, 정치적 변화를 지켜봤다. CNN은 “탈산업화, 여성 해방, 성 소수자 권리 확대 등 격동의 시대를 함께했고, 흑백텔레비전 때부터 인터넷 시대, 버킹엄궁 밖에서 추모객들이 ‘셀피’를 찍는 시대에까지 항상 존재했다”고 짚었다.
여왕은 정치인은 아니었지만, 리더십 면에서 존경을 받았다. 특히 지난해 4월 코로나19가 한창일 당시 남편인 필립공을 떠나보내면서도 정부의 봉쇄 규정을 철저히 따라 장례식을 비공개로 진행했다. CNN은 “능숙한 지도자”라고 그를 평가하며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가 해당 기간에 술을 마시며 파티를 했던 것과 대조적”이라고 설명했다.
여왕은 가족 문제와 관련해서는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장남 찰스 왕세자와 고(故) 다이애나비가 이혼하는 과정에서 지지도가 떨어졌다. 1981년 7월29일 당시 19살이었던 다이애나는 12살 많은 찰스 왕세자와 결혼했으나 찰스가 과거 연인이었던 유부녀 커밀라 파커볼스와 불륜관계를 계속 유지했고, 이혼까지 이어졌다. 1996년 이혼한 다이애나는 이듬해인 1997년 3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열흘간 장례 행사… 19일 국장 엄수
여왕의 장례식은 19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 국장으로 엄수된다. 장례식에 75만명이 넘는 인파가 운집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12일 보도했다.
10일까지 밸모럴성에 안치됐던 여왕의 유해는 다음 날 영면을 위한 여정에 올랐다. 밸모럴성은 여왕이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여왕의 시신이 든 참나무 관은 이날 오전 약 280㎞ 떨어진 에든버러의 홀리루드 궁전으로 이동했다. 운구차를 선두로 7대의 장례 차량 행렬이 첫 마을인 밸러터를 지나자 시민 수천 명이 도로 양옆에 서서 꽃과 직접 쓴 편지를 던지며 여왕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최대한 많은 이들이 여왕에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도록 장례 차량은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를 택했다. 운구차는 애버딘과 던디, 퍼스를 지나 홀리루드 궁전에 도착했다. 이곳은 에든버러에 머물 때 여왕의 공식 거처였다.
12일 오후 여왕의 유해는 유품들과 함께 에든버러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왕실 일가가 참석한 장례 예배가 끝나면 여왕의 시신은 대중에게 24시간 동안 공개돼 일반의 조문을 받는다. 13일 여왕의 관은 공군기 편으로 런던 버킹엄궁으로 이동, 14일 웨스트민스터 성당으로 옮겨져 장례식 전날까지 나흘간 대중에게 공개된다.
장례는 19일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 치러진다. 영국은 이날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했다. 이후 여왕은 윈저성 내 세인트 조지 예배당 납골당의 지난해 별세한 남편 필립공 곁에 안장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