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총회를 계기로 열릴 예정인 한·일 정상회담을 두고 한·일 양측의 기류가 엇갈리면서 정상회담 성사를 놓고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실은 “양자회담에 대한 상황 변화는 없다. 일정은 최종 조율 중”이라고 했지만 일본 측 일각에서는 정식회담이 아닌 풀 어사이드(Pull aside: 약식회담)로는 만남이 가능하다며 온도 차이를 보였다.
일본 정부가 유엔총회 계기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하지 않는 방향으로 조율하고 있다고 산케이신문이 18일 복수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뉴욕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해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신문은 “일본 측은 이른바 징용공(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노동자의 일본식 표현) 소송 문제에 진전이 없는 채 정상회담에 응하는 것에 신중하다”며 김 차장의 정상회담 일정 공식화에 대해 “(일본 외무성은) 신뢰 관계와 관련된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발표는 삼가달라”고 항의했다고 전했다.
마이니치신문도 이날 “한국 정부가 개최한다고 발표한 정상회담은 일본 측이 신중한 자세를 굽히지 않아 실현이 불투명하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한국 정부의 발표에 대해 일본 정부 내에선 사실무근이라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면서 유엔총회 계기로 한·일 정상 간 접촉이 실현되더라도 서서 이야기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두 매체 모두 약식회담 형식으로 만날 가능성까지 닫지는 않았다. 풀 어사이드는 통상 다자회의 계기에 공식 회담장 밖에서 격식을 따지지 않고 하는 약식회담을 뜻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지난 15일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해 통상 1시간가량 필요한 정상회담이 아니라 “빡빡한 일정 때문에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얼굴을 마주 보고 진행하는 회담이 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5박 7일 순방 성과를 위해 윤 대통령 취임 첫 한·일 정상회담 성사를 강하게 밀어붙이다가 일본 측의 반발에 부딪혔다는 해석도 나온다. 대법원이 일본 전범 기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 여부에 대한 판결을 미루면서 시간을 벌었지만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의 배상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부의 민관협의회는 뚜렷한 합의점을 내지 못하고 있다. 상황 변화 없이는 한·일 정상회담은 어렵다는 것이 일본 측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상황 변화에 대해서는 보고받은 바 없다”며 “정상회담 일정은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유엔총회 기간 한·일 외교장관회담은 열릴 가능성이 높다. 외교부는 제77차 유엔총회 기간 중 미국 뉴욕에서 한·미·일 및 한·일 외교장관회담 개최를 조율 중이다. 특히 박진 외교부 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무상의 양자회담이 성사된다면 지난 7월 일본 도쿄, 8월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외교장관회의가 열린 캄보디아 프놈펜에 이어 세 번째 양자회담이다. 유엔총회 계기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두 장관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문제 등 양국 현안에 대한 의제 및 협의 수준을 사전 조율하는 성격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