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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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까지 뛰어든 재활용 사업… “‘중기 공생’ 지혜 짜내야” [쓰레기에서 돈 찾아낸 스타트업들]

<하> 상생 위한 교통정리

친환경 명분에 시장 전망도 밝아
SK지오센트릭·롯데케미칼 등
‘화학적 재활용’ 공장 신설 추진
현대오일뱅크도 열분해유 신사업
친환경 에너지 기업 도약 부푼꿈

중소기업 “먹거리 빼앗아” 반발
성장위에 ‘적합업종 지정’ 요청
“400만 재활용 선별업 생존 위협”
전문가 “중기, 순환경제에 일익
대기업과 기술협력·역할분담을”

자원순환을 이끄는 핵심 사안 중 하나는 ‘버려진 플라스틱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다. 플라스틱 생산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버려진 플라스틱이 자연으로 돌아가기까진 최소 400년 이상의 오랜 시간이 걸린다. 유럽플라스틱산업협회 ‘플라스틱유럽’에 따르면 2020년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3억6700만t에 달한다. 이 추세대로 간다면 2050년에는 2015년 대비 생산량이 3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글로벌 화학업계에서 폐플라스틱 처리 방식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기술이 화학적 재활용이다. 기존 물리적 재활용은 폐플라스틱을 세척해 가공·재생산하는 방식으로 재활용 가능한 범위에 한계가 있다. 화학적 재활용은 열분해와 화학반응 공정을 통해 최초 원료 형태로 돌리는 방식을 가리킨다. 이 방식은 제품 생산 범위를 확대할 수 있어 실질적 재활용이 용이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석열정부도 지난 7월 업무보고를 통해 순환경제 활성화를 위해 플라스틱 제품의 생산·수거·선별·재활용 모든 과정을 고도화하고 폐플라스틱 등을 활용한 열분해유를 석유 대체 원료로 활용하도록 권장하는 등 관련 산업을 잘 지원하도록 당부했다.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에 뛰어드는 대기업

 

27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기업들도 이 같은 추세에 맞춰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지오센트릭은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 상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5년까지 울산에 있는 21만5000㎡ 규모의 부지에 폐플라스틱 재활용 클러스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열분해(연 10만t 규모)와 해중합(8만4000t), 고순도 폴리프로필렌(PP) 추출(5만t) 등 세 가지 화학적 재활용 기술을 모두 한곳에 모아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것은 SK가 세계 최초다. 해외 진출도 적극적이다. 프랑스에서 플라스틱 재활용 공장을 짓기 위해 프랑스 수에즈, 캐나다 루프인더스트리와 함께 합작법인을 설립한다. 

 

LG화학은 친환경 기술을 적극 활용해 신재생에너지 사업 분야에서 혁신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LG화학은 지난 8월 미국 식품기업 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ADM)와 생분해성 바이오 플라스틱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2025년까지 미국에 생분해성 바이오 플라스틱 공장을 짓는다. ADM이 옥수수 기반 고순도 젖산을 생산하고, LG화학이 이를 바탕으로 연간 7만5000t 규모 바이오 플라스틱을 생산한다. 국내에서는 영국의 무라테크놀로지와 협업해 2024년 1분기까지 충남 당진시에 국내 최초의 초임계 열분해유 공장을 연산 2만t 규모로 건설한다. 이 공장에는 고온·고압의 초임계 수증기로 혼합된 폐플라스틱을 분해하는 화학적 재활용 기술이 적용된다. 비닐·플라스틱 약 10t을 투입하면 8t 이상의 열분해유를 만들 수 있다는 게 LG화학의 설명이다.

롯데케미칼은 2024년까지 1000억원을 투자해 울산 2공장에 11만t 규모의 화학적 재활용 페트(PET) 공장을 신설할 계획이다. 2030년까지 울산 페트 공장 전체를 화학적 재활용 공장으로 전환해 34만t 규모의 재활용 페트를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현대오일뱅크도 지난 6월 석유화학 생산설비를 가동하고 올레핀 계열 제품과 EVA 등 친환경 소재 생산에 나섰다. 2026년 완공해 같은 해 하반기 가동에 돌입하는 것이 목표다. 앞서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석유정제업자가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공정의 원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제 샌드박스를 산업통상자원부 및 한국산업기술진흥원에 신청해 ‘실증을 위한 규제 특례’를 승인받았다. 이에 따라 오는 10월까지 900t의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공정에 투입, 친환경 납사를 생산할 수 있다. 올해 초에는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친환경 납사로 생산하는 공정에 대해 국내 정유사 최초로 국제 친환경 제품 인증인 ‘ISCC PLUS’를 취득하기도 했다.

 

◆“미래 먹거리” vs “중소기업 보호해야”

 

대기업이 앞다퉈 폐플라스틱을 이용한 재활용 사업에 나서자 오랫동안 재활용 사업을 해온 영세·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먹거리까지 탈취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흐름에 맞춰 탄소 중립 관련 사업을 확대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라고 주장하면서 양측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동반성장위원회에 따르면 한국자원순환단체총연맹과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등은 지난해 10월 ‘플라스틱 원료 재생업(재활용) 및 선별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해달라고 동반위에 신청했다.

 

중소업계는 폐플라스틱을 수거해 화학적 재활용에 대기업이 협력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그간 중소업계가 도맡아 온 생활 폐플라스틱 선별업 분야까지 대기업이 진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중소업계 측은 “재활용업 종사자들이 지켜온 시장인 물질 재활용시장은 지켜주고, 대기업은 대기업만이 할 수 있는 시장인 ‘화학적 재활용시장’에 집중하길 권고한다”며 “무분별한 대기업의 재활용산업 진출로 400만 영세·중소 재활용업체 생존이 위협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자원 재활용 산업은 단순한 쓰레기 처리에서 기후위기 해법의 하나이자 고성장 신산업으로 정부와 기업이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며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대기업에 대한 신규 진입 자제, 확장 자제, 사업 축소 등의 권고가 내려진다. 권고 자체로서 대기업 사업 영위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화학적 재활용을 위해선 고순도(고품질)의 폐플라스틱 수거·선별이 핵심적”이라며 “현재 외국인 근로자나 노인분들 인력에 의존하는 수거선별업에선 재활용이 가능한 많은 양의 생활쓰레기가 다시 매립·소각되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동반위가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면, 이 분야에선 최소 3년간 대기업의 사업 확장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

 

동반위는 조정협의체를 구성하고 몇 차례 협의를 진행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동반위는 다음달 전체회의에서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의 적합업종 지정 여부를 논의할 방침이다. 동반위는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 중 생활폐기물 가공업에 대해서만 적합업종 지정 여부를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폐플라스틱 재활용시장 확대가 탄소 중립을 위한 전 세계 추세인 만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장용철 충남대 교수(환경공학과)는 “플라스틱 순환경제 구축을 위해서 중소기업이 그동안 많은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지금은 플라스틱 재활용과 자원순환 체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 투자도 필요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역할을 분담하고 서로 협력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