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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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중앙亞의 맹주?… 中 외교의 한계?

SCO 정상회의 참석한 中 시진핑
중앙아 국가들에 당근 ‘우군’ 확보
이견·분쟁 국가 갈등 중재 과제
러 제치고 맹주 역할할지 시험대

‘회원국은 집단적, 이념적, 대립적 사고를 통한 국제 및 지역 문제 해결에 반대한다.’

‘회원국은 모든 국가의 사람들이 선택한 정치, 경제 및 사회 발전 경로를 존중할 권리를 옹호하고 내부 간섭 불간섭에 대한 상호 존중의 원칙을 강조한다.’

이귀전 베이징 특파원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지난 15∼16일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의 결과물인 ‘사마르칸트 선언’에는 중국이 미국의 압박에 맞서 주장해 온 내용들이 상당수 반영됐다. 32개월 만의 첫 해외 순방에 나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위상에 맞는 결과물을 만들겠다는 중국의 바람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

SCO는 중국과 러시아 주도로 2001년 출범한 정치·경제·안보 협의체다.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인도, 파키스탄 등 8개 정회원국에 이란이 이번 회의를 통해 정회원으로 추가됐다.

옛 소비에트연방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주축이다. 지리·문화·군사적으로 러시아의 영향력이 컸다.

이번 회의에선 분위기가 달라졌다. 시 주석이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공항에 도착했을 때 샵카트 미르지요예프 대통령과 압둘라 아리포프 총리 등이 영접을 나왔다. 정상이 이례적으로 직접 공항에 나온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도착했을 때는 아리포프 총리만 공항에 서 있었다.

SCO 회원국 정상들이 단체사진을 찍을 때도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가장 먼저 다가갔다. 푸틴 대통령은 다음이었다. 사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외교 디테일’에서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모습이다.

시 주석이 우즈베키스탄에 앞서 들른 카자흐스탄도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이 직접 공항에 영접을 나왔다.

카자흐스탄이 중국을 극진히 영접한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무관치 않다. 러시아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확장의 이유 외에도 러시아계 주민 보호를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켰다. 옛 영토 수복을 원하는 러시아가 러시아계 주민 보호 명분으로 언제든 침공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우크라이나는 그나마 유럽과 연결돼 있지만, 카자흐스탄은 중국 외에는 ‘뒷배’가 없다.

시 주석은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을 비롯해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등 카자흐스탄과 비슷한 고민을 가진 중앙아시아 국가 정상들과 정상회담을 열고 ‘당근’을 던져줬다.

달라지고 있는 역학 관계를 바탕으로 중국은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우군’으로 확보한 셈이다.

하지만 SCO 회원국 면면을 보면 중국이 ‘맹주’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간단치 않아 보인다. 문제를 안고 있는 국가들을 중국이 끌어안은 모습이다.

회원국 정상들은 ‘모든 당사자는 국가 간의 이견과 분쟁이 대화와 협의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는 문구가 있는 사마르칸트 선언에 서명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회원국인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국경수비대는 정상회의 중이던 지난 14∼16일 충돌해 민간인을 포함해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영토와 종교 등을 놓고 분쟁을 벌인 지 오래다. 중국도 국경 분쟁을 벌이고 있는 인도와 관계가 좋지 않다. 시 주석은 회원국 중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만 회담을 갖지 않았다. SCO의 대화 파트너 국가인 아르메니아과 아제르바이잔 역시 회담 직전 충돌로 100명 가까이 숨졌다.

SCO는 전 세계 인구의 41%,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4%를 차지하지만 회원국 간 갈등으로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을 정도로 목소리를 내진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국제사회에서 덩치에 맞지 않게 소모임 정도로만 인식될 수 있다.

‘맹주’가 된 중국이 SCO를 우군으로 활용하려면 회원국 간 갈등 중재란 숙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중국은 자기 입으로 ‘대국 외교’를 말하고 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도 중재에 나서지 않는 등 국제사회에서 그에 맞는 역할을 한 적을 찾기 어렵다. 중국이 러시아를 제치고 맹주 대접을 받은 SCO가 중국 외교의 한계를 드러내는 또 다른 무대가 될 수도 있다.


이귀전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