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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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떠돌던 조선시대 관리 무덤 속 묘지석 환수

일본에서 떠돌던 조선시대 관리의 묘지석 2건이 국내로 환수됐다. 일본 거주 한국인이 찾아 국내에 기증하면서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백자청화김경온묘지(白磁靑畵金景溫墓誌)’와 ‘백자철화이성립묘지(白磁鐵畵李成立墓誌)’를 국내로 들여왔다고 28일 밝혔다. 두 기관은 경상북도 안동에 위치한 한국국학진흥원에 전달하고 이날 기증·기탁식을 진행했다.

 

묘지(墓誌)는 무덤 속에 고인의 시신과 함께 묻는 돌이나 도판(陶板)이다. 고인의 생애와 성품, 가족관계 등의 행적을 적어 넣는다. 문화재청은 “개인뿐 아니라 시대사 연구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유물”이라고 밝혔다.

 

‘백자청화김경온묘지(白磁靑畵金景溫墓誌)’ 문화재청 제공

두 묘지석 중 백자청화김경온묘지는 조선 1755년 것으로, 크기는 세로 20㎝, 가로15.3㎝ 두께 1.5㎝, 5장짜리 완질이다. 유물 이름은 백화청화 방식으로 제작된 김경온의 묘지라는 뜻이다. 희고 부드러운 백토로 만든 판 위에 청화 안료를 이용해 정자로 바르게 쓴 해서체로 정갈하게 묘지문이 작성돼 있다. 문화재청은 “분원(分院·조선시대에 사옹원(司甕院, 음식에 대한 일을 맡던 관아)에서 쓰는 사기를 만들던 곳)에서 청화백자묘지를 사적으로 구워 만들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어 사료적 가치도 매우 높다”고 밝혔다.

 

또다른 묘지인 백자철화이성립묘지는 조선 17세기 말 것으로, 크기는 세로 22.8㎝, 가로 18㎝, 두께 1.6㎝다. 총 2장짜리고 2장 모두 보관된 완질이다. 백자철화 방식으로 제작됐다.

 

첫번째 묘지석의 주인인 단사(丹沙) 김경온(金景溫, 1692-1734)은 본관은 경북 의성(義城), 조부는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고(故) 김성구이다. 김경온 역시 영조2년(1726) 진사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건원릉 참봉(參奉·조선 때, 능(陵)이나 원(園) 또는 종친부·돈령부·봉상시·사옹원·내의원 등 여러 관아에 속했던 종구품 벼슬)으로 임용됐으나, 곧 사직하고 고향인 예안으로 돌아와 후학 양성에 전념한 인물이다.

 

두번째 묘지의 주인 이성립(李成立, 1595-1662)은 조선시대 무관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장지는 평안도 철산(鐵山)으로, 현재의 북한 지역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은 “17세기 후반 조선 변방 지역 무관들의 혼맥과 장례 등의 생활사를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라며 “음각과 철화 기법이 사용됐고 묘지가 분리되지 않게 두 장을 마주 포개어 묶기 위한 것으로 추정되는 구멍이 뚫려있는 점 등 제작 방식에서 희귀성과 특수성을 보인다”고 밝혔다.

 

‘백자철화이성립묘지(白磁鐵畵李成立墓誌)’ 문화재청 제공

이번 기증은 소장자가 국외소재문화재재재단으로 직접 연락해 묘지의 소장 사실과 한국으로의 기증 의사를 밝히면서 시작됐다.

 

두 묘지 모두 정확한 반출 시점은 알 수 없었으나 최근 일본의 문화재 유통 시장에 나오게 된 것을 소장자가 발견했다. 이 소장자는 “당연히 한국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유물로 생각한다”며 어떠한 보상이나 조건 없이 기증의사를 밝혔다는 설명이다. 이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원 소장처인 의성김씨 문중과 경주이씨 문중을 방문해 묘지가 일본에서 확인된 사실과 소장자의 기증 의사, 한국에서의 활용 방안 등을 함께 논의해 유물을 공개키로 했다. 묘지는 향후 기록문화유산 전문 연구기관인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 조선시대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의 하나로서 관리 및 활용될 예정이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