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0.25%P 인상 전제조건 바뀌었다”… 韓銀 또 빅스텝 밟나 [美 3연속 자이언트 스텝 후폭풍]

한·미 금리 0.75%P차 재역전

美, 연내 두 차례 남은 FOMC 회의
최소 ‘0.75%P+0.5%P’ 인상 가능성
韓, 베이비스텝 땐 최대 1.75%P차이

금리역전 장기화되면 외인자본 유출
수입물가 뛰며 소비자물가 끌어올려

이창용 “물가·외환시장 고려해 결정”
내달 열릴 금통위 빅스텝 압박 커져

미국이 3연속 ‘자이언트 스텝’(한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면서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0.75%포인트 높아졌다. 한국은행은 올해 들어 사상 초유의 ‘빅스텝’(〃 0.50%포인트 인상)을 포함해 네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높여왔지만, 미국이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더 큰 폭으로 금리를 올리면서 또다시 한·미 금리의 역전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외국인 자금 유출과 원화 가치 하락, 물가 상승 등을 유발하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기준금리 인상 압박을 받는 한은이 다음 달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통화정책방향회의에서 재차 빅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2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 앞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한·미 금리차 크게 벌어지며 한은 빅스텝 가능성↑

예상보다 미국의 통화 긴축 속도가 빨라지면서 한은은 올해 남은 10월, 11월 금통위에서 ‘베이비 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워졌다. 현재 한국 기준금리는 2.50%로, 상단 기준 미국 기준금리(3.00∼3.25%)보다 0.75%포인트 낮다. 지난 7월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두 번째 자이언트 스텝을 밟은 뒤 미국의 기준금리(2.25∼2.50%)는 약 2년 반 만에 한국(2.25%)보다 높아졌다가 지난달 25일 한은이 0.25%포인트를 올려 같아졌지만, 다시 격차가 벌어진 것이다. 만약 다음 달 12일 한은 금통위가 베이비 스텝을 밟고, 11월 연준이 다시 자이언트 스텝에 나서면 한·미 금리차는 1.25%포인트까지 커진다. 이어 11월 말 금통위가 또 0.25%포인트만 올리고, 연준이 12월 0.50∼0.75%포인트 인상을 이어가면 한·미 금리차는 최대 1.75%포인트까지 벌어질 수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22일 빅스텝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총재는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 직후 ‘0.25%포인트씩 점진적 인상 기조가 아직 유효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난 수개월간 드린 포워드 가이던스(사전 예고 지침)에는 전제 조건이 있는데,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연준의 최종 금리가 4% 수준에서 그 이상으로 상당 폭 높아진 것”이라고 답했다.

 

이 총재는 “(미 금리가) 4%에서 어느 정도 안정될 것이라는 시장이나 저희(한은)의 기대가 많이 바뀌었다”면서 “다음 금통위까지 2∼3주 시간이 있는 만큼 금통위원들과 함께 이런 전제 조건 변화가 국내 물가와 성장 흐름, 외환시장 등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한 후 기준금리 인상 폭과 시기 등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금리 인상 기조 속 자본 유출·환율·물가 압력 커져

미국 금리가 한국 금리보다 높아지는 역전 현상이 벌어질 경우 외국인 자본 유출과 원화 약세 등의 우려가 나온다.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크게 낮아지면,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떨어질 위험이 커진다. 특히 지금처럼 원·달러 환율이 크게 오르면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소비자물가를 더욱 끌어올리게 된다. 고환율 역시 기준금리 인상의 주요 변수 중 하나라는 의미다. 이 총재도 이날 “한은 입장에서는 물가가 가장 관건”이라면서 “원화가 절하되는 문제가 우리 물가에 어떤 영향을 주고 물가를 잡기 위해서 어떤 금리 정책을 해야 하는지가 한은의 가장 큰 의무”라고 말했다.

 

연말까지 미 연준의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은 계속해서 이어질 전망이다.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미 연준의 자이언트 스텝은 시장 예상에 부합했지만,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의 금리 인상 전망을 보여주는 지표인 점도표의 향후 금리 전망이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이었다고 평가했다. 연준은 점도표에서 올해 말 금리 수준을 4.4%로, 내년 말 금리 수준을 4.6%로 조정했다. 지난 6월 점도표의 3.4%, 3.8%에서 대폭 상향한 것이다. 이에 따라 연준은 올해 남은 11월, 12월의 FOMC에서도 빅스텝과 자이언트 스텝으로 총 1.25%포인트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 은행은 연준 최종 금리가 5.0%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이승헌 한은 부총재도 이날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당분간 높은 인플레이션 상황이 지속되면서 큰 폭의 정책금리 추가 인상이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글로벌 금융시장이 계속 높은 변동성을 나타낼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