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1일 지방의 거의 모든 규제지역을 전면 해제하기로 한 결정은 최근 부동산 시장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안한 조치다. 집값이 가파르게 하락해 시장에 충격파를 줄 상황에 대비해 주택 거래에 방해가 되는 규제를 최대한 풀어놓겠다는 것이다. 다만 수도권은 전국 집값이 완연한 하락세로 접어든 상황이라 당장 시장에 큰 영향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주거정책심의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설명하며 그 배경으로 주택가격 하락폭 확대와 향후 가격안정 요인 증가를 꼽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주(12일 기준) 전국 아파트값은 0.16% 내리며 19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8월 월간 기준으로는 0.51% 떨어지며 13년 7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집값이 이토록 가파르게 떨어지는 가운데 지방에서는 미분양 물량이 계속 늘고, 청약 미달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게다가 기준금리, 원자재값, 원·달러 환율 등의 경제지표도 계속 우상향할 것으로 예측되는 등 집값을 더 끌어내릴 부정적인 전망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이에 따라 지방에서는 선제적인 규제지역 해제 필요성 있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수도권의 경우는 상황히 조금 다르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통계상 집값 하락세가 나타나는 것은 맞지만, 거래량 자체가 워낙 줄어서 주택 매매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고, 수도권에서 규제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되면 언제든 투기 자금이 다시 몰려들어 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 집값은 여전히 높다는 시장의 인식도 영향을 미쳤다. 앞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달 초 국회에 출석해 “서울은 소득 대비 집값이 18배에 이르러 금융위기 직전인 8배보다 높고, 금융위기 직후 10배보다도 지나치게 높다”며 “하향 안정화가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미분양 물량과 청약경쟁률 추이 등 향후 시장상황을 추가로 모니터링한 뒤 추가적인 규제지역 해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번 규제지역 해제 조치가 주택 매매시장의 거래절벽 해소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규제지역에서 주택을 구입할 때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대출 규제를 받게 되고, 산 뒤에는 취득세와 종합부동산세, 팔 때는 양도소득세 등 각종 세 부담이 늘어난다.
전문가들은 이번 규제 완화 조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을 막고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해선 결국 지방이 아닌 수도권 규제 여부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함영진 직방 데이터랩장은 “이번 규제지역 해제로 공급과잉 우려가 있거나 향후 차익기대가 제한적인 곳, 대출 이자부담이 커 매각을 원하는 이들의 퇴로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하면서도 “매수자의 입장에선 규제지역 해제로 인한 매입 의지가 높지는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매매가 상승이 정체된 상황 속에서 높은 주택담보대출 이자부담을 고려하지 않고 주택을 구입하기는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서울 등 수도권이 사실상 배제됐기 때문에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며 “다음 대상 지역은 이번에 규제를 풀지 않았던 수도권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정부가 공언했던 시장정상화로 평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미국과 한국이 계속해서 금리를 올리고 있는 상황이라 앞으로도 부동산 시장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며 “수도권의 조정대상지역을 더 해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