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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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판결로 냉각기 지속… 관계 개선 전방위 역할 주목 [심층기획]

韓·日 연결고리 한일의원연맹

공산세력 맞서 경제·안보협력 목적
1972년 ‘한일의원간친회’로 출발
매년 양국 오가며 합동 총회 개최

탈냉전기 긴밀했던 유대 느슨해져
군사정권 시절 밀실외교 도마 올라
친선교류 확대 방식으로 재편 추세

‘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승 노력 중요
역사·화해·미래지향적 인식이 핵심
“소통 늘려 갈등국면 타파 힘 보태야”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변화무쌍했다. 2002년 월드컵을 공동 개최할 정도로 관계가 호조를 이룬 적도 있지만, 2010년대부터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관련 대법원 판결 이후 꼬인 한·일 관계는 심각한 냉각기를 맞았다. 외교는 양국 정부가 중심이지만, 엉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각 분야의 전방위적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 간 대화가 막힐 때마다 운신의 폭이 넓은 국회의원들이 나서는데, 그 중심에 한일의원연맹이 있다.

 

2018년 12월14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일·일한 의원연맹 제41차 합동 총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양국 갈등이 격해질 때마다 완화하거나 중재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해온 한일의원연맹은 한·일 관계를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한일의원연맹은 일한의원연맹과의 제43차 합동 총회를 10∼11월 중 서울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회의뿐 아니라 4년 만에 양국 의원 간 친선 축구경기도 재개된다. 윤석열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노력 못지않게 국회에서의 한일의원연맹 역할도 부각되고 있다.

◆국회 내 최다 의원 소속된 의회외교단체

한일의원연맹은 1972년 ‘한일의원간친회’로 출발했다. 일본식 한자어인 간친회는 친목회라는 뜻이다. 친목회로 시작한 이 모임은 1975년 한일의원연맹으로 발전했다. 양국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한 만큼 공산세력에 맞서 경제 및 안보 협력 강화가 주목적이었다. 한국에서는 김종필 전 국무총리, 일본에서는 후나다 나카 전 자민당 고문이 각각 초대회장을 맡았다. 이때부터 매년 양국을 오가며 합동 총회가 열렸다.

한일의원연맹은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만큼 의회외교단체 중 회원이 157명으로 가장 많다. 국민의힘이 78명으로 가장 많았고, 더불어민주당 71명, 무소속 4명, 정의당 3명, 시대전환 1명 순이다. 21대 국회에서는 김진표 국회의장이 연맹 회장 재임 중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되면서 물러났다. 그 배턴을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어받았다. 부회장이자 간사장은 민주당 윤호중 의원이 맡았다. 일한의원연맹은 누카가 후쿠시로 의원이 회장을 맡고 있고, 소속 의원은 263명에 달한다.

◆냉전 시기 안보·경제·과거사 문제 해결 앞장

관련 연구에 따르면 한일의원연맹의 역할이 절정에 이르던 때는 냉전 시기다.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최준영 교수는 논문 ‘갈등 속의 한일관계와 한일의원연맹의 역할’에서 “한일의원연맹은 냉전 기간 안보와 경제, 그리고 과거사 문제에서 양국을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적었다. 논문에서는 제5공화국 출범 후 권익현 당시 연맹 회장을 필두로 성공적인 대일 차관협상을 끌어냈고, 88올림픽 지원을 위한 재일교포의 성금에 대한 면세 조치를 일한의원연맹과의 협상을 통해 성사시켰다고 했다. 이러한 일들은 미국이 공산권 국가의 동아시아 진출을 봉쇄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의 협력적 관계를 끊임없이 종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만, 탈냉전기 들어서는 안보 이슈가 상대적으로 사그라지면서 냉전 시기 긴밀했던 때보다 유대가 느슨해졌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대신 수면 위 활동을 통해 친선교류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재편되고 있다.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지낸 강창일 전 주일대사는 세계일보 통화에서 “군사정권까지는 주로 ‘밀실외교’를 한다는 비판이 많았다”며 “민주화가 진척된 뒤에는 공개적인 친선교류가 많아졌다. 대표단이 양국을 오갈 때마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일본 측 의원단을 만나고, 우리도 갔을 때 일본 총리를 만나고 오는 게 관례화됐다”고 설명했다.

◆차세대 정치인들이 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승해야

정치권에서 일본이 언급될 때마다 가장 많이 소환되는 사건은 ‘김대중·오부치 선언’이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합의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다. 한·일 정상은 양국이 과거를 직시하면서 미래를 열어간다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 오부치 총리는 일본의 식민지배로 한국 국민에게 커다란 고통을 준 사실을 받아들이며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 정진석 회장은 지난 15일 제주포럼에서 진행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세션에서 “양국 정상의 선언에 담긴 정신과 원칙을 차분하게 되짚어봐야 한다”며 “미래지향적 관계로 발전해 나가야 하고, 한쪽에 해법을 마련하라고만 주장하는 것은 서로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웅변했다.

지난달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워싱턴에서 미·일 의원들과 만나고 온 한일의원연맹 김한정 상임간사(민주당)는 기자와 만나 “일본의 젊은 의원들을 만났는데 이들은 일한의원연맹의 자민당 원로 정치인과는 달랐다”며 “우리 쪽 이야기를 경청하고 역사·화해·미래지향의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우리와는 달리 이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일본 정부를 압박하거나 우리한테 제안하려는 입장까지는 못 나가고 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과거사 문제 등 갈등이 있을수록 피하지 말고 양국 의원들이 더 소통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강 전 대사는 통화에서 “일본의 30·40대 의원들은 윗세대와 달리 양국을 대등하게 생각한다”며 “젊은 의원들을 자꾸 초청해서 대화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형창 기자 calli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