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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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류서 학원생 구하고 익사한 태권도 관장…보호의무 소홀로 취소된 ‘의사자’ 6년 만에 인정

A씨, 지난 2016년 여행 중 물놀이 하던 학생 3명 떠내려가자 뛰어들어 2명 구하고 1명과 함께 사망

당초 보건복지부가 의사자 인정했으나 사망한 학생 부모가 A씨측 귀책 근거로 소송 제기하며 취소돼

A씨 유족이 재차 소송…재판부 “현행법상 의사자 아닐 수 있으나 자기희생적 행위였다”며 의사자 인정
서울행정법원 전경. 뉴시스

 

강물에 휩쓸린 학원생 3명을 구하던 중 사망한 태권도 학원 관장을 ‘의사자’로 지정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SBS는 19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재판장 강동혁)가 사망한 A씨(34)의 유족이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의사자 인정 취소 및 보상금 환수 처분의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같은날 내렸다고 밝혔다.

 

SBS에 따르면, 서울 관악구에서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던 A씨는 지난 2016년 5월 학원생들과 함께 강원도 홍천의 한 물가로 여행을 떠났다.

 

그는 물놀이를 하던 원생 3명이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지체없이 강물에 뛰어들었다.

 

A씨는 원생 2명을 물 밖으로 밀어내 구하고, 나머지 1명을 구조하기 위해 재차 물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탈진해 빠져나오지 못했고, 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A씨를 꺼내왔으나 그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소방구조대가 강을 수색해 실종된 남학생을 발견했지만 그 역시 사망한 뒤였다.

 

이에 같은해 12월 보건복지부는 A씨를 의사자로 인정하고 그의 유족에게 약 2억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의사상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사상자법)에서는 직무 외 행위로 위해(危害)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를 구하기 위해 구조 행위를 하다가 숨지거나 다친 자를 의사상자로 인정하고 있다. 

 

의사상자로 인정되면 유족에게 보상금 지급과 함께 의료 급여, 교육 보호, 취업 보호 등의 예우가 주어지며, 의사자의 시신은 국립묘지에 안장 및 이장할 수 있다.

 

하지만 A씨의 의사자 인정은 사망한 학생의 학부모가 소송을 제기하며 취소됐다.

 

SBS 취재에 따르면, 이들 부모는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학생들에게 안전 장비를 착용시키지 않아 보호 의무를 소홀히 한 A씨의 의사자 인정을 취소하라”며 행정소송을 내는 한편 같은 내용의 민·형사 소송도 제기했다.

 

민·형사 재판부는 부모 측 입장을 받아들여 학생의 사망 원인이 A씨에게도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고, 보건복지부는 법원의 조정 권고에 따라 A씨에 대한 의사자 인정을 취소했다.

 

그러자 A씨측 유족이 재차 소송을 제기했다.

 

A씨의 의사자 지정 여부의 핵심은 그가 의사상자법상 ‘승용물 탑승 혹은 천재지변 등의 상황에서 위해에 처해진 타인의 생명이나 신체를 구하다가 의상자 또는 의사자가 된 때’에 해당될 수 있는지의 여부였다.

 

의사상자법에 명시된 위 내용을 바꾸어 해석하면 A씨는 ‘학원생들에게 안전 장비를 착용시키지 않은’ 자신의 행위로 인해 사망한 학생을 위해에 처하게 한 후 구조한 것이므로, 현행법상 의사자에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가 이 조항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한겨레의 19일 취재에 따르면 재판부는 “입법 목적상 자신의 고의나 중과실로 위험해진 사람을 구하다가 사망한 경우는 의사자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A씨의 과실이 학생의 사망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고의나 중과실이 사망자의 위험에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서 “A씨가 학생들에게 안전 장비를 착용시키지 않는 등 잘못을 했더라도, 이후 자신의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학원생들을 살리기 위해 물에 뛰어든 행위는 자기희생적 행위로 평가할 수 있고 사회적 귀감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A씨의 사망으로 유족의 생계가 어려워졌다는 점 역시 고려됐다고 밝혔다.


정재우 온라인 뉴스 기자 wamp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