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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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선별·빅데이터로 품질 업… IT 업고 ‘노다지’ 꿈꾼다 [쓰레기에서 돈 찾아낸 스타트업들]

<중> 첨단기술로 무장

수퍼빈·에이트테크 선별로봇 개발
재활용 가능품목·색상재질별 분류
재활용 효율 높이고 처리비용도 ↓

리코·이큐브랩은 데이터 기술 활용
폐기물·재활용량 측정 기업에 제공
쓰레기통 내용물 분석 업체와 공유

정부, 미래 새로운 성장 동력 강조
녹색혁신 기업 3년간 30억원 투입
기술개발부터 사업화까지 지원키로

지난 15일 오전 경기도 안양 평촌중앙공원.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넓은 공원 곳곳에는 자판기 모양의 인공지능(AI) 로봇 6대가 설치돼 있었다. 기계를 둘러보는데 자전거를 탄 중년 남성 한 명이 봉지에 페트병과 캔을 가득 담아왔다. 이어 능숙하게 기계의 화면을 몇 번 누르더니 동그란 구멍에 캔을 넣었다. 공원 광장을 뛰놀던 아이 둘도 다가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구경하기 시작했다.

음료수 자판기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이 로봇은 스타트업 수퍼빈에서 개발한 ‘자원 순환’ 로봇 네프론이다. 플라스틱 페트병과 캔을 넣으면 돈으로 돌려주는 기계로 AI와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접목해 개발했다. 서울 홍대입구역, 이태원 경리단길 등 전국에 583대가 설치돼 있고 안양에만 100대 이상이 있다.

지난 15일 경기 안양 평촌중앙공원에 설치된 AI 자원 순환 로봇 네프론에 기자가 플라스틱 페트병을 집어넣고 있다. 수퍼빈 제공

기자도 기계 화면의 시작 버튼을 눌렀다. 곧바로 손바닥만 한 크기의 동그란 투입구가 열렸다. 이어서 적립을 위한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페트병을 하나씩 넣기 시작했다. 페트병 하나를 넣을 때마다 잠시 문이 닫히고 기계가 플라스틱을 찌그러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때마다 화면에는 페트병을 넣은 개수가 올라가며 10포인트씩 쌓였다. 종료 버튼을 누르고 스마트폰 앱에 접속하니 이날 페트병 6개로 적립한 60포인트가 표시됐다. 수퍼빈 관계자는 “전국에서 매주 1500만∼2000만원의 포인트가 사용자들에게 지급되고 있다”고 말했다.

◆AI 선별, 빅데이터 축적으로 품질 향상

네프론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정확도가 올라가는 딥러닝 기반 AI가 적용됐다. 기계에 수거되지 않는 제품을 투입하면 자원 종류를 판단하는 센서가 작동해 투입된 제품을 반려하는 식이다. 선별 정확도는 점차 향상돼 지난해 기준 98%까지 올랐다. 소비자들은 보상을 얻기 위해 페트병을 세척하고 라벨을 뜯는 식으로 꼼꼼히 분리수거하게 되고, 플라스틱 재활용 원료는 더욱 양질이 되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같은 날 오후 찾은 경기도 화성의 수퍼빈 자체 플레이크(폐플라스틱을 분쇄·세척한 조각) 소재화 공장 아이엠팩토리는 오는 11월 완공을 앞두고 막바지 공정 설치 작업이 한창이었다. 공정라인은 알파벳 U자 형태로 생긴 공장 1층을 따라 200m가량 길이로 기다랗게 이어져 있었다.

경기 화성에 위치한 수퍼빈의 자체 플레이크 소재화 공장 아이엠팩토리의 전처리 공정라인. 수퍼빈 제공

이곳에서 진행되는 폐플라스틱 재활용 원료 공정에도 AI 선별 및 빅데이터 기술이 활용된다. 전국에서 수거한 페트병들은 깔때기 형태의 기계에 투입돼 공정라인을 오르내리면서 전처리·분쇄·세척·탈수·비중분리 및 출고·건조 및 포장 단계를 차례로 거친다. 이 과정에서 품질 높은 페트병을 골라내는 3차례 선별이 이뤄진다. 또 빅데이터 축적 시스템이 작동해 꾸준히 생산 품질을 높여간다. 수퍼빈 관계자는 “모두 환경을 생각한 공정”이라며 “요새 환경 이슈로 부각되는 미세 플라스틱 문제를 잡을 수 있는 공법이 개발되면 이를 공정에 적용하기 위한 공간도 미리 마련해뒀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시간당 1.5, 최대 연간 1만의 플레이크가 생산된다. 생산된 플레이크는 화학업체에 판매돼 식품·화장품 용기, 의류 등 재활용 소재 제품을 만드는 데 쓰인다.

◆첨단기술로 무장한 쓰레기 스타트업

쓰레기도 돈이 되는 시대. 저마다의 첨단기술로 무장한 국내 스타트업들은 자체 기술을 개발해 재활용 관련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효율적 재활용을 위한 AI 선별에 나선 스타트업들이 대표적이다. 에이트테크는 AI를 기반으로 한 재활용품 선별로봇을 개발했다. 재활용 사업장에 납품하는 로봇은 40만건 이상 학습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페트병, 캔, 유리병 등을 색상과 재질에 따라 12종류로 분류해 자원 재활용을 돕는다. 아파트단지 등 공동주택에서 뒤죽박죽 배출한 쓰레기를 로봇이 선별하면서 재활용 효율이 올라갔고 작업장 환경도 개선되는 등 선별 비용이 80%가량 절감됐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데이터 트래킹 기술로 기업이 폐기물을 친환경적으로 처리하도록 돕는 업체도 있다. 리코는 정확한 폐기물 측정을 위해 고안한 폐기물 박스를 고객의 사업장으로 보낸다. 이를 다시 재활용 공장으로 운반하고 공장에서 최종 배출한 폐기물량과 재활용량을 측정, 사업장별·월별·배출량별 데이터를 고객에게 전달한다. 얼마나 버렸는지보다 얼마나 재활용돼 자원 순환에 기여했는지 고민하는 기업들을 공략한 것이다. 지난해 기준 리코와 함께한 사업장들이 한 달에 줄인 온실가스 양은 9710 CO₂e(탄소 환산량)에 달한다.

이밖에 이큐브랩은 태양광 에너지로 쓰레기를 압축하는 쓰레기통을 세계 6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압축하기 때문에 일반 쓰레기통보다 5배 이상 폐기물을 수거하는데, 이 쓰레기통에서 모아둔 데이터를 바탕으로 재활용 업체와 연계해 재활용률을 높일 수 있다.

◆과학기술 더해진 녹색산업은 미래 성장동력

정부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한 녹색산업 기업들을 향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지난 5월 취임 후 첫 현장행보로 인천 서구 환경산업연구단지를 찾았다. 한 장관은 이곳에 입주한 태양광 폐모듈, 폐플라스틱 재활용 기술 보유 업체들을 방문하고 수퍼빈, 에이트테크를 비롯한 스타트업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한 장관은 이 자리에서 “녹색경제 전환 과정에서 과학기술과 환경이 융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녹색산업 역할이 중요하다”며 “미래 우리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성장하도록 지속적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정부가 녹색산업 지원에 나서면서 유망기업들도 꾸준히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 5월 중소벤처기업부와 환경부가 올해 그린뉴딜 유망기업으로 선정한 30개사 중 녹색혁신기업 분야에는 태양광 폐패널, 폐플라스틱 재활용을 통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업들이 주로 선정됐다. 정부는 이들에게 기술개발에서 사업화까지 성장 전 주기에 걸쳐 최대 30억원씩을 3년간 지원한다.

 

◆와인찌꺼기로 화장품, 음식쓰레기로 곤충밥, 맥주박은 리너지가루

 

페트병과 캔만 재활용되는 게 아니다. 음식물 쓰레기, 맥주나 와인 찌꺼기 등의 재활용에 나선 이색 스타트업들도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뉴트리인더스트리는 국내 최초로 곤충을 활용해 음식물 폐기물 재활용업 허가권을 얻은 스타트업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파리과 날벌레 동애등에 애벌레에게 먹이고, 다 자라면 고품질 동물성 사료로 가공한다. 음식물 쓰레기에 영양분을 첨가해 곤충 먹이로 만들면 그간 재활용이 어려웠던 ‘국물’까지 처리할 수 있다. ‘곤충 리사이클링’ 과정에서 나온 애벌레의 분변토는 비료로 사용한다. 뉴트리인더스트리는 경남 창원 음식물 폐기물 처리시설과 계약을 맺고 매달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 약 100을 처리하고 있다.

 

펫푸드 기업 푸디웜도 동애등에를 이용해 반려동물용 사료를 만든다. 이런 방식으로 기업은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을 줄이고, 푸디웜은 유충을 키우는 비용을 아낄 수 있다. 푸디웜에 따르면 이렇게 만들어진 사료는 알레르기 반응이 작으며 비만에도 효과가 있다.

 

리하베스트는 맥주 제조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밀가루 대체품 리너지가루를 만든다. 보리 등의 찌꺼기인 맥주박을 비롯한 여러 곡물 부산물을 업사이클하는 기술을 갖췄다. 리하베스트에 따르면 리너지가루는 기존 밀가루보다 단백질 함량이 2배 이상이며 식이섬유는 20배가량 함유돼 있다. 양조기업은 폐기물 처리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식품기업은 기존에 수입하던 고급 밀가루를 국산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대체할 수 있다. 회사는 현재 CJ제일제당, 미스터피자, 오비맥주 등과 협업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디캔트는 와인 찌꺼기를 이용해 화장품을 만든다. 와인을 착즙하고 버려지는 부산물(퍼미스)을 재활용해 미백, 주름 개선 기능이 있는 화장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전 세계에서 나오는 퍼미스는 1년에 1000에 달하는데, 이를 매립하면 토양이 산성화되며 소각 시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그간 와이너리는 이를 폐기하기 위해 비용을 지불했다. 디캔트는 퍼미스를 프랑스와 국내 와이너리에서 무상으로 수거해 원료로 활용한다.


안양·화성=곽은산 기자 silve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