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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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시대에 분노하는 청년들을 위해

혹시 ‘낳음 당하다’라는 표현을 들어본 분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최근 유행하는 말이라고 하는데, ‘원하지도 않았는데 부모님이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만들어서 이 고생을 하게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취포’(취업 포기), ‘삼포’(연애·결혼·출산 포기)는 옛말이다. ‘오포’(삼포+인간관계·내 집 마련 포기), ‘칠포’(오포+꿈·희망 포기)를 넘어 ‘N포’(모든 것을 포기)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최근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발간한 ‘2022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전체 자살자 수는 감소했지만 10∼30대 자살률은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청년 문제가 심각한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다.

오승록 서울 노원구청장

지금 우리 청년들은 삶의 기쁨과 의욕을 느끼기보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 고통받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청년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최근 지역사회 청년정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청년들이 사는 지역이야말로 청년들이 실질적으로 일상을 사는 곳이자,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다. 지역사회에서 청년정책은 세 가지 방향을 개별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종합해 나가야 한다.

먼저, 일자리 네트워크 확대다. 경기침체, 높은 청년 실업률로 청년들의 취업 불안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미취업 청년을 위한 전문적인 취업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다양한 취업 정보와 취업 교육을 통해 취업 성공률을 올려주어야 한다. 서울 노원구는 올 3월 청년들의 사회 진출을 돕기 위한 ‘노원청년일삶센터’를 개소하였고, ‘노원구 청년일자리센터’(가칭)도 10월 개관을 앞두고 있다. 또한 사업 자금이 부족해 창업을 망설이는 청년들을 위해 ‘청년 가게’를 확대, 조성하고 있다.

두 번째로, 주거 불안 해소이다. 전체 가계 지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주택 등 주거 비용이다. 최근 주택 가격이 크게 상승하면서 무주택자 비율이 높은 청년층의 대출 부담은 더 늘어났다. 전체 전세자금 대출자 중 61.1%가 2030 청년이라고 한다. 노원구는 청년 창업자의 직주일체(職住一體)형 ‘도전숙’을 운영 중이며, 상계동에 역세권 청년주택이 들어올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청년들의 정책 참여 기회 제공이다. 한국의 40세 미만 청년 의원 비율은 4.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다. 비단 대표성의 문제뿐 아니라 청년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할 통로가 없다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노원구는 ‘서울시 노원구 청년 구정 참여 활동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청년정책 네트워크’를 운영해 청년들의 목소리를 구정에 반영하고 있다.

이제는 청년들이 희망과 꿈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더 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갖고, 주거 불안이 해소되며, 정치에 참여해 발언할 공간을 열어주어 청년들 스스로가 사회의 주역이 될 기회를 폭넓게 제공해주어야 한다.

작가 이병률은 산문집 ‘끌림’에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가진 게 없다고 불행하다고 믿거나 그러지 말자. 문 밖의 길들이 다 당신 것이다”라고 말한다. 청년정책은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는 데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오승록 서울 노원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