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칭은 시대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언어는 정신의 얼굴이다”라는 세네카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 명제의 진실은 어렵지 않게 입증된다. 커피 분야에서는 ‘마담(Madame)’과 ‘레지(Reji)’를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마담은 프랑스 왕실의 여성 구성원에게 붙이는 칭호로 16세기 말의 기록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루이 14세 시대에 가서는 ‘남의 아내를 부르는 존칭어’로 쓰임이 확장됐다. 국내에서는 조선 말기 문호 개방과 함께 프랑스인들이 들어오면서 가끔 들려오다가 1930년대 대중매체에서 등장했다. 당시 유학을 갔던 학생들이 돌아와 ‘모던 걸’ ‘모던 보이’라는 계층을 형성하면서, 마담은 그들을 중심으로 ‘여성 지식인’을 지칭하는 용어로 퍼져 나갔다.
3·1운동 이후 일본의 회유책으로 조선인도 음식점을 경영할 수 있게 되자 문학·예술 분야 신지식인들이 다방을 열었다. 1927년 영화감독 이경손의 ‘카카듀’를 시작으로 영화배우 복혜숙의 ‘비너스’, 해외파 미술학도 김용규의 ‘멕시코’, 이순석의 ‘낙랑파라’, 시인 이상의 ‘제비’ 등 지식인의 다방에서는 ‘톨스토이 회고전’ ‘괴테의 밤’ 등 문화행사가 열렸다.
이런 분위기에서 마담의 품격은 그 다방의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가 됐다. 1930년대 대표적 교양잡지인 ‘삼천리’는 다방 마담들의 좌담을 게재했다. 비너스의 마담인 복혜숙, 낙랑파라의 마담을 맡은 이연실(영화배우), 모나리자의 마담인 강석연(가수)이 참석해 지식인의 응접실로서 당시 다방의 세태를 이야기했다.
레지는 금전등록기의 영어 발음인 ‘레지스터(Register)’를 축약해 부른 것이다. 국내에서 ‘레지’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곳은 다방이 아니라 백화점이다. 1932년 화신백화점이 개점하면서 화장품과 인테리어 용품을 파는 코너에 금전등록기를 설치하고 이를 다룰 줄 아는 여직원을 배치했다. 외래어를 구사하면 더 멋지다고 여겼던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듯 ‘계산원’을 ‘레지’라고 불렀다. 다방에도 금전등록기가 설치되면서 우선 ‘레지스터’라는 말이 다방에서 들려 나왔다. 1939년에 이기붕과 박마리아가 종로다방을 열었는데, 잡지 ‘삼천리’가 “이화여전 교수가 다방 / 미국대학 출신의 부부, 근로의 하우스를 찾아”라는 제목으로 다뤘다. 기사에 “레지스터엔 부인인 박마리아 여사가 앉아 계시고, 부군 이기붕씨는 홀을 청소하고 계셨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로 인해 한국에서 최초의 ‘다방 레지’가 박마리아라는 오해가 생겼다.
해방 이후까지 레지는 커피 시중을 드는 ‘다방 여급’과 구별된 계산원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 당시 여러 신문기사를 통해 확인된다. 하지만 6·25전쟁 속에서 다방 마담과 다방 레지는 유흥업소 접대부와 같은 대우를 받는 직업군으로 변했다.
1952년 정부가 다방을 유흥업으로 분류하고 마담과 레지들에게도 ‘보건증’을 의무화했다. 당시 한 마담은 “레지는 일반 살림집 처녀들의 진실한 직업이고, 마담은 점잖은 사교가인데 접대부들이 받는 위생검진을 받으라니 망칙하다”고 절규했다.
이후 1982년 야간통행금지 해제와 함께 심야다방이 불야성을 이루면서 레지는 성을 파는 직업인으로 낙인찍혔다. 우리네 다방이 ‘지성인의 공간’이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리면서 겪게 된 일이다. 무엇이든 본질에서 벗어나면 정신이 오염된다.