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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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실전서 믿을 무기가 필요하다

인공지능(AI) 기반 과학기술강군.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군 당국이 강조하는 전력증강 개념이다. AI를 활용해 신속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시스템, 전투원과 각종 플랫폼을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네트워크, 차륜형 장갑차와 소형 전술차량을 이용해 보병들이 빠르게 이동하는 기동성까지…. 그 면면도 화려하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해 한국군을 바꾸려는 군의 계획은 선진국과의 격차를 빠르게 좁히는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장병들의 신뢰와 올바른 사용법이 없다면, 첨단 장비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군인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은 하나뿐인 목숨을 거는 일이다. 누구나 겁을 내는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군인이 마음 한구석에 차오르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전쟁터에 뛰어들려면, 자신이 사용할 무기를 강하게 믿을 수 있어야 한다. 결정적 순간에 무기가 장애를 일으킨다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진다. 무기에 대한 높은 수준의 신뢰는 오랜 운용 기간을 통해 서서히 축적된다. 이 과정에서 군수지원체계와 운용개념 등이 확립되고, 이를 통해 전반적인 신뢰성을 높이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박수찬 외교안보부 차장

최첨단 기술이 투입됐다 하더라도 사용 이력이 짧다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수년 전부터 열병식을 통해 무인포탑을 지닌 T-14 전차와 SU-57 스텔스 전투기를 비롯한 첨단 무기를 과시했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T-72 전차 등 옛 소련 시절에 개발된 무기를 주로 사용한 것도 러시아군이 오랫동안 사용하는 과정에서 신뢰가 어느 정도 확보됐기 때문이다.

군이 추진 중인 AI 기반 과학기술강군 육성 정책에서 장병들의 신뢰 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이유다. 이를 소홀히 한다면 ‘미래 차세대 복합소총’으로 각광받았으나 기술적 결함이 속출하면서 군 안팎의 신뢰를 잃은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K-11 복합소총의 사례가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

첨단 무기를 실전에서 사용하는 방법을 치밀하게 연구할 필요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프랑스군은 독일군보다 우수한 전차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전차는 보병을 돕는 보조 무기’라는 인식을 지닌 프랑스군과 달리 독일군은 전차를 중심으로 빠르게 진격하는 전격전 개념을 확립, 프랑스군을 공격해 무너뜨렸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군은 상업용 드론에 폭탄을 장착, 러시아 전차를 파괴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독일과 우크라이나의 사례는 대대적인 혁신에 나설 채비를 하는 한국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첨단 기술 개발에 ‘올인’하는 대신 실전에 적용할 수 있는 상황을 사전에 설정하고, 이에 맞는 전술과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기술을 적용한 첨단 무기 확보는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기술만으로 전쟁의 승리를 보장할 수는 없다. 첨단 무기와 기술에 대한 군인들의 믿음과 적절한 사용법이 뒷받침되어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나라를 지키고자 목숨을 거는 군인들은 자신이 믿을 수 있고, 익숙하게 쓸 수 있는 무기를 사용할 자격이 있다.


박수찬 외교안보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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