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잡히지 않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 탓에 미국이 다음 주 최소 0.75%포인트 이상 정책금리(기준금리)를 더 올릴 가능성이 커지면서, 한국은행의 대응에 시장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은은 여러 차례 "물가·성장 등이 전망 경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0.25%포인트(p)씩 올리겠다"고 예고했지만, 미국의 통화 긴축이 예상보다 빠르고 강해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크게 떨어질 경우 빅 스텝(0.50%포인트 인상)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처지다.
◇ 연준, 20∼21일 1%p 올리면 한미 금리 격차 1%p까지 벌어져
14일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8.3% 올랐다. 6월 9.1% 이후 두 달 연속 떨어졌지만, 상승 폭이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8.0%)를 크게 웃돌았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오는 20∼21일(현지시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세 차례 연속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0.75%포인트 금리인상)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기준금리를 한 번에 1%포인트(p) 올리는 '울트라스텝'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9월 CPI 발표 직후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 조사에서 앞서 0%에 가까웠던 1%포인트 인상 확률은 32%까지 뛰었다.
지난달 25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면서 한국(2.50%)과 미국(2.25∼2.50%)의 기준금리 상단은 현재 같은 상태다.
하지만 예상대로 9월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을 결정하면, 미국(3.00∼3.25%)의 기준금리 상단은 우리나라보다 0.75%포인트나 높아지게 된다.
만약 자이언트 스텝을 넘어 1%포인트가 오르면, 두 나라 금리 격차도 사상 최대 수준에 가까운 1%포인트까지 벌어진다.
◇ 한은도 10·11월 연속 인상할 듯…내년초까지 기조 이어질수도
이처럼 미국의 물가 불안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긴축 기조가 상당 기간 유지될수록, 한은 금통위가 올해 남은 10월, 11월 두 차례 통화정책방향회의에서 모두 기준금리를 올릴 가능성도 커진다.
예상대로라면 연말까지 사상 처음 6연속 기준금리 인상 기록이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더구나 금통위 내부에서는 올해뿐 아니라 내년까지 기준금리를 계속 올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지난달 25일 열린 통화정책방향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한 위원은 "물가상승률이 올해 하반기 정점을 보이더라도, 둔화 속도가 완만하고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현재의 전망경로가 유지된다면 점진적 금리인상 기조를 이어가는 것이 적절하다"며 "내년에도 통화정책의 긴축 정도를 높여가되, 금리인상의 폭과 속도는 국내외 경제 흐름의 변화를 봐가며 유연하게 결정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0.25%p 인상 유력하지만 물가·환율 등 악화되면 빅스텝 가능성도
시장과 경제주체들도 당분간 기준금리가 계속 오를 것으로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지만, 문제는 인상 폭과 속도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25일 0.25%포인트 인상을 결정한 뒤 "현 경제 상황이 지난 7월 예상했던 국내 물가, 성장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만큼 0.25%포인트의 점진적 인상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당분간 0.25%포인트씩 인상하겠다는 것이 기조"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같은 달 30일 제롬 파월 미국 연준의장이 잭슨홀 미팅에서 매파(통화긴축 지지)적 성향을 드러낸 것에 대해서도 "한은이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이전에 밝힌 향후 통화정책 운용 방향에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한은과 이 총재의 '포워드 가이던스'(사전 예고 지침)를 고려하면 다음 달에도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0.25%포인트 인상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한은의 전망대로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동기대비 5.7%)이 7개월 만에 떨어진데다, 미국의 9월 자이언트 스텝도 한은의 예상에서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이승헌 한은 부총재는 앞서 13일 시장상황점검회의에서 "20∼21일 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한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고 했다.
더구나 글로벌 경기 둔화 등에 따른 하반기 성장률 하락 가능성도 한은으로서는 큰 부담이다.
하지만 만약 연준이 예상을 깨고 1.0%포인트 인상을 단행하거나, 국내 9월 소비자물가 지표에서도 뚜렷하게 물가 정점 통과가 확인되지 않는 등 국내외 경제가 한은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갈 경우 빅 스텝 카드는 언제라도 유효한 상태다.
한미 기준금리 격차 확대와 미국의 강한 긴축으로 외국인 자금이 증시·채권 시장에서 기조적으로 빠져나가고, 원화 절하(가치 하락)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돼도 빅 스텝은 불가피해진다.
특히 원화 약세는 치솟는 물가에 기름을 부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한은으로서도 기준금리 결정 과정에서 중요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는 요소다. 원화 가치가 떨어질수록 같은 수입 제품의 원화 환산 가격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장이 열리자마자 13년 5개월여 만에 처음 1,390원을 넘어섰다.
이 총재는 최근 빅 스텝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충격이 오면 원칙적으로 고려할 수 있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바꿔말하면 예상 밖의 충격이 커지면 빅 스텝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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