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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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거짓말 논란·코드인사·재판 지연… 국민 불신 더 커졌다 [심층기획]

김명수 취임 5년, 사법부는 지금
대법원장이 사법불신 자초
“제왕적 권한 내려놓고 수평·투명 조직”
양승태 사법농단 사태 수습 의지 피력
‘국회서 탄핵하자는데 사표 수리 못해’
임성근 거취 거짓해명 의혹 수사받게 돼

법원 정치화로 분열 부채질
‘좌편향’ 우리법·인권법 출신 요직 포진
인력난에 재판 적체 극심 국민 불만 고조
민사 합의부 1심 처리 평균 364일 걸려
“남은 1년, 신뢰 회복·조직 통합 주력해야”

김명수 대법원장이 26일 취임 5년을 맞는다. 2017년 9월 춘천지방법원장에서 대법관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법원장으로 직행한 그는 지명 다음날 대법원을 방문해 “31년 5개월 동안 법정에서 당사자와 호흡하며 재판만 한 사람이 어떤 수준인지, 어떤 모습인지 보여줄 것”이라고 공언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뉴시스

하지만 김명수 코트(Court)는 논란과 불신으로 얼룩졌다.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태를 겪으며 둘로 나뉜 법원은 봉합되지 못했고, ‘코드인사’는 ‘법원 정치화’ 현상을 부채질했다. 특히 초유의 판사 탄핵에 이어진 거짓말 논란, 공관 만찬 사건까지 김 대법원장을 둘러싼 혼란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대법원장 스스로 사법불신을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재판 지연에 국민의 불만까지 높아지며 사법부 위상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사법부, 수평적·투명한 구조로 탈바꿈” 자평했지만…

김 대법원장은 취임 직후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한을 내려놓겠다”며 사법행정자문회의를 신설하고 법원행정처 판사들을 줄여나갔다. 법관 관료화의 온상으로 지적된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를 폐지하고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도입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가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권한 때문에 일어난 부작용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좋은 재판’을 위한 제도 개선에도 나섰다. 대법원은 대법관 증원과 상고심사제 등을 추진해 폭증하는 상고사건을 해결하기로 했다. 영상재판 확대와 형사기록 전자화 등을 추진해 당사자들의 재판권 보장에도 힘썼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2022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대법원장은 지난 13일 제8회 ‘법원의 날’ 기념사에서 “과거의 체제와 과감히 결별하고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대안을 찾아 정립하는 데 전력을 다해왔다”며 “사법행정은 의사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종전의 폐쇄적이고 관료화된 모습에서 벗어나 국민과 법원 구성원의 요구가 합리적으로 반영되는 수평적이고 투명한 구조로 탈바꿈해 나가고 있다”고 자평했다.

◆‘첩첩산중’ 김명수 대법원

김 대법원장은 재임 5년간 각종 논란의 중심에 섰다. 대표적인 사건이 ‘거짓말’ 논란이다.

김 대법원장이 당초 해명과는 달리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느냐 말이야”라며 더불어민주당이 탄핵소추를 추진하던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사표를 거부한 사실이 녹음 파일을 통해 알려지면서 논란은 확산됐다.

김 대법원장은 이 사건으로 시민단체에 고발당했고 검찰은 최근 수사를 재개했다. 한 변호사는 “대법원장도 거짓말을 하는데 재판받는 사람들이 판사의 말을 믿을 수 있겠느냐”며 “무너져가는 사법신뢰에 기름을 부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 연합뉴스

원칙에 어긋난 인사 발령이 반복되면서 ‘코드인사’ 논란도 계속됐다. ‘3년 근무’라는 인사 관행을 깨고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재판을 맡았던 윤종섭 부장판사와 ‘조국·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을 맡았던 김미리 부장판사를 각각 6년, 4년간 서울중앙지법에 근무하도록 했다. 우리법·인권법 연구회 출신 등 특정 성향 판사들을 요직에 앉히면서 재판 공정성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최근에는 재판 지연까지 심각해지면서 사법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지난해 1심 민사 본안사건이 처리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합의부 사건의 경우 평균 364일, 단독 사건은 226일이 소요됐다. 이는 4년 전보다 각각 71일, 22일 늘어난 수치다. 형사 1심 사건 선고도 2017년 평균 127일이 걸렸지만 지난해에는 176일로 늘었다.

◆“‘민주화 이후 최악의 사법부’ 오명까지”… 남은 1년은

김 대법원장 취임 후 5년이 지난 법원은 통합은커녕 ‘단절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판사는 “‘책임 소재가 불명확해졌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며 “권한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책임까지 사라지는 게 아닌데 예산 등 사법부의 문제에 대해 대법원장과 행정처가 해야 할 역할까지 방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연합뉴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출범한 만큼 사법불신을 해소하고 법원 신뢰를 구축하는 게 가장 핵심적인 과제가 돼야 했지만, 오히려 국민들의 불신을 키웠다”며 “민주화 이후 사법부가 안정되고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김명수 사법부가 역행하면서 ‘민주화 이후 최악의 사법부’라는 비판까지 나온다”고 지적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농단에 연루된 사람들을 사법처리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법원 내부에서 그런 일이 발생한 원인과 구조를 규명하고 그걸 개혁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어야 하지만 진전이 없었다”며 “사법행정에 대해 시민사회의 감시, 견제가 가능한 창구를 만들었어야 한다. 남은 임기 동안 시민사회와 더불어 이뤄지는 사법 체계를 만드는 기틀이라도 잘 닦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미영·이지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